늦게 하산하면 못 먹는다…북한산 28년 지킨 슴슴한 손두부

허윤희 기자 2024. 7. 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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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서울 우이동 ‘우리콩순두부’
국산콩으로 만든 두부. 허윤희 기자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터줏대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먹어야 합니까?”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거센 장맛비가 쏟아진 뒤 운무가 자욱하게 끼었다. 구름 띠를 두른 북한산이 보였다. 서울 강북구의 우이동. 북한산에 있는 봉우리가 마치 소귀와 비슷하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된 동네로, 순우리말로는 쇠귓골이라 불린다. 우이동은 면적 80%가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할 정도로 녹지 비율이 매우 높다. 1980~90년대엔 대학생 엠티(MT)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자연을 품은 우이동에 ‘소문나면 곤란한 맛집’이 있다는 말에 폭우를 뚫고 갔다.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콩요리 전문점 ‘우리콩순두부’. 박희정 강북구청 언론팀장이 소개한, 등산객과 동네 주민들이 아끼는 지역 맛집이다.

순두부 1만원, 청국장 1만원, 콩비지 1만원…. 메뉴판을 보니 콩으로 만든 음식이 주를 이루었다. 박 팀장이 추천한 두부전골과 도토리묵, 녹두전을 주문했다. 우거지나물무침, 고추 된장무침, 콩자반 등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 박 팀장이 고추 된장무침을 보며 “이거 정말 맛있다”며 “다들 여기오면 한두 번씩 리필해달라고 하는 반찬”이라고 했다. 소담한 반찬이 맛깔스럽게 보였다.

드디어 두부전골이 나왔다. 큼지막하게 썬 두부와 버섯, 파 등이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다. 국물을 한술 떠서 먹으니 속이 시원했다. 전날 과음하지 않았는데도 해장이 되는 듯했다. “황태 머리, 멸치,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만들어요. 또 하나. 민물새우가 들어가요. 그래야 감칠맛이 나요.” 식당 주인인 구미현(60)씨가 귀띔했다. 두부 맛은 어떨까. 한입 먹기에 큰 두부를 반으로 잘라 먹으니, 부드럽고 고소했다. 시판용 두부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이었다. 빈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건강한 한끼’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두부 요리 뿐아니라 도토리묵도 이 식당의 인기 메뉴라고 박 팀장이 이야기했다.

서울 우이동 ‘우리콩순두부’의 두부전골. 허윤희 기자
도토리묵. 허윤희 기자

식당이 문을 연 건 1996년도이다. 당시 구씨는 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했다. “언니 시댁이 파주인데 거기서 재배한 장단콩을 가져와 콩요리 위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건 국산콩을 쓴다는 거다. 구씨는 “파주 장단콩으론 청국장을 만들고 경북 영주의 콩으로는 두부 전골 등 요리에 사용한다”고 한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불리는 콩은 단백질뿐만 아니라 칼슘, 인, 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된 건강식품 중 하나다.

국산콩으로 두부를 직접 만드는 점도 이 식당의 특징이다. 주방쪽에 두부를 만드는 기계가 있다. “그날 팔 두부를 오전에 만들어요. 그날그날 만들어 팔고 있어요. 금세 두부가 다 나가요. 어쩔 땐 재료가 떨어져 오후 6시면 문 닫아요. 가게에 늦게 오셨다가 식사를 못하고 가는 손님도 있어요.”

28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덕분에 단골손님이 많다. “20년 넘게 찾아오는 단골을 보면 가족 같아요. 단골손님들이 올 때마다 옛날하고 맛이 똑같다고 맛있다고 해주시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산을 찾는 이들이 주요 고객인 이곳에 요즘에는 20~30대 손님들이 늘었단다. “예전에는 40~50대분들이 가장 많이 찾았는데 이제는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해요. 손님들이 등산하고 건강식 챙겨 먹으러 왔다고 하세요.”

우리콩순두부의 구미현 사장. 허윤희 기자
두부를 만드는 콩 재료. 허윤희 기자

백숙, 오리고기 등 고기 맛집이 많은 산 근처에서 28년째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씨는 “두부가 자극적이고 강한 맛은 아니지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또다시 찾게 하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평양냉면 같은 슴슴한 매력이 있다”고 박 팀장이 한마디 보탰다.

건강한 한끼를 먹고 나오자 뱃속이 더욱 든든했다.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떠나지 않고 맴도는 것 같았다. 또다시 찾게 하는 맛과 다시 보고 싶은 산 풍경, 우이동에 있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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