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 D-day... 시민사회 "아동유기 합법화하는 것" 비판
【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19일 보호출산제 시행 첫 날, 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 보호출산제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보호(익명)출산제 폐지연대와 고아권익연대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호출산제는 아동유기를 합법화하는 제도라며 보편적 임신·출산·양육지원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보호출산제가 아동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 권리, 부모를 알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아동과 산모 모두 보호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보호출산제는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임산부에게 익명으로 출산하고 양육을 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지난해 수원 영아유기 사건 이후 촉발됐고,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정부에선 보호출산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하고 여성이 보호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 "미혼모 당사자 의견수렴없이 졸속으로 추진...익명으로 시작한 삶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어야"
특히 보호출산자의 당사자가 될 미혼모단체에선 법안 발의 이후 1년간 의견수렴없이 졸속으로 통과됐다고 지적한다. 미혼모들을 늘 상담하고 조력하는 단체에서도 제대로 설명을 듣고 이해할 기회를 갖지 못할 만큼 조항은 복잡하고 절차는 난해하다는 것이다.
김민정 한국미혼모연대 대표는 "보호출산제는 미혼모와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엄마와 아이를 합법적으로, 익명으로 분리할 수 있게 한다. 국가가 나서서 부모 자식 간 천륜을 끊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이 땅의 아이들과 어머니들에게 어떤 무서운 영향을 초래할지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민정 대표는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와 제8조를 언급했는데, 제7조에서는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고 아동은 국적과 이름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8조는 '국가는 국적, 이름, 가족관계를 포함한 아동의 신분을 지키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보호출산제는 아동이 자신의 성, 부모의 성을 알 수 없고, 만18세가 되어 부모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친생부모의 동의가 없다면 평생 그 정보를 알 수 없다. 즉, 보호출산제는 한국이 비준한 국제조약으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민정 대표는 "고아호적으로 입양되어 모국으로 돌아오는 수많은 해외입양인과 국내입양인, 아동보육시설에서 자라난 자립준비청년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겪는 고통, 그리고 익명으로 시작된 삶의 고통에 사회와 정부, 국회가 충분히 귀 기울였다면 결코 보호출산제는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보편적 임신, 출산, 양육지원법으로 아이들이 가족과 헤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 김희진 변호사 "출산 직후 장애아동 유기될 가능성 多, '아동보호' 고려한 것 맞나 의심"
김희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이 법에 대해서 "아동유기의 합법적 범위가 늘어난 셈"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법 시행에 오기까지 낙태죄 폐지에 따른 후속 입법도, 베이비박스 폐지와 근절 조치도 전혀 없이,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하게 낳을 수 있다는 명제는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법적으로 봤을 때 보호출산법은 '위기'의 사유를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사유'라는, 아주 광범위하고 추상적으로 규정했다는 것도 문제라고 김희진 변호사는 지적한다. 출산 후에도 보호출산을 신청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 이 법의 맹점인데 김희진 변호사는 이 부분이 "헌법에 따른 부모의 자녀 양육에 대한 기본적 의무를 잠탈하는 것이자, 출산 직후 장애아동이 보호출산으로 유기될 가능성을 우려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법에는 대리인이 보호출산을 신청할 수 있는 규정도 있다. 피성년후견인, 14세 미만인 아동, 심신장애로 인하여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하거나 없는 것으로 인정되는 위기임산부의'보호자'가 보호출산 의뢰와 이후 절차를 대신한다는 건데 '스스로의 의사결정에 따라 보호출산을 신청하도록 한 법 9조와 충돌'하기에 "본인의 의사결정을 조력할 체계도 전혀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차별에 조응하는 반인권적 규정"이라고 김희진 변호사는 비판했다.
출생증서가 있다고 해도 아동이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가 전혀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출생증서에는 생모와 생부의 인적사항, 건강상태, 상담내용이 포함되는데 김희진 변호사는 "오로지 위기임산부의 상담에 의존하도록 돼있는 현재 구조에서 정보의 진실성이 어떻게 확보될지는 의문"이자 "생부의 정보는 사실상 수집되지 않을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고 전했다.
한편 이 출생증서는 밀봉돼 아동권리보장원에 보관되는데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없어지거나 분실될 우려가 있는 종이를 창고에 보관한다는 발상은 이 정보의 중요성을 전혀 공감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진다. 출생증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아동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인데, 출생증서 공개 여부는 생모나 생부의 동의로 결정된다. 부모가 사망해 동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을 때에도 비공개가 원칙이다. 김희진 변호사는 "보호출산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존재에 아동이 있었던 게 맞냐"고 반문했다.
◇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안정적 양육 가능한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양육지원 정책"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보호출산제 통과를 촉진시킨 '수원 영아사망 사건'의 경우 정부의 출생등록제 미시행과 신생아 관리의 부실로 인한 비극"이라며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는 희생자 아이는 익명출산과 유기고아의 대상이 아닌 출생신고 후 양육을 지원하거나 출생신고 후 입양이 가능한 아동인데 정부는 이를 두고 마치 보호출산제가 있었다면 이 아동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호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대는 보호출산제는 아동의 생명을 구하는 게 아닌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사유로 자녀 양육이 어려운 어른들에게 익명을 부여해 미혼모뿐만 아니라 장애아동, 미숙아, 이혼을 결정했으면서도 출산을 앞둔 부부 등 자녀 양육의 책임을 방기하는 복지권리로 악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랐거나 국내외로 입양된 사람들을 '유기피해인'으로 지칭하며 "155만 유기피해인은 보호출산제가 아동기본권과 존엄을 훼손하기에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 더이상 생기지 않기를 염원하며 법안 통과를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법안은 당사자 공청회 한번 제대로 열리지 않고 졸속으로 강행됐고, 이 법안은 심각한 위법적 독소조항을 포함한 채로 시행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국내입양인연대는 보호출산제에 대해 "엄마를 지워도 된다는 법안"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산모의 출산 사각지대를 없애고 안정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양육지원 정책수립"이라고 강조, 보호출산제는 아이와 엄마 그 누구도 보호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보호출산제 즉시 중단과 폐기를 촉구하며 보편적 임신, 출산, 양육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법 제정과 양육비 대지급 국가책임제, 장애아동 양육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익명출산된 아동이 좋은 가정에 입양될 수 있다는 거짓 선동을 즉각 멈추고 원가족 양육을 지원할 수 있도록 아동권리보장원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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