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생태계도 바꾸는 인공지능의 힘 [AI와 함께하는 세상]
[AI와 함께하는 세상-4]
20여 년 전, 경영혁신 사상가 게리 해멀(Gary P. Hamel)은 우리에게 “시키는 일만 하는 꿀벌이 될 것인가? 창조하고 혁신하는 게릴라가 될 것인가?”(그의 저서 『Leading Revolution』)라는 두 노선을 대비시키면서 경영혁신에 관한 상상력을 부추겼던 적이 있다.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 역시 『달과 6펜스』에서 최소 단위를 얻으려고 바둥거리는 타성적 삶(6펜스)과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상의 세상(달)을 극적으로 대비시킨 바 있다.
꿀벌은 일정한 틀 속에 갇혀 반복적인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나르고 생산하는 이미지를 지녔다. 반면, 여기에서 게릴라는 달을 찾아 종횡무진으로 도전하는 야심찬 혁신가 –때로는 ‘문샷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게리 해멀은 조직이나 기업이 미래를 창조하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고 상상하지 못하는 꿀벌의 타성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즉, 혁신기업들의 성공비법은 다른 상상력으로 게임의 법칙을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꿀벌 관련 비영리단체 BIP(Bee Informed Partnership)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에만 꿀벌 수백억 마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2022년 기준으로 꿀벌 78억 마리가 사라졌고, 미국에서만 평균 45%의 꿀벌이 사라졌다고 한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멸종한다는 경고는 우리의 가슴을 철렁이게 한다. 꿀벌은 인류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가운데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 활동이 있어야 생산된다(유엔 식량농업기구 FAO). 꿀벌이 식물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꽃가루를 옮겨주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맛있는 과일, 채소, 견과류 등 농작물을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달콤한 꿀과 로얄젤리 등을 즐길 수 있다. 2017년 유엔은 ‘세계 벌의 날’(5월 20일)을 지정했다. 꿀벌 생태계의 복원을 기원하면서, “인공지능은 어떻게 꿀벌 생태계를 도울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여왕벌은 종족의 대를 이어가는 역할을 하기에 수벌과 성체를 통하여 몸속에 정자를 보존하고 생명을 잉태한다. 여왕벌은 페르몬을 방출하여 일벌 여성들의 난소 발달을 억제한 뒤, 혼인 비행 시기가 오면 몰려드는 수벌 중 가장 힘센 수벌을 만나 성체를 한다. 여왕벌과 수벌은 성체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여왕벌은 한 번에 3000여 개의 알을 낳고 수명(약 5~7년)이 다하면 추방당하거나 죽임을 당한다. 수벌 역시 여왕벌과 교미한 뒤에는 바로 죽음을 맞는다.
일벌은 AI시대에도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멀티 테스크 기능을 수행하는 능력자다. 여왕벌의 충직한 부하로, 사냥꾼, 건축가, 영양사, 간호사, 군인 등 만능이다. 일벌은 여성으로서 난소 기능은 억제되지만, 여왕벌에게 먹이를 주고, 로열젤리를 생산해 여왕벌이 낳은 새끼를 키운다. 아기 일벌은 출생 후 20여 일이 지나면 꿀과 꽃가루를 수확하는 사냥꾼이 된다. 밀랍으로 왕국을 짓고 청소도 한다. 침입자가 등장하면 왕국을 지키기 위해 무기(독침)를 들고 장렬하게 싸우는 여전사가 된다. 이렇게 성실하고 충직한 삶을 살지만 수명이 다하면 왕국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죽는다.
꿀벌을 돕는 인공지능의 몇 가지 대표 사례를 보자. 먼저, 꿀벌의 개체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는 로봇(대표적 사례 : 보로로얄 RoboRoyale)은 여왕벌에게 먹이를 주는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이 로봇은 여왕벌의 생산 속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더 강한 군체와 더 높은 수분 활동을 산출한다. 또한, 인공지능 로봇은 일벌의 행동을 모방하여 여왕벌에게 필수적인 로열젤리를 먹여주고, 몸단장을 도와 번식 혁명을 촉진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먹이를 주는 작은 펌프와 몸단장 액추에이터를 통합한 결과, 꿀벌의 개체 수를 늘려갈 혁신적인 벌집 관리 시스템이 탄생한다.
하버드대학교가 개발한 마이크로 로봇 벌(RoboBees)도 흥미롭다. 이 로봇은 자연 꿀벌을 모방한 ‘스마트 센서’를 보유하고, 초당 약 120회 비행하는 파리의 날갯짓을 한다. 공중에서 비행하고 물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 이 로봇은 자연 꿀벌의 수분 과정 등 행동을 복제하여 감소하는 꿀벌 개체수를 대체하고자 한다. 자율적인 작물 수분을 통해 농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감시, 수색은 물론이고, 구조 작업에서 비행경로를 최적화하며 효율적인 작업 수행을 돕는다. 기후 조건, 농경지 상태, 오염 물질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농업 관리에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도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으며, 소형 배터리와 태양열 발전 시스템을 통해 무선으로 비행할 수 있어 다양한 환경에서 응용될 수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비와이스(BeeWise)는 태양열로 작동하는 로봇 벌집 안에서 인공지능으로 온도와 습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최적의 환경을 유지토록 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미지 인식을 통해 꿀벌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며, 일벌의 위치와 밀집도를 분석한다. 기계 학습을 통해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하며, 딥러닝 음향 분석 기술로 말벌 침입을 감지한다. AI는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등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며, 살충제와 해충으로부터 위협을 감지하고 격리한다. 사람의 개입 없이 실시간으로 위협에 대응한다. 이렇게 하여 AI는 꿀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24시간 내내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자동 꿀 수확을 촉진한다. AI와 컴퓨터 비전을 사용한 벌집(Beehome)을 개발하여 꿀 생산을 증가시키고 꿀벌을 보호하고 있다. 비와이스는 70억 마리 이상의 꿀벌을 관리하며, 비홈은 꿀벌 폐사율을 줄이고 수확량을 증가시키며, 육체노동을 약 90% 줄였다고 한다.
한편, 360도 촬영 가능한 카메라를 동반한 AI는 벌통에 부착되어 벌들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AI는 이를 분석해 진드기 감염을 감지한다. 감염이 확인되면 양봉 관리자에게 경고 알림과 이미지를 스마트폰 앱으로 전송하여 감염된 벌집을 격리한다. 태양열 전원과 배터리로 작동하며, 내구성 있는 방수 소재로 제작되어 다양한 기상 조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양봉농가의 노동력을 줄이고 꿀벌 폐사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Signals 2022, 3(3), 506-5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꿀벌이 멸종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 인간은 인공 꿀벌을 만들어서 생태계를 새롭게 창조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게 인위적이라 두렵기도 하다. 세상엔 늘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있듯이, AI가 인공 꿀벌 왕국을 세우는 날이 오면 생태계에 또 어떤 균열이 일어날지 아직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다른 상상력으로 게임의 법칙을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눈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혁신이 만연한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인공 꿀벌로부터 자연의 꿀벌을 지키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때는 ‘혁신의 전사(guerrilla)’가 아니라 ‘역혁신(reverse revolution)의 천사’ - 다시 말해서, 최적의 자연 꿀벌 생태계 실현을 위해, AI 기술에 인간의 착한 상상력을 더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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