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시간’ 신드롬일까, 신기루일까…그의 앞에 놓인 세 개의 고비

박성의 기자 2024. 7. 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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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與 ‘문자 내전’에 ‘댓글팀 의혹’까지…결국 뇌관은 ‘尹과의 관계’
“8명을 지켜라” 巨野 ‘특검 공세’ 방어도 숙제…‘韓 특검법’ 통과될까
‘3일 천하’ 김옥균 프로젝트설 왜 나오나…당권 잡더라도 친윤과 긴장관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어대한'(어차피 당대표는 한동훈)은 신기루일까, 신드롬일까.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금 정치권의 의견은 분분하다. 당장은 후자에 힘이 실린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는 한동훈 후보의 우세를 연이어 점치고 있다. 나경원·원희룡·윤상현이라는 걸출한 맞수들도 '결정적 한 방'은 때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 '한동훈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 당대표가 되기까지는 변수가 남아있다. 상대 후보들의 거친 네거티브 공세가 전쟁 수준이라 할 만큼 강도가 높은 상황에서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하면 '친윤(親윤석열)계 단일화'라는 파도를 넘어야 한다.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로 촉발된 당내 논란과 그 과정에서 불거진 댓글팀 의혹은 전당대회 이후까지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당권을 잡는다고 해도 그의 앞길에는 사방이 지뢰밭인 험로가 펼쳐져 있다. 역대급 여소야대라는 정치구도를 헤쳐 나가며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거야가 밀어붙이는 각종 특검법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데, 여당 의원 8명만 이탈하면 그의 리더십은 바로 흔들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결국 핵심 변수는 틀어진 대통령과의 관계를 회복하느냐 여부다. 한 후보가 당권을 차지한 후 대통령과의 '본격적인 거리두기'에 나설 경우 정치권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김옥균 프로젝트'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를 따르는 친한(親한동훈)계에서조차 '당대표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7월15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 사분오열 쪼개진 與: '보수의 공멸' 이명박·박근혜 갈등 데자뷔

지난 총선을 기점으로 '패장 한동훈'은 당내 적(敵)이 늘어났다. 이 여파로 같은 시기에 치러지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총선 압승을 거둔 민주당은 '승장 이재명'의 연임 기류가 압도적이다. 전현직 의원 중 김두관 전 의원만이 대항마로 나섰을 뿐 그 외에 유의미한 경쟁자는 없다. 반면 한 후보가 도전장을 던진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다. 총선에서 패했음에도 막강한 '1강 후보'로 분류되는 한 후보를 향한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의 거친 견제구가 날아들고 있다.

전당대회 초반 한 후보를 향한 비판의 타깃은 이른바 '채 해병 특검법 찬성'에 집중됐다. 한 후보가 내세운 '제3자 특검' 방식이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부담을 안길 것이란 취지에서다. 예고된 현안이었기에 파장은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전당대회 레이스가 중반을 지나면서 공방전 수위가 여권의 예상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한 후보가 지난 총선 당시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 의사를 무시했다는 주장에 △한 후보 가족이 비례대표 후보를 '사천(私薦)' 했다는 의혹 △한 후보가 이른바 '사설 여론조성팀(댓글팀)'을 운영했다는 의혹까지 촉발되자, 야권까지 나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모습이다.

자신을 향한 화살이 쏟아지자 당초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한 후보도 작심하고 반격에 나섰다. 한 후보는 7월17일 CBS가 주관한 4차 방송토론회에서 나경원 후보를 겨냥해 "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를 취하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폭로했다. 나 후보는 2019년 4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시절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 등을 점거해 회의 개최를 방해한 혐의로 2020년 1월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후보에게 이 사건의 공소를 취하해 달라고 청탁했다는 얘기다.

후보들 간 비난전이 거세지면서 '당심' 역시 쪼개진 모습이다. 후보들이 비전을 발표하는 연설회장에서 지지자 간 난투극이 발생하는 볼썽사나운 장면까지 연출됐다. 7월15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한 후보와 원 후보 지지자들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 후보가 연설할 때 원 후보 측 지지자들이 "배신자"를 반복해 외쳤고, 이에 한 후보 지지자들이 항의하며 충돌했다. 한 지지자는 플라스틱 의자를 집어던지려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내에서도 전당대회가 비전 경쟁이 실종된 '자해적 진흙탕 싸움'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나온다. 보수의 품격은 사라지고 '전당대회'가 아니라 '분당대회'라는 자조마저 나온다. 이에 당내에서는 불길하고 불안한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 폭로전이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박 후보는 이 후보의 'BBK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했고 이 후보는 박 후보와 '최태민 일가'의 관계를 문제 삼았다. 여권 일각에선 이 폭로가 실마리가 돼 '보수진영의 공멸'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지금 전당대회는 복싱 '스파링'(연습게임) 중 상대를 녹아웃(KO)시키려 글러브를 끼지 않고 맨주먹을 휘둘러대는 꼴"이라며 "이러면 누가 이기더라도 당과 보수진영 전체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야당만 어부지리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충청권 합동연설회에 참석했었다는 국민의힘 한 당원은 "당을 지킨 지 20년인데 이런 전당대회는 처음"이라며 "부끄러움을 넘어 처참한 심경"이라고 토로했다.

7월15일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참석자 중 일부가 한동훈 후보에게 '배신자'라고 외치며 의자를 집어던지려고 하자 당직자들이 제지하고 있다. ⓒ뉴시스

2. 거야의 특검 공세: 휘몰아칠 '댓글팀' 의혹 후폭풍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대체적인 판세는 '그래도 한동훈'으로 흐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한 후보는 여세를 몰아 1차 투표에서 승부를 마무리 짓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김건희 여사 문자 묵살' 논란, '당정 관계 수평 재정립' 등을 TK(대구·경북)를 비롯한 당심이 어떻게 평가할지가 관건이다. 토론 과정에서 언급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및 종북·건국절·차별금지법 입장에 전통 보수 당원들의 표심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미지수다. 만약 한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할 경우 7월28일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결선투표가 실시돼 2위 후보가 정해질 경우 자연스러운 '비한(非한동훈) 연대'가 결성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 후보에게 최악의 결과는 물론 낙선이다. 대세론에도 '당심'과 '윤심'에 밀려 당권을 잡지 못한다면 한 후보는 정치적 사선에 서게 된다. 대체적인 전망대로 한 후보가 당권을 잡는다 해도 그의 앞에는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우선 내전으로 초토화된 보수의 영토부터 재건해야 한다. 총선 대패에 이어 전당대회 후유증으로 당은 사분오열 찢어졌다. 서로 거칠게 해하며 분열된 당심을 하나로 봉합하는 게 그의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을 수습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한 후보는 거야의 '특검 공세'에도 맞서야 한다. 우선 이번 전당대회에서 친윤계의 반발을 산 '채 해병 제3자 특검'을 당론으로 띄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계파와 선수를 막론하고 동료 의원들과 당원들을 동시에 설득해야 한다. '후보 한동훈'이 자신했던 당의 단일대오를 '당대표 한동훈'이 구축하지 못한다면 그의 리더십엔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채 해병 제3자 특검'을 당론으로 한데 모아 낸다 해도 난제는 남는다. 야권이 쏘아올린 특검 중 한 후보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한동훈 특검법'이란 시각도 있다. 야권은 벌써부터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터져나온 각종 폭로전을 고리로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당장 '김건희·한동훈 특검법'을 추진하는 민주당은 한 후보의 법무부 장관 시절 '댓글팀 운영' 의혹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양문석 민주당 의원은 7월14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2022년 5월 이후 댓글팀으로 의심되는 계정 24개가 6만여 개 댓글을 단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한 후보가 '허위사실'이라며 선을 그었고, 국민의힘 역시 '한동훈 특검법'을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거야가 힘을 합쳐 '한동훈 특검법'을 강행 처리한다 해도 앞선 모든 특검법을 반대한 윤 대통령이 '한동훈 특검법'에만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도 적다. 문제는 친윤계의 숨겨진 속내다. 친윤계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이탈표가 발생한다면 '한동훈 특검법'이 극적으로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수많은 재판에도 당이 단일대오로 '이재명 지키기'에 나선 민주당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친윤계 역시 이 같은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원 후보는 CBS 방송토론회에서 한 후보의 법무부 장관 시절 댓글팀 운영 의혹을 두고 "사실이라면 (드루킹 사건) 김경수 전 지사처럼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고, 아무리 당내에서 보호하려 해도 보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숨길 게 없으면 (야당에서 주장하는) 한동훈 특검, 해도 되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7월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한 후보의 '댓글팀'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 양문석 의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그건 드루킹 사건과 맞먹는 대형 여론조작 사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7월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7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3. 여전한 친윤의 위세: 커지는 '3일 천하' 우려

'어대한'이 적중하고, 거야의 특검 공세를 막아낸다 해도 '당대표 한동훈'에겐 최대 고비가 남는다. 결국 그 중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만약 한 후보가 '윤심'을 뚫고 대표가 된다면 '당심' 역시 '당정 관계 수평적 재정립'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당권을 쥔 한 후보가 곧바로 '반윤(反윤석열)의 길'을 걸을 것이라곤 단정하기 어렵다. 취재에 따르면, 한 후보는 지난 총선 전후 측근들에게 '한동훈만 살고 윤석열은 죽는 길은 없다'는 취지로 공생(共生)의 불가피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원희룡의 국민의힘' 혹은 '나경원의 국민의힘'과 비교했을 때, 분명 '한동훈의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및 친윤계엔 위협적이다. 총선 후 대통령을 독대한 나·원 후보와 달리 오찬 제안을 거절한 한 후보의 전례, 김 여사 문자로 드러난 한 후보와 윤 대통령의 깊어진 갈등 관계가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한 후보 역시 이번 전당대회에서 자신을 겨냥한 친윤계의 공세가 난무하자 '당무 개입 가능성'을 직간접적으로 우려하며 '용산'을 향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철규 의원을 비롯한 당내 친윤계가 한동훈 체제를 쉽사리 인정할 수 있을지에도 물음표가 찍힌다. 지난 대선 전후 국민의힘의 주류였던 친윤계는 총선 패배 이후 구심점을 잃고 급속도로 힘이 빠졌다. 그럼에도 당내 세력은 여전하다. 현재 친윤계는 권성동·권영세(5선), 윤재옥·박대출(4선), 윤한홍·이만희·이철규·정점식(3선) 등 중진이 주축이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형동·박정하·배현진·장동혁(재선), 고동진·김상욱·박정훈·진종오(초선) 등 초·재선 그룹에 비해 당내 세가 두터운 '빅 스피커'들이다.

한 후보가 대권의 꿈을 이미 드러냈다는 점도 변수다.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가 2027년 대선에 출마할 경우 현재 당헌상으로는 2025년 9월 이전에 사퇴해야 한다. 2026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 임기가 여전히 절반 이상 남은 가운데, 공천권이 없는 한 후보에게 친윤계가 굴복할지 확언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정치권에선 한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되더라도 용산 대통령실과 친윤의 압박에 의해 오래 자리를 지키기 힘들 거라는 주장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김옥균 프로젝트설'이 사설 정보지(지라시) 형태로 정치권에 돌기도 했다. '김옥균 프로젝트'는 한 후보가 당대표가 되더라도, 과거 조선 후기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3일 천하'로 좌절한 김옥균처럼 특정 세력이 한 후보를 끌어내릴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파문이 확산하자 친윤계 이철규 의원이 해당 지라시를 유포한 인물들을 고소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구체적인 '친윤 쿠데타 시나리오'가 계속 언급된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7월16일 시사저널TV에서 방송된 《시사끝짱》에 출연해 "친윤 인사들이 1단계로 한 후보가 당대표 당선되는 걸 막으려 시도하다가 그게 어려울 것 같으니 이후 '한동훈 지도부'를 붕괴시키기 위한 2단계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예찬 전 최고위원이 이른바 '여론조성팀'을 폭로한 걸 봐선 이들이 이미 2단계에 돌입한 것"이라며 "이걸 활용해 이후 윤리위원회를 보내고 사법 리스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배 당대표'였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10월'을 한 후보의 '위기의 계절'로 지목했다. 오는 10월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이를 빌미로 한동훈 체제를 흔들 것이란 전망이다.

예고된 고난에도 한동훈은 이미 '독이 든 성배'를 마실 결심을 굳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7월23일, 과연 '어대한'은 적중할까. 전당대회 후 국민의힘은,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복잡한 고차방정식 속, 과연 '한동훈의 시간'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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