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김태곤 감독 "클리셰? 재난 영화 많지만 대부분 구조는 비슷" [인터뷰M]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후 '탈출')를 만든 김태곤 감독을 만났다. 이 영화는 지난해 76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프랑스, 돌일,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홍콩, 일본 등 140개국에 선 판매되기도 했다. 칸에서 상영 당시 언론은 혹평을 쏟아냈지만 1년을 묵혀 이번에 공개한 이 작품은 故 이선균의 유작이라는 의미까지 담은 화제작이 되었다.
독립영화 '1999, 면회' 그리고 영화 '굿바이 싱글'을 감독하고 '족구왕' '범죄의 여황' '소공녀' 등을 제작한 광화문시네마의 대표로 활동해 온 김태곤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해서 기쁘다. 가슴 아픈 일이 있었지만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만났으면 좋겠다"며 영화의 개봉 소감을 밝혔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고 당시 그걸 잊고자 목포에서 서울까지 도보여행을 했다는 김태곤 감독은 "지도를 보며 걷는데 어떤 곳에서 들개 20여 마리에게 쫓긴 적이 있었다. 저 개가 나를 물어 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소재로 영화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또 이 개들도 누군가의 반려견이었을 텐데 어쩌다 들개가 되었을까라는 문제의식도 들더라. 그런 의미도 영화에 같이 담을 수 있겠다 싶어 이 소재를 머릿속에 두게 되었다."며 '탈출'이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를 설명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공간은 공항대교다. 김태곤 감독은 "인천 공항을 가려면 그 다리를 건널 수밖에 없다. 위치적 특성상 안개도 많은 분들이 체험하셨을 것이다. 그런 일상에 재난요소가 가미되면 좋겠더라. 친숙한 공간이 위협으로 다가올 때 이상한 매력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런 체험을 관객들에게 주고 싶었다."며 육지와의 거리가 엄청나게 먼 대교 위 고립된 공간에서의 재난 상황을 그리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다.
지난해 칸에서 먼저 상영된 이후 올해 개봉할 때까지 오랜 시간 영화를 다듬었다는 김태곤 감독은 "약 6분 정도를 줄었다. 칸 영화제에서 관객에게 선보이고 난 뒤 감정 과잉이 되는 부분이 걸리더라. 그런 게 지금 트렌드에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감정을 가이드하듯 음악이 선행되는 것도 트렌드라 생각해서 그런 부분을 바꿨다. 속도감이나 긴장감을 올리려고 더 빠르게 수정했다. 인물별로 조금씩 전사가 있었고, 사고 이후에도 이야기가 있었지만 호흡에 대한 이유로 많이 덜어내고 사건의 속도감을 높이는 쪽으로 선택했다."며 수정의 이유와 목표를 밝혔다.
칸에서의 상영보다는 훨씬 더 속도감이 있어졌지만 반면 개인들의 서사가 누락돼 캐릭터적으로나 드라마적으로 아쉽다는 평을 받는 '탈출'이었지만 감독의 선택과 집중이 있었던 것이다. 장르의 특성에 집중한 편집 덕분에 어떤 관객들은 '탈출'이 '부산행'과 비슷하다는 말도 한다. 감독은 "재난영화는 많지만 대부분의 구조는 많이 익숙하다. 가족관계, 부성애 등이 클리셰라고도 하지만 재난영화에서 가장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관계는 가족관계다. 어떤 식으로 재난을 보여줄 것이냐는 중요하지만 인물들의 관계에서 새로움을 주는 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가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벌어지기에 공간이나 소재가 주는 참신함을 선택했다."며 일부 관객들의 반응에 답했다.
그나마 이번 영화에서 신선한 관계를 설정한 건 반려견과 견주 관계의 조합이었다. 감독은 "부부, 부녀, 자매 등의 관계가 나오긴 하지만 이번에는 새롭게 반려견과 견주의 관계도 추가했다. 조박이라는 캐릭터의 하나뿐인 가족으로 조디를 설명해 조밥을 더 사랑스럽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길 바랬다. 그리고 에코가 CG로 구현되다 보니 살아 있는 동물이 꼭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 반려견을 설정하기도 했다."며 개를 등장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가 아는 그 대교로 보였지만 실제 촬영은 초대형 세트를 제작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감독은 "대교를 실제로 느끼게 하고 싶었고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들에게 몰입감을 주려면 세트가 현실감이 있어야 했다. 실제 다리를 짓는데 필요한 기본 골조나 재료를 사용해 세트를 만들었다."며 1300평의 대형 세트장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안개 낀 다리의 느낌을 주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리고 에코가 100% CG여서 개의 동선, 타격감, 방향성을 하나로 뭉쳐 표현해 내는 게 제일 힘들었고 거기에 공을 제일 많이 들였다."며 제작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을 밝혔다.
애초 이 영화를 기획했던 대로 영화의 메시지를 가져갔냐는 질문에 그는 "메시지를 정해놓고 영화를 만들지 않고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을까를 우선적으로 고민한다. 내가 재미를 느끼는 이야기여야 은유적으로 메시지가 담긴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개에 쫓긴 말초적인 공포감이었지만 이 개도 누군가의 반려견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풍부해졌다.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이들의 관계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답을 했다.
영화의 엔딩이 에코의 얼굴이어야 했던 이유를 묻자 그는 "에코 역시 피해자라 생각했다. 사람들 못지않게 그곳을 탈출하고 싶었던 주요한 캐릭터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캐릭터를 보여줘야 한다 생각했다. 다리를 바라보며 에코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증으로 끝내고 싶었다"며 엔딩을 해석했다.
짙은 안갯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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