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모금에 "와!"…덥고 습한 무더위를 날려버릴 와인 [스프]

홍지영 기자 2024. 7. 1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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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카세]
찌는 듯한 더위와 불쾌지수를 한층 높이는 습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이런 날씨엔 와인 애호가라 해도 와인 마시기가 부담스러워집니다. 자연스레 시원한 화이트 와인에 끌리게 되고요. 이런 날씨에 꼭 어울리는 산뜻한 화이트 와인을 최근 만났습니다.


'지중해의 태양과 알프스가 빚어낸' 알토 아디제 와인

이탈리아 최북단, 알프스 산맥 아래 자리 잡은 알토 아디제(Alto Adige) 지역의 와인입니다. 동계 스포츠 성지인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포도밭이 펼쳐져 있어서 경치를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곳입니다. 낮 동안에는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이 강하게 내려 쬐지만 알프스 산맥과 고도 탓에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추워져 일교차가 큰 곳입니다.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는 딱 좋은 기후이지요. '지중해의 태양과 알프스 풍경이 빚어낸 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 ·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언어도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같이 쓰입니다. 알토아디제 북쪽은 오스트리아의 티롤 지방이어서 이곳을 남쪽 티롤이라는 뜻으로 쥐트티롤(Sudtirol)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열정적인 이탈리아 문화권이라기보다는 사색적인 독일 문화권에 가깝다네요. 이 지역에 처음으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요한 대공도 오스트리아계로 리슬링을 처음으로 심었다고 하네요. 와인에서도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이탈리아 와인보다는 절제되면서 엄격한 독일 와인의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가장 작은 포도밭, 그러나 너무 다양한 와인들

포도밭 면적은 작습니다. 5,800 헥타인데, 이탈리아 전체 와인 산지 중 차지하는 비율이 1% 미만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와인 산지입니다. 하지만 와인 품질은 좋습니다. 포도 품종과 생산 방식에 있어서 엄격한 정부 규제를 받는 DOC 등급을 받은 와인이 98%나 될 정도니까요. 양보다 질에 집중한다는 뜻이겠죠?

이탈리에서 가장 작은 와인 산지인데, 여기서 재배되는 품종은 무려 20개. 품종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와인이 생산됩니다. 포도밭들은 알프스 산지 경사면을 따라 해발 고도 2백 미터에서 1천 미터 사이에 분포돼 있습니다. 해발 고도에 따라 다양한 품종들이 재배되는 겁니다. 이 중 화이트는 65%, 레드는 35%입니다. 고도가 높은 서늘한 지역에서 화이트 와인용 품종들이 더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가파른 경사지여서 포도 재배가 쉽지 않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할 수밖에 없어, 가격도 올라갑니다.

경사지를 따라 분포된 포도밭은 토양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도가 낮은 곳은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이 잘 드는 온화한 포도밭이고, 급경사면은 거친 암석 위주로 공기가 잘 통하는 토양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떼루아'는 다양한 와인이 생산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또한 풍화암과 화산암, 퇴적암 등이 지역에 따라, 고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돼 있는데, 150개가 넘는 다양한 암석이 이들 토양을 구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알토 아디제 와인의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생산자입니다. 협동조합 와이너리와 사유지 와이너리, 독립적인 와인 생산자 등 세 가지 형태로 와이너리가 운영되면서 각각의 개성을 살린 와인들이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포도 품종과 토양, 그리고 다양한 생산자들이 알토 아디제 지역을 이탈리아 최고의 화이트 와인 산지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첫 모금에 '와!' 하는 탄성이...
이탈리아 알토 아디제 와인협회가 최근 서울에서 마스터 클래스와 시음회를 열었습니다. 9가지 와인을 시음했는데. 6가지가 화이트, 3가지가 레드였습니다. 화이트 와인이 65%를 차지하는 만큼 화이트 와인에 힘을 준 시음회였는데, 첫 모금에 '와!' 하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이 지역 5대 화이트 와인 품종이라고 할 수 있는 피노 그리지오, 샤도네이, 게부르츠트라미너, 피노 블랑, 소비뇽 블랑은 왜 이들이 대표 품종인 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고도 탓에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서 놀랄 만큼 신선한 산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접해본 화이트 와인 품종이 이렇게 다른 맛을 낼 수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활력소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1. 피노 그리지오 (Alto Adige DOC Pinot Grigio Giatl)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품종이면서 알토 아디제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화이트와인 품종입니다. 잘 익은 사과, 배, 모과 같은 과일 향이 파워플하게 느껴지면서 짭조름한 맛과 미네랄리티가 입안을 둥글게 감싸는 느낌의 와인이 생산됩니다.

제가 시음한 것은 배나 열대 과일의 잘 익은 향이 강하게 올라오면서 높은 산도가 이를 더 신선하게 느끼게 하고, 미네랄리티가 묵직한 바디감까지 주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와인이었습니다.


2. 샤르도네 (Alto Adige DOC Chardonnay Stegher)

뜨거운 햇살 탓에 잘 익은 과일 향은 기본. 그러면서도 적절한 산미, 우아한 아로마가 돋보입니다. 오크 숙성을 안 하면 파인애플, 바나나, 사과, 배 등의 과일향이, 오크 숙성을 하면 바닐라와 버터 향이 우아하게 나타나며 과일향과 어울립니다. 제가 시음한 샤르도네 역시 우아한 아로마와 바닐라 향에 균형 있는 산미, 여기에 미네랄 노트까지 느껴졌습니다.

화이트 와인 품종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이 샤르도네이지만, 그동안 마셔본 것과 전혀 다른 샤르도네였습니다. 미국 샤르도네와 다르고, 프랑스 브루고뉴의 샤르도네와도 다른 이탈리아 샤르도네의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3. 게뷔르츠트라미너 (Alto Adige DOC Gewürztraminer Vigna Kolbenhof)
대표적인 아로마 품종인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이곳 와인에서 그 정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실제로 알토 아디제에 있는 마을 <트라민>이 바로 게뷔르츠트라미너의 본고장이라고 하네요. 트라민은 게뷔르츠트라미너의 고대 품종이름입니다. 때문에 이곳의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이 품종의 아로마는 이런 것이다'라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장미꽃과 리치 같은 열대 과일향이 풍부한데, 산도가 이 향을 더욱 부채질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장미꽃 향수나, 머스크향이 가미된 향수를 시향 하는 느낌까지 났습니다. 높은 산도와 미네랄리티가 뒤받쳐 주는 덕분에 리치, 망고, 라벤더향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고 파워풀하게 느껴졌습니다.


4. 피노 블랑, 피노 비앙코 (Alto Adige DOC Pinot Bianco Quintessenz)
프랑스에서는 피노 블랑으로 이탈리아에서 피노 비앙코로 불리죠. 해발 8백 미터 이상 고도에서 자랍니다.사과, 배, 레몬의 우아한 아로마와 생동감 넘치는 넘치는 산미가 특징입니다. 제가 시음한 것은 피노 피앙코 품종 가운데서도 수령이 오래된 나무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강한 농축미로 품종의 특징이 확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시음회에서 첫 번째 와인으로 배치해, 알토 아디제 와인의 특성을 강하게 심어 주려고 의도한 것 같습니다. 녹색과 노란 과일향에 더해 허브 뉘앙스, 프랑스의 쇼비뇽 블랑처럼 부싯돌 향과 스모키한 향도 나왔습니다.


5. 소비뇽 블랑(Alto Adige DOC Sauvignon Blanc Oberberg)
프랑스가 원산지인 소비뇽 블랑은 신대륙인 뉴질랜드에서 다른 모습으로 피어났고, 이곳 알토 아디제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소비뇽 블랑 특유의 신선한 풀 향과 구스베리, 패션프루트 향을 지닌 와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시음한 소비뇽 블랑 역시 구스베리, 자몽, 그리고 패션프루트 같은 열대과일향이 민트, 세이지 같은 허브향과도 어울려 나왔습니다.

여기에 프랑스 소비뇽 블랑에서 느낄 수 있는 파워풀한 미네랄 여운까지 더해 바디감도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높은 산도는 이런 향들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해 줬고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과 다른, 프랑스 소비뇽 블랑과도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홍지영 기자 scarle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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