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와 돼지[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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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이라 했다.
오얏은 자두의 옛말이자 고유어인데 요즘은 잘 안 쓸 뿐이다.
단어가, 그리고 말이 이토록 변화무쌍한 것을 안다면 말을 빌미로 젊은 세대들을 구박할 이유가 없다.
아니 자두나무 아래를 갓 쓰고 지나갈 일이 없는 시대에 왜 굳이 이 말을 인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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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이라 했다. ‘금일중식미정(今日中食未定)’을 금요일에 미정이와 중국요리를 먹는 것으로 아는 세대에게는 어렵다. 그래서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마라’로 고쳐야 한다. 그래도 어렵다. ‘오얏’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흔한 성씨인 ‘李’의 훈과 음이 ‘오얏 리’라는데 그 많은 이 씨들은 자기 성씨의 뜻도 모르니 반성해야 한다.
아니, ‘자두’는 다들 아니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얏은 자두의 옛말이자 고유어인데 요즘은 잘 안 쓸 뿐이다. 그런데 사실 자두도 한자로는 ‘紫桃(자도)’라고 쓰고 ‘자두’라고 발음하니 이상한 건 매한가지다. 엄연히 다른 품종인데 자줏빛의 복숭아란 이름이 붙었다가 그마저도 변한 것이다. 자두는 복숭아와 모양은 비슷하더라도 색깔과 과육의 질감은 다른데 복숭아의 아류로 취급되니 억울할 법도 하다.
지역에 따라 자두를 ‘왜지’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게 ‘오얏’과 같은 듯 달라서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이 둘의 관련성은 엉뚱하게도 ‘돼지’가 풀어준다. 돼지는 본래 ‘돝’이었다. 방언에서 ‘도투’가 나타나고, 씨돼지를 ‘씨돝’이라고 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돝’의 받침이 떨어지고 새끼를 뜻하는 ‘아지’가 붙어 ‘도야지’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돼지’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야지’가 지역에 따라 ‘오얏’이나 ‘왜지’로 남은 것이다.
달큼하고 시큼한 자두를 먹으면서 돼지를 떠올리긴 어렵겠지만 기름진 돼지고기를 먹은 후 자두로 입가심을 할 만하다. 단어가, 그리고 말이 이토록 변화무쌍한 것을 안다면 말을 빌미로 젊은 세대들을 구박할 이유가 없다. 한문도 옛말 ‘오얏’도 어려우니 ‘자두나무 아래서 모자를 고쳐 쓰지 마라’라고 말하면 된다. 아니 자두나무 아래를 갓 쓰고 지나갈 일이 없는 시대에 왜 굳이 이 말을 인용하는가. 그들과 통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알 만한 말을 써야 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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