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이민 택한 홍콩인들, 퇴직금 인출 못 해 발 동동

김효선 기자 2024. 7. 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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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통제가 강해지면서 많은 홍콩인이 영국 이민을 선택하는 가운데, 이들이 퇴직연금을 인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홍콩 당국이 영국으로 이주한 홍콩인들은 은퇴 연령인 65세 이전에 퇴직연금을 인출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바꿨기 때문인데, 이에 따라 묶인 돈은 5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홍콩의 한 여성이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 사진 요구 사항을 보여주는 광고 앞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홍콩은 퇴직금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강제퇴직연금(Mandatory Provident Fund·MPF)라는 연금 제도가 있다. 한국의 퇴직금과 비슷한 MPF는 근로자가 면제 대상이 아니라면 고용주가 필수로 가입해야 하는 제도다.

과거 홍콩인들은 영구적으로 홍콩을 떠난다는 서약을 하면 MPF를 일시불로 수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MPF를 소관하는 연금감독청(Mandatory Provident Fund Schemes Authority·MPFA)이 영국 여권을 사용해 이민을 가는 홍콩인들은 65세 이전에는 MPF에서 돈을 뺄 수 없도록 바꿨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블룸버그는 “이는 홍콩이 새 국가보안법을 시행하면서 영국 이민 수요가 증가한 데 따른 조처”라고 설명했다. 홍콩 입법회(의회)는 지난 3월 ‘홍콩판 국가보안법’으로 불리는 기본법 23조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지난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을 보완한 것으로, 반정부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해외 각국 정부들은 해당 법이 기본적 자유를 억압한다며 강력히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홍콩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영국은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가진 홍콩인들의 특별비자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원래 1997년 이전에 태어난 홍콩인들은 BNO 여권을 통해 최대 6개월까지 영국에 머물 수 있었다. 현재는 BNO 여권 프로그램 확대에 따라 특별비자를 받은 홍콩인들은 5년까지 영국에 체류할 수 있고, 이후 시민권 신청도 할 수 있게 됐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14만명이 넘는 홍콩인이 새로운 BNO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으로 이주했다. 또한 올해 1분기 BNO 여권 신청은 전 분기보다 두 배 증가한 9693건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2년 만에 최대 규모다.

MPF 인출이 막히면서 영국으로 이주한 홍콩인들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지난 2022년 BNO 여권을 통해 영국으로 이주한 56세 남성 레오는 지난해 3월 홍콩의 HSBC 연금 계좌에서 5만 파운드(약 9000만원)를 인출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은행이 BNO 여권을 연금 계좌에 접근할 수 있는 공식 문서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65세가 되면 돈을 인출할 수 있다지만 지금 당장 현금이 필요하고, 돈이 많이 투자된 홍콩 주식 시장이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최고치 이후 39% 이상 급락했다. 홍콩에서 태어난 레오는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영국 이민을 택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이에 HSBC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영구 출국 시 홍콩 외부에 거주한다는 증거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MBFA는 BNO 여권이 해당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라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현재까지 인출이 거부된 MPF 규모는 38억 달러(약 5조25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향후 이런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홍콩 워치의 연구·정책 고문인 메건 쿠는 “많은 홍콩인이 MPF에 많은 돈을 저축하고 있으며 또한 의존하고 있다”면서 “국가보안법 제23조 시행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홍콩을 떠나려 하고, 그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홍콩 정부는 그것을 차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기 인출을 시도하고 있어 인출 거부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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