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3살도 안 된 세 자매의 연이은 사망…보험금 노린 악인은 '엄마'였다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8일 방송된 'MOTHER(마더)-세 자매 연쇄 사망 사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청하, 개그맨 김진수, 배우 표예진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원인 불명의 병을 앓은 수빈이
때는 2006년 1월. 경주에 있는 한 병원이야. 27살의 여성 최 씨가 병실을 지키고 있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침대 위에는 생후 9개월 된 딸, 수빈(가명)이가 누워있어. 수빈이는 최 씨가 가슴으로 낳은 아이야. 아이를 원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최 씨는 지난해, 생후 1개월 된 수빈이를 입양했다고 해.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어. 입양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갑자기 수빈이가 아프기 시작한 거야. 감염성 설사와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어. 한 달간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지만 얼마 못 가서 다시 병원을 찾아.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어. 간헐적인 경련을 일으키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하혈을 해. 장출혈까지 일으킨 거야. 기저귀를 떼어내면 온통 뻘겋게 피로 물들어 있어.
"두 가지가 문제였습니다. 하나는 간헐적인 경련이고, '경기한다'고 하듯이. 두 번째는 다량의 하혈이고. 그러나 원인은 불명이었다."
-황진복, 수빈이 진료병원 의사
담당의사는 원인불명의 희소병으로 진단을 내려. 그 말에 엄마 최 씨는 충격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대.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지.
최 씨 부부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어. 트럭을 운전하는 일을 하는 남편은 병원비를 대기 위해 일을 두 배로 늘려야 했대. 수빈이를 돌보는 것은 아내 최 씨의 몫이야. 날이 갈수록 빚은 늘어만 가. 하지만 수빈이를 포기할 수 없어. 그런 최 씨를 보며 병원 측에서는 후원금을 모금하는 방송에 나가보라 제안해. 그렇게 최 씨는 후원방송에 출연하게 됐어. 그때 영상을 보여줄게.
방송 내레이션: "입양한 수빈이가 아프단 말에 충격으로 쓰러졌던 엄마."
방송 내레이션: "이유 없이 또 피를 쏟아냅니다. 벌써 열 달째인데, 이렇게 축 처진 아이를 보면 엄마는 아직도 겁이 납니다."
"입양센터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아기를 입양센터에 다시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남편과 나는 한번 내 딸이면 내 딸이지, 포기할 마음도 없고. 아기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최 씨
TV 방송에 이어, 지역신문에도 수빈이의 이야기가 실렸어.
"한 살배기 수빈이는 병원에서 첫 생일을 맞았다. 같은 병실을 쓰는 어린이 환자 어머니들이 생일케이크, 과일, 떡을 챙겨줬다. 담당의사는 예쁜 옷을 수빈이에게 선물했다. 그날 밤 수빈이는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수빈이를 바라보는 어머니 최 씨는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언제 갑자기 또 혈변을 볼지, 몸에 경련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다. 수빈이는 지난해 중순부터 병원을 들락거렸다. 수빈이에겐 병원이 가장 친숙한 곳이다. 가끔 집에 가면 오히려 낯설어하고 당황한단다."
-수빈이 사연을 전한 신문기사 中
"수빈이는 바깥세상 구경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밖은 지금 한창 봄꽃이 만발하겠지요? 남편과 함께 수빈이를 안고 꽃구경을 할 수 있는 날만 애타게 기다립니다."
-최 씨
이렇게 방송으로, 기사로, 수빈이의 사연이 소개됐어. 최 씨 모녀의 사연은 큰 반응을 일으켰어. 방송사에 모인 후원금이 천오백만 원, 신문사에도 칠백만 원이 모금됐다고 해. 수빈이가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온정의 손길이 이어진 거야.
하지만 모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수빈이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어. 방송 2개월 후, 갑작스러운 호흡부전으로 세상을 떠났어. 수빈이의 나이, 생후 15개월. 너무나도 짧은 생이야. 수빈이는 한 줌 유골이 된 후에야 집에 돌아오게 돼.
최 씨 부부는 수빈이를 쉽게 보내지 못했대. 수빈이의 유골함을 집에 놔두고 지낸 거야. 수빈이가 좋아하던 빵과 요구르트를 차려주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대했다고 해. 그 심정, 이해가 되니? 사실 최 씨 부부에게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어.
▲ 연이은 아이들의 죽음
최 씨 부부는 수빈이를 입양하기 2년 전, 친딸을 잃었어. 이미 같은 아픔을 겪었던 거지. 지난 2001년, 최 씨의 나이 22살이 되던 해, 남편과의 사이에서 첫딸 서연(가명)이가 태어났어.
임신 30주 만에 미숙아로 태어난 서연이는 태어나자마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대. 집보다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결국 생후 20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 엄마 최 씨는 그때를 떠올리면 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해. 그래서일까. 최 씨는 아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시작해.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는 임시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한 거야.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보던 최 씨는 입양을 결심하고 입양기관을 찾아가. 왜 아이를 입양하려 하는지 이유를 묻자 최 씨는 이렇게 말해.
"첫 애를 잃고 나서 아이를 너무 갖고 싶었어요. 하지만 또다시 아이를 잃을까봐 너무 무서워요."
첫딸 서연이의 죽음이 혹시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 질환 때문이 아닐까. 그게 두려워서 낳지 않고 입양을 결심했다는 거야. 최 씨는 그렇게 둘째 딸 수빈이를 만났어. 하지만 1년 2개월 만에 또다시 수빈이를 잃게 된 거야.
둘째 딸 수빈이를 떠나보내고 2년 후, 최 씨의 집에서 아이 웃음소리가 들렸어. 아이들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걸까? 최 씨 부부가 셋째 딸을 입양한 거야. 이름은 민서(가명)라고 해.
생후 5개월에 입양된 민서는 아주 건강했대. 애교가 많아서 방긋방긋 웃기도 잘 해. 처음엔 입양을 반대했던 남편도 집에 오면 민서부터 찾았대.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어. 입양한 지 한 달 만에 아이가 또 아프기 시작한 거야. '청색증'이라고 들어봤어? 갑자기 얼굴이 퍼렇게 질리면서 숨을 못 쉬어. 그리고 발작하듯 경련을 일으킨다고 해. 보통 이런 경우에는 뇌전증을 의심한대. 하지만 뇌파검사도 해보고 MRI도 찍어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비디오 뇌파검사라고 하는 실제 경련을 포착하기 위한 검사에서도 이상이 관찰이 되지 않았다는 거..."
-남상욱 의사, 민서의 담당의사
민서는 수시로 응급실에 실려오고 입퇴원을 반복하게 돼. 그러다 2010년 1월 14일, 민서가 이상하다는 최 씨의 다급한 외침에 의료진이 달려가. 민서가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숨을 쉬지 않아. 서둘러 산소를 공급하고 심장마사지를 한 결과, 다행히 호흡은 돌아왔어. 하지만 민서는 다시 깨어나지 못했어. 뇌사상태에 빠지고 만 거야. 두 달 후, 조용히 죽음과 싸우던 민서는 결국 숨을 거뒀다고 해.
세 아이가 연이어 죽음을 맞이했어. 이게 자연스러운 일일까?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어.
"이상하네… 이 집은 왜 자꾸 애가 이렇게 되고. 큰 애가 너무 억울하게 죽어서 자꾸 해코지하는가…"
"머리가 주뼛주뼛 서요. 어떻게 죽었는지, 진짜 그것 꼭 좀 밝혀내주세요."
-이웃 주민들
하지만 소문은 소문으로만 남았어. 더 이상 세 아이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어.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사람으로 인해 사건은 180도 뒤집히고 말아.
▲ 의심하는 사람들
민서가 사망하고 얼마 후, 지역 경찰서에 한 남자가 찾아와. 그리고 세 자매 사망사건을 수사해 달라고 했어. 이 남자, 누굴까?
"경북 안동 경찰서에서 18년간 근무 후 퇴직하고 D사 보험 범죄 특수조사팀인 S.I.U에 입사를 했죠. 제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이제 이 얘기를 들었어요. 애가 죽었는데 좀 이상하다. 옛날에 형사도 하고 했고 해서 촉이 오더라고요."
-김동영, 세 자매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한 남자
S.I.U는, Special Investigation Unit. 보험회사에 소속된 민간 조사단이야. 김동영 조사원은 전직 경찰 출신이야. 형사반장으로 퇴직한 후 보험회사 S.I.U팀에서 근무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다른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는 고향후배로부터 아이 셋이 연달아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아보니, 셋째 딸 민서가 김 조사원이 근무하는 보험회사에도 가입이 되어 있었어. 고향 후배의 보험사랑 김 조사원의 보험사, 양쪽 보험회사에서 아이들의 보험금이 지급됐던 거야. 금감원에서 자료를 조회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냐.
먼저 세 아이가 사망한 시기야. 첫째 딸 서연이는 생후 20개월, 둘째 딸 수빈이는 생후 15개월, 셋째 딸 민서마저 생후 2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어. 모두 만 세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한 거야. 입양기관에서는 입양을 보내기 전 건강검진을 해서 아무 이상이 없는 아이만 입양을 보낸다고 해. 선천적인 질병이 있던 아이들도 아니었어.
가장 이상한 점은 따로 있어. 아이들의 증상이야. 둘째 수빈이는 감염성 설사와 장염증세로 병원에 입원했어. 증상이 점점 심해지더니 원인 모를 경련과 장출혈로 피를 쏟아냈다고 했지? 수빈이를 입양하기 전 사망한 친딸 서연이의 증상, 뭐였을까? 알고 보니 첫째 딸 서연이도 TV 후원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어.
"중증 소아환자들이 씨름하는 병실 한 귀퉁이. 18개월 아기가 있다. 제 힘으로 우유병 하나 빨지 못해 코로 흰 우유를 삼키는 아기. 혈관성 장애와 세균성 패혈증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붉은 피를 쏟곤 한다. 고통스러운 아기의 울음 뒤로 어느새 흰 기저귀가 빨갛게 젖었고..."
-2003년 당시 방송 내레이션 中
첫째 딸 서연이도 장염 증상으로 입원했다고 해. 증상이 점점 심해지더니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출혈로 하루에도 몇 번씩 피를 쏟아냈대. 둘째 수빈이의 증상과 똑같아. 첫째 딸은 친딸이고 둘째 딸은 입양한 딸이잖아. 서로 핏줄이 다른 두 아이가 같은 증상의 희소병을 앓았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그럼 셋째 딸 민서의 증상은 어땠을까? 민서 역시 장염으로 처음 병원을 찾았어. 세 아이 모두 똑같은 증상을 보였던 거야.
그러면 아이들의 사망원인은 어땠을까? 첫째 딸,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 둘째 딸, 갑작스러운 호흡부전으로 사망. 셋째 딸의 사망원인은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인증. 다시 말해, 세 아이 모두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는 뜻이야.
"부모가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다 같은 질병이에요. 장염, 호흡 곤란… 그리고 아이가 인지하기 전, 아이들이 3세 이전에 죽고. 이건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죠."
-김동영 조사원
김동영 조사원은 세 아이의 죽음 뒤에 밝혀지지 않은 뭔가가 있음을 직감해. 그래서 사건 서류를 들고 관할 경찰서를 찾아간 거야. 수사 의뢰는 받아들여졌을까? 아니, 거절당했어. 경찰서 네 군데를 다녔는데 다들 손사래를 쳐. 왜 수사를 거절한 걸까?
"이 사건, 힘들어요. 아시잖아요. 애들 죽고 나서 다 화장했고, 부검도 안했고. 증거가 하나도 없잖아요."
증거가 없으면 기소도 힘들어. 만약 재판까지 가더라도 밝히기 쉽지 않아. 형사 생활을 오래 한 김 조사원도 거절하는 경찰의 부담감이 이해는 됐대. 하지만, 여기서 포기했을까? 김동영 조사원은 형사 시절 불리던 별명이 있었다고 해. 바로 '독사'. 한번 물면 집요하게 파헤쳐서 붙여진 별명이래. 이번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어. 절대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았대.
"이상하게 그 사건에 대해서 되게 집착이 가더라고요. 죽은 애가 나한테 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계시한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가끔씩 들었어요."
-김동영 조사원
김동영 조사원은 다섯 번째로 경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를 찾아가. 광역수사대, 줄여서 광수대라고 하지. 관할구역에 얽매이지 않고 수사할 수 있는 경찰청 직할 부서야. 광수대를 찾아간 김 조사원은 사건 서류들을 꺼내. 하도 들고 다녀서 모서리가 다 닳아버렸대. 사건 브리핑을 마치고는 감정적으로 호소하기 시작해.
"정말로 아파서 죽었는지, 아니면 학대받아서 죽었는지 원이나 좀 풀어주자. 내가 심지어 수사관 보고 '내 소원입니다' 그랬어요."
-김동영 조사원
제발 이 사건을 수사해 달라고,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었을지도 모르니 꼭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어. 김 조사원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그 표정을 내가 잊을 수가 없어요. 박 팀장의 표정을. 씨익 웃으면서 '소원이면 해야죠. 밝혀봐야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하고 죽은 애도 불쌍하지 않잖아. 명백하게 밝혀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김동영 조사원
다행히 경북청 광수대에서 사건을 맡기로 했어. 수사팀장의 지시로 이태호 형사가 수사를 맡았어. 이 형사는 어떤 마음으로 수사에 임했을까?
"수사가 선뜻 나서기 어려웠던 게, 세 아이 모두 병원에서 사망했고 모든 게 이미 법적 절차가 다 끝난 상태였습니다. 사실 저도 자신은 없거든요. 차근차근 보다 보니까 아, 이거는 확실히 의문점이 있다라는, 끝은 어떻게 되든 간에 해봐야 되겠다는, 수사를 해봐야 되겠다는 욕심이 생긴 겁니다."
-이태호 형사, 당시 경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보험금을 노렸나
그렇게 시작된 수사,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만약 아이들이 질병으로 사망한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고의로 아이들을 사망하게 만든 거라면, 가장 먼저 의심해봐야 할 사람, 누굴까?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있었던 사람. 트럭 운전을 하는 남편 대신 아이들을 돌봐온 사람. 바로 세 아이의 엄마, 최 씨야.
정말 최 씨는 아이들의 보험금을 노린 걸까? 그럼 최 씨는 아이들 앞으로 몇 건의 보험을 들었을까? 첫째 딸 서연이 앞으로 한 건, 둘째 딸 수빈이 앞으로 한 건, 셋째 딸 민서 앞으로는 세 건의 보험을 들었다고 해.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만 20만 원이 넘어. 빚을 지고 있는 형편에 감당하기엔 부담되는 액수야. 충분히 의심스러운 대목이지? 그러면 세 아이 앞으로 지급된 보험금, 얼마나 될까?
그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가 있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항목 중에 가장 액수가 큰 항목이 뭘 것 같아? 그래, 사망보험금이 가장 액수가 크겠지. 하지만 상법 제732조에는 이런 조항이 있어.
'15세 미만인 자의 사망을 담보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로 한다.'
15세가 안 된 어린아이는 사망보험을 들 수 없다는 얘기야. 이런 조항이 생긴 슬픈 이유가 있어. 보험금을 받기 위해 부모가 아이들을 살해하는 걸 막기 위해서래. 이런 법이 생겼다는 건 이런 일들이 실제 있었다는 걸 의미해.
1998년 9월, IMF로 고통받던 시기에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났어. 경찰에 한 통의 신고전화가 걸려온 거야. "복면을 쓴 강도들이 제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달아났어요"라는 신고전화였어. 신고한 사람은 10살 아이의 아버지였어. 하지만 수사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 끔찍한 강도사건은 아버지의 자작극이었어. 초등학생 아들의 손가락을 절단한 범인은 아버지였던 거야.
아버지는 아들 명의로 천만 원짜리 보험에 들었어. 그리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예행연습까지 했어. 경찰에 잡힌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자작극을 벌이게 됐다고 말했어.
"가난이 죕니다, 가난이…"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
범행을 숨기려다 아들은 손가락 접합 수술도 못 했어. 아들은 왜 아빠의 범행에 함께 하게 됐을까.
"손가락을 끊으면요. 돈을 한 7백, 8백 받는다고요. 그래서요. 아빠 지금 내 급식비도 못 내고 있거든요. 그래서 했어요."
-아들
아빠가 밉지 않냐고, 아빠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냐 물으니 아들은 이렇게 답했어.
"미안하다고요. 아빠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말을 해서요. 그래서 미안해요. 아빠가 조금 말로만 혼나고 벌은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아들한테 "엄마 보고 싶지? 그럼 아빠 말대로 해야 돼. 돈을 받아서 빚을 갚아야 엄마가 돌아올 수 있어"라고 말했대. 외환위기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의 손가락을 대가로 보험금 천만 원을 받으려고 한 거야.
이런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자 2009년 금감원은 어린이 사망보험을 전면 금지시켰어. 그런데 이 형사는 바로 이 점이 의문이었대.
"의문이 갔던 게 그렇다고 보험금이 많이 지급되는 것도 아닌데, 그걸 노리고 과연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생각했겠나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요.."
-이태호 형사
만약 최 씨가 보험금을 노린 거라면, 얻을 수 있는 대가는 입원비, 치료비 정도야. 입원비는 하루에 3만 원 정도고. 이 정도 돈 때문에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걸까?
▲ 드러나는 의문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 이 형사는 이웃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시작해.
"동네 이웃 아주머니들 상대로 탐문부터 먼저 시작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가 딱 이야기해 주는 게, 장염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첫째도 그랬고 둘째도 그랬고. 애가 옆에서 칭얼거리고 울면 아직 신생아인데 젖병 소독이라든가, 뭐 모유수유도 안 했고. 그냥 뭐 두유를 그냥 젖병에 넣어가지고 애한테 물려버리더라. '이러면 애 큰일난다'라고 충고를 해도 그걸 무시하고 계속 똑같이 반복했다, 이랬기 때문에 장염이 생긴다… 주변탐문할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얘기가 그거예요."
-이태호 형사
신생아들은 감염에 아주 취약해. 하지만 최 씨는 첫째 딸을 키울 때부터 신경을 쓰지 않았대. 씻지도 않은 젖병에 두유를 담아서 먹였다는 거야. 그것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에게. 심지어 최 씨는 외출하면서 아기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도 했대.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에겐 치명적일 수 있어. 정상적인 아이 엄마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들이야. 세 아이가 모두 장염을 앓았던 이유, 엄마 최 씨의 부주의 때문일까? 아니면 혹시... 고의로 그랬던 건 아닐까?
이 형사님은 아이들의 담당의사를 모두 만났어. 아이들의 증상에 대해 묻자 담당의사는 이렇게 답해.
"치료를 해도 계속 장염을 일으키는데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현대의학으로 검사해 봐도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희소병으로 진단한 겁니다."
이때 이 형사가 "만약 아이 엄마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고의로 장염을 유발시켰다면, 그게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건가요?"라고 다시 물었어. 담당의사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며, 상상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저어. 그리고는 잠시 후 이렇게 덧붙여.
"만약 그랬다고 하면 그 증상들도 설명이 가능하죠.."
의사가 아이들의 병명을 원인불명의 희소병으로 진단한 것은, 당연히 보호자가 정상적으로 양육했다는 걸 전제로 한 거야. 그런데 만약, 보호자가 고의로 장염을 유발했다면? 아이들의 증상이 설명 가능하다는 얘기인 거지.
아이 엄마 최 씨의 고의인지는 아직 알 수 없어. 하지만 수사를 진행할수록 의심스러운 점들이 속속 드러나. 둘째 수빈이를 담당했던 교수님이 학계에 발표했던 논문에 이런 내용이 있어.
"전체 결장절제술 이후의 과정은 특별한 일이 없었으며 출혈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2주 후, 원인불명의 심실세동으로 심장마비를 겪고 사망했다. 부모는 부검을 거부했다."
둘째 딸 수빈이의 장출혈을 막기 위해 수술치료를 했어. 수술은 잘 끝났지만 2주 후 갑자기 사망한 거야. 그다음 내용이 중요해. '부모는 부검을 거부했다'는 것. 아이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망했어. 사망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부검이 필요하잖아. 아이들이 아픈 원인이라도 알려달라며 눈물 흘리던 최 씨는, 정작 왜 부검을 거부하고 화장을 한 걸까?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도 확신하기는 일러. 수사를 계속하던 이 형사는 입양기관을 찾아가. 그리고 그곳에서 100% 확신을 얻게 돼.
"입양기관을 찾아낸 게 아마 대구에 있는 입양기관이었습니다. 그때 아마 제일 우리가 확신을 가진 겁니다. 둘째 같은 경우는 태아보험을 먼저 들었습니다. 미리 태아보험을 먼저 가입하고 입양은 한 두세 달 뒤에 입양을 한 걸로 알거든요.."
-이태호 형사
둘째 수빈이를 입양한 건 2005년 5월이야. 그런데 최 씨는 두 달 전인 3월에 미리 보험설계사를 만나 태아보험을 들었던 거야. 태아보험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 드는 보험이야. 임신한 상태가 아니었던 최 씨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기를 낳는다' 하면서 '임신을 해서 아기 보험에 가입한다'고 해서 가니까, 이렇게 배가 불룩했거든요."
-보험 설계사, 둘째 태아보험 담당
최 씨가 보험설계사한테 임신을 한 척 속여서 태아보험에 가입했다는 거야. 임신 34주 차라고 구체적인 출산 예정일까지 말했대. 그리고 두 달 뒤 수빈이를 입양하고는 친자로 출생신고를 한 거야. 최 씨는 병원에 입원할 때에도, 후원방송에 출연할 때에도, 수빈이를 입양한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어. 그런데 왜 보험회사에만 입양사실을 속인 걸까? 나중에 보험금을 탈 때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
게다가 최 씨는 보험에 가입할 때 "의료비 혜택을 제일 많이 받는 보험이 뭐가 있나" 물어봤다고 해.
"이거는 고의적이다. 보험금 노리고 고의적으로 입양을 한 거다라고, 그때 확신한 겁니다."
-이태호 형사
이 형사는 100% 확신하게 돼. 처음부터 보험금을 노린 계획적인 범죄가 틀림없다고.
그렇게 최 씨가 받은 보험금은, 세 아이 모두 합쳐 6천만 원 정도야. 한번 청구할 때마다 받은 보험금은 몇십만원 수준이었어. 이게 6천만 원이 될 때까지, 아이들이 계속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았다는 거지. 그 기간 동안, 세 아이는 얼마나 고통받아야 했을까?
이건 셋째 딸 민서의 진료기록이야.
하루이틀 간격으로 꾸준히 병원을 오간 걸 확인할 수 있어. 설사, 장염, 경련, 체중 감소… 빼곡히 고통의 기록이 적혀 있어. 첫째 서연이, 둘째 수빈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9년 간, 그 대가로 최 씨가 받은 보험금은 6천만 원. 그리고 후원금으로 받은 돈까지 합하면 총 1억 원 정도야. 9년이니까, 1년에 천만 원 정도야. 이 돈이 세 아이의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가치가 있는 걸까?
▲ 결정적인 단서, 목격자의 등장
이 형사님은 몇 개월간 이 사건에 매달렸어. 수사를 할수록 아이 엄마 최 씨에 대한 혐의가 짙어져. 하지만 모든 게 정황증거일 뿐, 아직 결정적인 단서는 찾지 못했어.
"제 입장에서는 '이걸 계속 진행해야 하는가?' 묻는다면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증거를 찾을 때까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그 상태에서 아마 못하겠다고 수사 포기하는 경찰관은 없을 겁니다."
-이태호 형사
그렇게 수사를 계속하던 중, 이 형사는 결정적 단서를 마주하게 돼. 민서의 진료기록 중, 2010년 1월 23일자 내용에 적혀 있는 걸 봐줘.
"1/14 환아 CPR 전 옆 병상에 있던 정OO의 말에 따르면, 짧은 무호흡이 있기 전 엄마가 침대 커튼을 닫고…팩스 내용 참조"
1월 14일은 민서가 뇌사상태를 일으킨 날이야. 그날 같은 병실에 있던 여고생 정 양이 간호사에게 뭔가를 이야기했대. 민서에게 무호흡 증상이 나타나기 전, 엄마 최 씨가 침대 커튼을 닫았다고 해. 그다음 내용은 팩스로 보낸 문서에 적혀 있는 것 같아. 그 팩스 내용을 확인한 김동영 조사원은 큰 충격에 빠졌어.
"(같은 병실) 입원환자 여고생 말에 의하면, (셋째 민서가) 엄마와 있다가 바로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로 내려갔어요. 내려가고 난 다음에 간호사한테 그 얘기를 해주니까 간호사가 수기로 쓴 거죠. 그 수기로 작성된 걸 직접 봤죠. 팩스로 받아서. '엄마가 커튼을 치고 애를, 입을 막고 있다'… 그 친구가 결정적이었어요. '이거는 진짜 맞구나'하는 걸 결정적으로 느낀 게..."
-김동영, 보험범죄 특수조사팀
셋째 딸 민서의 사망원인은,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뇌로 가는 산소가 부족해 뇌손상을 입었다는 거야. 숨을 쉬지 못해 사망했다는 거지. 여고생이 목격한 상황과 사망 원이 맞아떨어져. 그럼 이 팩스 내용이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좀 애매해. 증거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목격자가 직접 나서서 말을 해줘야 해.
이 형사는 여고생 정 양의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자 정 양의 어머니가 나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정 양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정 양 어머니가 난처한 듯 이렇게 말해.
"우리 애가 고3이라서요. 수능 준비하는데 지장 있을까 봐 걱정되네요. 죄송하지만 그냥 놔두시면 안 될까요?"
딸이 안 좋은 일에 휘말리는 게 걱정되셨던 모양이야. 어머니 입장도 이해는 되지. 이 형사는 간곡히 부탁을 드렸어. 딸을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억울한 죽음이 이대로 묻힐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날 밤, 정 양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
"우리 애가 그러네요.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을 못 했는데, 그 이야기를 안 하면 내 평생 가슴에 한이 될 것 같다'고. 경찰 아저씨한테 이야기하겠대요."
정 양은 직접 경찰서로 찾아왔어. 침묵 대신 진실을 밝히려고 용기를 낸 거야. 진술녹화실에서 카메라 앞에 선 정 양은 자신이 목격한 걸 이야기하기 시작해.
"민서가 제 옆자리였어요. 그쪽은 창가 쪽 자리였고 저는 그 옆자리였는데, 그냥 아줌마가 좀 이상했어요. 애가 엄마랑 있으면 미친 듯이 울고, 아빠랑 있을 때는 진짜 빵긋빵긋 잘 웃고. 엄마랑만 있으면 막 울고 경기하고. 근데 애가 중환자실 가있는데 그 아줌마가 이제 웃으면서 다니고…"
-민서와 같은 병실을 쓴 여고생 정 양
민서가 경기를 일으켜서 중환자실로 갔을 때 엄마 최 씨가 웃는 모습을 봤다는 거야. 중요한 건 그다음 내용이야.
"거기가 아동병실이라서 아기들이 전부 다 잘 시간이 있단 말이에요. (최 씨가) 커튼을 치고 잠을 자겠대요. 근데 빛이 막 창가에서 들어오는데, 실루엣이 보이는데. 침대 위에 개가 엎드린 자세 있잖아요. 고양이 자세로 엎드려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실루엣이 보이고 소리도 들리는데. 애가 숨을 못 쉬는 소리 있잖아요? 윽윽 이러면서. 설마 설마 하면서 커튼을 살짝 걷었는데 아줌마가 아기 위에서 병원복으로 애 얼굴을 누르고 있는 거예요."
-민서와 같은 병실을 쓴 여고생 정 양
최 씨가 환자복 바지로 민서의 입을 막고 있었대. 그 광경을 정 양이 직접 목격한 거야. 놀라서 얼어붙어 있는데, 그때 최 씨가 쓱 돌아봐. 그리고는 정 양과 눈이 딱 마주쳤대. 그 순간 최 씨가 뭐라고 했을 것 같아? 최 씨는 아무 말없이 한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대.
"셋째 민서를 몸 위에서 누르면서 병원복을 쥔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는데, 자기하고 눈이 마주치니까 아기 엄마가 손가락으로 입을 막아요. 말하지 말라고. 그 모습이 자기는 생생하다 이거예요."
-이태호 형사
잠시 후, 최 씨가 커튼을 확 젖히더니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이상해요!!" 하며 간호사를 부르기 시작해. 의료진이 몰려와 민서를 데리고 중환자실로 간 후에야 정 양은 어머니에게 뛰어가.
"심장이 막 벌렁벌렁해 가지고 엄마한테 막 갔어요. '엄마. 내가 이런 거 봤다' 엄마가 '그럴 리가 없다'고. '네가 잘못 봤다'고. '얼굴 닦아주고 있는 건데 네가 잘못 봤겠지' 그랬어요."
-민서와 같은 병실을 쓴 여고생 정 양
정 양은 간호사에게도 이야기했어. 간호사도 정 양의 말을 믿지 못했던 거 같아. 하지만 간호사가 의료차트 위에 연필로 메모를 남겼어. '엄마가 커튼을 치고 애 입을 막고 있었다'라고.
만약 그 메모가 없었다면 정 양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거야. 그날 중환자실로 실려간 민서는 질식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뇌사상태에 빠졌어.
"그날이죠. 정 양은 확신하는 거죠. 민서가 그래서 죽었다는 걸. 그러다 보니까 자기는 말 안 하고 가면 가슴에 한이 맺힐 것 같다. 자기는 무조건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더라고요."
-이태호 형사
▲ 세 자매 연쇄 사망 사건
이 사건은 살인사건이야. 그리고 정 양이 유일한 목격자야. 이제 최 씨를 체포해야지. 이 형사는 체포영장을 청구하기 위해 검사를 만나. 하지만 검사는 영장을 발부하기를 주저해. 목격자의 증언이 있지만 명확한 물증이 없는 사건이야. 행여 목격자가 진술을 번복하게 되면, 공소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한 거야. 이 형사는 물러서지 않고, 체포영장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어.
고민하던 검사는 "그럼 자백을 받을 수 있겠냐" 물었어. 이 형사는 처음 수사를 시작할 때 솔직히 자신 없었다고 말했었잖아? 하지만 이번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해. "네. 자신 있습니다"라고. 그렇게 발부받은 체포영장을 받아 들고 최 씨의 거주지로 향해.
"최 씨의 거주지로 찾아갔던 거 같은데 영장 집행하러. 집에 가니까 울산에 있는 어떤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그쪽으로 다시 찾아갔습니다. 울산에 있는 병원에 아마 진료받고 나오는 걸 우리가 체포영장을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마 자기 말로는 그 병원에 온 게 '임신을 하기 위한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애를 갖고 싶어서 산부인과에 지금 다니고 있다고…"
-이태호 형사
최 씨는 아기를 가지려고 시험관 시술을 받으려 했대. 체포되는 순간까지 또다른 아이를 가지려고 했다는 거야.
최 씨는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를 받아들였다고 해. 그렇게 최 씨를 상대로 신문조사가 시작돼. 최 씨의 자백을 받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 최 씨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을까?
형사: "젖병 소독도 안 하고 애한테 두유를 먹이면 어떡합니까?"
최 씨: "제가 몰라서 그랬어요."
형사: "고의로 장염을 유발시킨 거 아니에요?"
최 씨: "아니에요.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애들이 자꾸 병이 난 거예요."
아이들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키운 건 시인을 해. 하지만 고의는 아니었대. 이 형사는 이제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어.
형사: "셋째 병실에 있을 때, 아이 입은 왜 막았어요?"
그러자 최 씨는 입을 다물고 대답을 피해. 시간은 점점 가는데 확실한 진술은 받지 못했어. 그렇게 1차 조사가 끝났을 때 누군가 최 씨를 찾아와. 최 씨의 남편이 면회를 온 거야. 남편은 아이들 병원비를 벌기 위해 바쁘게 일하느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해. 보험회사에서 나온 돈은 고스란히 최 씨가 챙겼어. 이 형사는 최 씨의 남편에게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해 줬어.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자신이 이야기해 보겠다고 나섰어. 그렇게 조사실로 들어간 남편은 잠시 후 밖으로 나와.
"이제 다 이야기할 겁니다."
밤늦은 시간, 2차 조사가 시작됐어. 남편을 만난 후 최 씨는 순순히 입을 열었어.
▲ 악마의 고백
지금부터는 최 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이야.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게 될 거야. 마음 단단히 먹고 봐.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최 씨는 첫째 딸 서연이를 병으로 잃었다고 해. 그 과정에서 최 씨에게 뜻하지 않은 수익이 생겨. 보험금을 받게 된 거야. 그때 최 씨는 '애가 아프면 돈을 받을 수 있구나' 생각했어. 첫째 딸의 죽음을 겪으며 학습을 한 거야.
둘째 딸 수빈이를 입양한 그녀는 일부러 더러운 젖병에 음료를 담아 먹이기 시작했어. 정수하지 않은 물을 먹이기도 했대.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최 씨는 멈추지 않았어. 아이가 장출혈을 일으켜 피를 쏟아내는 걸 보면서도 최 씨는 보험금을 청구했어. 그녀에게 자식은 현금인출기나 마찬가지였던 거야.
최 씨의 말대로 고의로 장염을 유발시키는게 가능한 일인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봤거든.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어. 우리나라는 영아 사망률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낮다고 해. 그만큼 높은 보건 수준을 갖고 있다는 거야. 더러운 젖병에 음료를 먹으면 장염에 걸릴 수는 있어도 장출혈로 사망에 이를 확률은 아주 적다고 해. 그래서 전문가는 최 씨가 진술한 것보다 더 끔찍한 행동들이 있었을 거라고 해.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게 수빈이가 세상을 떠나자, 최 씨는 셋째 딸 민서를 입양하게 돼. 이번엔 보험을 세 개나 들어. 매달 내야 하는 보험금이 20만원이 넘었지만, 최 씨는 상관하지 않았어. 그만큼 더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최 씨의 계획에 문제가 생겼어. 생후 5개월에 입양된 민서가 아주 건강했어. 장염에 걸려도 병원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졌거든. 병원에 오래 입원해야 돈이 되는데, 아기가 잘 아프지 않아. 그러자 최 씨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건강하다 보니까 장염을 일으켜야 하는데, 애가 장염을 잘 안 일으킨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입을 막은 거예요. 아프게 만들어야 되니까."
-이태호 형사
아이의 얼굴이 퍼렇게 질리면, 그 때야 멈췄어. 병원에 입원시키고는 보험금을 챙겼고, 민서가 퇴원하면 이런 짓을 반복했어. 무려 2년 동안.
그러는 사이 민서가 생후 28개월이 됐어. 이제 충분히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야. 그렇게 계속 병원에 데려갔다가 민서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최 씨는 의심을 받겠지.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뇌사상태야. 정 양이 목격한 그날, 최 씨는 대담하게 병실 안에서 범행을 저질렀던 거야. 세 아이를 잃은 가련한 엄마의 모습은 그녀가 만든 가면에 불과했어.
최 씨의 자백을 받은 그날 새벽, 김동영 조사원은 출장차 대전으로 향하고 있었어. 새벽 6시 반 정도 됐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더래. 누군가 하고 봤더니 광수대 수사팀장이야. 그러자 수사팀장은 "아이 엄마 자백받았습니다. 조사원님 말이 다 맞았습니다"라고 알려줬어.
"다른 아무 말 없이 '어젯밤에 잡아서 자백 받았다'고 그러더라고요. 지금도 소름 끼치는데… 바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어요. 차를 세우고 한참 앉아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주루룩 나더라고. 가까운 사찰 검색을 해서 갔어요. '좋은 데 가', 애들 보고 '잘 가라' 그러면서 향을 피우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되게 나더라고요."
-김동영 조사원
김 조사원이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 그동안 서류로만 접해왔지만 아이의 얼굴은 본 적이 없었대. 수사팀장이 보여준 셋째 딸 민서의 사진을 김 조사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해. 사진 속 아이의 모습이 너무 해맑아서.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팀장이 한 번은 사진을 보여주더라고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진짜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마음이 더 아팠어요. 그 사진을 보고 난 다음에. 얼굴이 동글동글 하면서 되게 해맑게 웃던 그 모습이…"
-김동영 조사원
▲ 가면 속 진짜 얼굴
최 씨의 검거소식은 곧 세상에 알려졌어.
최 씨: 보험금 때문에… 돈 때문에 그랬어요. 잘 키우려고 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형편이) 안 돼서 그렇게 했어요.
리포터: 하루에 입원하면 3만 원 나오는 건가요?
최 씨: 네. 그래서 아프면 바로 입원시키고. 흑흑흑. 살아서 못 갚을 죄, 죽어서도 못 갚지 싶어요. 죽어서도 용서를 못 빌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서 오열하는 최 씨를 보며 이 형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대. 조사를 받을 때와는 완전 딴판이야.
"저한테 진술할 때는 그렇게 반성을 뉘우치는 태도의 그런 자백은 아니었고. 부인하다 부인하다 나중에 시인하면서 그냥 어떤 소극적인 자백, 이 정도가 다인데… 갑자기 인터뷰하니까 오열을 하더라고요.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영악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이태호 형사
그녀는 여전히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고 있는 걸까? 하나 더 보여줄 게 있어. 재판을 앞두고 최 씨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야.
"당신 많이 힘드시죠? 날씨도 많이 추워지는데... 정말 여러 가지로 당신 어깨에 무거운 짐만 지워놓고 떠나와서 미안해요. 처음에는 모든 게 다 귀찮아서 다 포기하고 주어지는 데로 받으리라 체념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막상 겁이 나요. 앞은 안 보이는데 길은 없고 그래서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저 변호사 좀 선임해 주세요. 그래서 이리저리 하는 데까지 한번 해 보고 싶어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보다, 변호사를 구해달라는 게 더 중요한 용건인 것 같아. 죽어서도 죄를 못 갚겠다고 오열하던 최 씨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하는 데까지 해 보겠대. 과연 무엇이 그녀의 진짜 얼굴일까?
최 씨는 살인과 상해치사, 사기 등 혐의로 법정에 서게 돼. 변호인은 최 씨가 심신미약 상태임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그 대신 전과가 없는 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우울증을 앓던 중 궁핍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던 점이 인정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어. 최 씨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어. 하지만 항소심에서 기각이 되면서 15년형이 확정됐어.
세상사람들은 그녀의 악의를 알아채지 못했어. 하마터면 이대로 묻힐 뻔했던 거야. 하지만 이를 막아선 사람들이 있어. 경찰서를 다니며 이 사건을 수사해 달라고 매달린 김동영 조사원. 그 목소리를 듣고 수사를 시작한 이태호 형사.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용기를 내어 증언해 준 어린 목격자 정 양. 만약 이들 중 한 사람이라도 부족했다면 이 사건은 그대로 묻혔을 거야. 그리고 또 다른 아이가 희생됐을지도 몰라.
커다란 악의 앞에서 한 사람의 선의는 약해 보이지만, 여러 사람의 선의가 모이면 막을 수 있다는 걸, 이 분들이 몸소 보여준 게 아닐까.
만약 살아있다면 첫째 서연이는 23살, 둘째 수빈이는 19살, 셋째 민서는 17살이 됐을 거야.
"정말 예뻤을 거예요. 아기가 정말 해맑고 그랬거든요….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는 생각이죠. 그리고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 좋은 부모 만나서 못 다 산 인생 정말로 행복하고 예쁘게... (울컥)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거밖에 없어요. 미안한 생각."
-김동영 조사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이 사건이 일어난 당시는 입양이 어렵지 않았어. 대부분 입양기관을 통하거나 당사자끼리 아이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 양부모에 대한 검증도, 입양한 이후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 그렇게 입양된 아이들이 학대를 받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나게 된 거야. 세 아이의 억울한 죽음 이후, 입양법이 개정됐다고 해. 아이를 입양할 때 법원의 심사와 허가를 받도록 바뀐 거야.
하지만 지금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그림자 아이들'이 거래되고 있어. 입양특례법이 개정됐음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 현실이야. 양육은 부모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해. 그게 이루어져야 오늘 이야기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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