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향기 나는’ 우승 유격수 제대→2루수로 밀렸는데…29억 FA 왜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을까
[OSEN=이후광 기자] ‘FA 내야수’ 김상수(34·KT 위즈)가 2루수를 맡은 건 삼성 라이온즈에서 KT 위즈로 이적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승 유격수’ 심우준(29·KT 위즈)이 상무에서 전역하면서 견고했던 KT 내야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프로야구 KT 이강철 감독은 지난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경기에서 15일 전역을 명받은 심우준을 전격 선발 유격수로 기용하며 심우준(유격수)-김상수(2루수)로 이뤄진 뉴 키스톤콤비를 가동했다. 주전 2루수 오윤석이 내전근 부상 이탈하면서 공백이 생겼는데 이 감독은 2루수 자원이 아닌 유격수 김상수에게 2루수를 맡기는 결단을 내렸다.
심우준은 2022년 10월 11일 잠실 LG 트윈스전 이후 645일 만에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김상수는 삼성 라이온즈 시절이었던 2022년 10월 1일 대구 두산 베어스전 이후 654일 만에 선발 2루수를 담당했다. 2022년 11월 4년 29억 원에 KT로 FA 이적해 주전 유격수로 입지를 굳힌 김상수가 첫 2루수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원래 막내 구단 KT의 주전 유격수는 심우준이었다. 경기고를 나와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KT 2차 특별 14순위 지명된 심우준은 KT 1군 진입 첫해인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시즌 연속 주전 유격수를 담당했다. 2021시즌 139경기 타율 2할6푼8리 6홈런 활약과 함께 팀의 통합우승을 이끌었고, 2022시즌 안정적인 공수 활약으로 팀의 3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공헌했다. 심우준은 KT 내야의 대체불가 자원이었다.
세월이 흘러 심우준이 2023년 1월 상무로 향해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됐다. 그리고 KT는 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22-2023 스토브리그에서 4년 총액 29억 원에 과거 삼성 왕조를 이끈 유격수 김상수를 영입했다. 김상수는 지난해 129경기 타율 2할7푼1리 3홈런 56타점과 함께 안정적인 수비를 뽐내며 KT 주전 유격수 타이틀을 얻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강철 감독의 유격수 플랜은 주전 김상수, 백업 심우준이었다. 김상수를 2루수로 이동시키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김상수가 6월 들어 공격에서 연일 맹타를 휘두르면서 “심우준이 돌아와도 주전이라는 보장은 없다. 좋은 백업 자원을 확보한다고 보면 된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심우준이 복귀전이었던 16일 키움전에서 기대 이상의 스피드와 수비력을 뽐냈고, 2루수 오윤석까지 부상을 당하며 결국 2루수 김상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감독은 복귀전부터 도루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심우준에 대해 “김도영(KIA 타이거즈) 이후로 오랜만에 그런 선수를 봤다. 다 죽었다고 봤는데 우리 팀에도 저렇게 발이 빠른 선수가 생겼다. 스피드가 정말 다르다. 좋았다”라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일단 유격수 수비 범위는 김상수보다 심우준이 더 넓다. 발이 빨라서 텍사스성 안타를 다 잡아낸다. 또 김상수의 경우 교체로 출전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라며 심우준을 다시 주전 유격수로 기용할 것을 시사했다.
김상수는 삼성 시절 왕조 유격수로 활약하다가 팀 사정 상 한동안 2루수를 담당했다. 그러다가 2022시즌 박진만 감독대행 부임 후 다시 유격수로 이동해 녹슬지 않은 수비력을 과시했고, KT로 이적해서도 유격수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런 그가 심우준의 복귀로 다시 주 포지션을 옮겨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최근 고척에서 만난 김상수는 “감독님, 수석코치님과 (포지션 변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심)우준이의 수비 범위가 워낙 넓고, 발도 나보다 빠르다. 팀에서 우준이가 2루수를 본 적이 없을 거라고 했다”라고 2루수 복귀 배경을 전했다.
유격수를 후배에게 양보하게 됐지만, 표정은 평소처럼 평온했다. 김상수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KT와 계약할 때부터 이런 부분을 어느 정도 생각했다. 또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게 나한테 유리할 거로 봤다. 이게 내가 경기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2루수 수비는 한 달 전부터 조금씩 펑고를 받으며 준비했다”라며 “2루수든 유격수든 포지션과 관계없이 연습할 때 준비만 잘하면 큰 어려움은 없을 거 같다. 그것보다 어느 위치에서도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다”라고 개인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다.
KT는 내야는 수비가 되는 심우준, 권동진이 동반 전역하며 뎁스가 한층 두터워졌다. 그러나 1군 내야 엔트리를 보면 전문 유격수 자원은 사실상 심우준 1명이며, 유격수 위치에서 퍼포먼스가 가장 좋은 선수 또한 심우준이다. 결국 심우준이 주전 유격수를 맡는 게 팀이 강해지는 길이며, 김상수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김상수의 남다른 팀퍼스트 정신이 박수를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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