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화에게 '놀아준다'는 건 왜 각별한 일이 됐을까('놀아주는 여자')
[엔터미디어=정덕현] 현대인들에게 '놀아준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시간을 함께 보낸다? 아니면 진짜 유흥을 뜻하는 걸까. 아니다. 적어도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 이 작품에서 '놀아준다'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건 고은하(한선화)라는 인물이 키즈 크리에이터로서 살아가는 삶의 이유이기도 하니 말이다.
보육원에 아이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해주고 도망치듯 떠나려는 '목마른 사슴' 직원들은 아이들과 놀아주고 가자는 고은하에게 "큰 일 날 소리"라고 정색한다. 재수(양형민)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라져 주는 게 예의"란다. 고은하가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냐고 되묻자 홍기(문동혁)가 말한다. "어떤 사람이긴요. 나쁜 사람들이지. 나쁜 짓 한 사람들." 하지만 그 말에 고은하는 오히려 정색하며 말한다. "애들한테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인데? 와서 놀아주는 사람들이 진짜 좋은 사람들이고."
이건 아마도 <놀아주는 여자>라는 드라마가 생각하는 '놀아준다'는 표현에 담긴 진심일 게다. 과거 한 때 조폭에 몸 담고 있던 시커먼 사내들이지만, 이 드라마가 다소 과장되게 그려놓은 이들의 모습은 거의 아이에 가깝다. 어쩌다 그 집에 들어오게 된 고은하가 배움이 딸리는 그들의 선생님이 되고 그래서 공부를 하게 해주는 장면을 보다보면 그곳이 마치 유치원 같은 느낌을 준다.
그건 물론 이 드라마가 가진 코미디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살벌해 보이는 전직 조폭들이 고은하라는 키즈 크리에이터 앞에서 순수하다 못해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을 드러낼 때 나오는 웃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어쩌다 한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 과거를 뉘우치고 바르게 살려는 마음이 있는 한 그들에게는 여전히 어린 아이 같은 백지로서의 가능성 또한 기회로 주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 즉 겉만 보고, 또 한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걸로 사람을 판단하고 구별짓는 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고은하라는 인물에게 '놀아준다'는 사실이 각별한 의미가 된 건 그가 어려서 겪은 일들 때문이다. 빚쟁이에 시달리던 그 시절, 무시무시한 조폭들이 집을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 아픈 시기를 버텨내게 해줬던 이가 바로 현우 오빠였다. 어느 날 사라져 버렸지만 고은하는 현우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고 현재의 키즈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을 살게 됐다.
"사실 저도 어릴 때 그렇게 놀아준 오빠가 있었거든요. 진짜 외롭고 슬플 때마다 같이 놀아 준 덕분에 그 시절이 외롭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아이들한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어요.,, 오빠가 저한테 살아갈 힘을 준 것처럼 저도 아이들한테 그런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거든요. 많이 부족하지만." 고은하가 서지환(엄태구)에게 하는 이 말은 그에게 '놀아준다'는 의미가 '살아갈 힘을 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우리는 때론 '논다'거나 '놀이' 같은 말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뭐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일과 성과 중심으로 달려왔던 삶이 만들어낸 그림자 같은 것일 게다. 하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뉘앙스까지 갖게 되기도 했던 바로 그 '놀이'는 어쩌면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삶의 중요한 또 다른 날개가 아닐까.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그 추억으로 버티고 견디고 살았을 거예요." 고은하가 말하는 '놀아준 오빠' 서지환은 그렇게 에둘러 당시 현우 또한 은하 덕분에 그 후로도 어려웠던 삶을 버텨내고 견디고 살았다는 걸 표현한다. 실로 그 누군가 놀아줘서 행복했던 시간들의 추억이 있어 우리는 힘겨운 현재도 버텨내며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일과 성과가 더 나아가 욕망으로 변질되기도 하는 현실 속에서, <놀아주는 여자>는 순수한 동심의 시선을 가져와 당신이 무슨 힘으로 지금껏 살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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