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도, 협박도, 반박도 그저 ‘먹잇감’일 뿐인 사이버 레커의 세계
시청자 4000명 돌파하자 “이 정도면 500만원 정도 벌어”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사이버 레커'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27)이 감추고 싶었던 과거를 의도와 상관없이 강제로 끄집어냈다. 쯔양의 사생활이 담겨 있는 통화 녹음파일을 유출하면서다. 녹음 음성 속 당사자는 역시 사이버 레커로 불리는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32)이다. 녹음파일이 공개된 후 구제역은 쯔양을 공갈·협박한 혐의로 고발당했고, 그는 7월15일 검찰에 자진 출석했다. 그러자 또 다른 사이버 레커들이 검찰청에 몰려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으며 돈을 버는 사이버 레커의 실체가 사법기관 앞에서 드러났다.
구제역이 검찰에 출석한 이날 시사저널은 상당수 유튜버의 모습을 목격했다. 자칭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타칭 사이버 레커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수익을 챙기는지 전 과정을 지켜봤다. 이 과정에서 유튜브 채널 '제이컴퍼니'를 운영하는 정병곤씨(43)를 통해 사이버 레커의 세계를 좀 더 깊이 엿볼 수 있었다. 정씨는 온라인 매체 '서울의 소리' 기자 출신으로 지난 3월 퇴직한 후 유튜버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큰손' 구독자로부터 벤츠 선물까지"
"7월15일 오후 2시, 제 1년간의 녹취가 담긴 황금폰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 출석합니다." 구제역이 7월13일 유튜브에 이 같은 공지를 올렸다. 정씨는 공지를 확인하자마자 검찰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에는 스마트폰 2대를 포함해 각종 촬영 장비가 들려 있었다. 정씨는 "1만 명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가 10만 명 구독자를 보유한 구제역을 저격하면 조회 수가 2~3배 오른다"고 말했다.
정씨는 구제역이 출석을 예고한 시간보다 2시간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벌써 서너 명의 유튜버가 검찰 현관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켰다. 정씨는 "다른 유튜버보다 방송을 1분이라도 빨리 시작해 시청자를 유입시켜야 한다. 기자들보다 먼저 가서 기다린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한 유튜버는 삼각대로 휴대전화를 고정한 후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유튜버 이영진씨(35)는 기자에게 "시청자로부터 일정 금액을 후원받으면 보답하는 차원에서 '틱톡'이나 '쇼츠'에서 유행하는 춤을 추는 것"이라며 "이를 '리액션'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씨 또한 1만원 이상 후원한 시청자에 한해 그가 요구하는 춤을 춘다고 했다.
정씨가 방송을 켜자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더운데 고생이 많으세요" "맛있는 거 드시고 힘내세요" "15분 전 후원했어요" 등 시청자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사건이니만큼 시청자 수도 가파르게 늘어났다. 초기 300명이었던 시청자 수는 구제역이 도착하자 금세 4000명을 돌파했다. 정씨는 "이 정도 시청자라면 못해도 슈퍼챗(후원금)으로 500만원 정도 벌 수 있다"고 귀띔했다.
구제역이 나타나자 유튜버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댓글로 시청자가 원하는 질문을 받아 대신 읽어주기도 했다. 이들은 구제역을 둘러싸고 "(구)제역이 형 쯔양한테 얼마나 받았어" 등의 질문을 던졌다. 간혹 사안과 무관한 자극적인 질문을 반복적으로 쏟아내기도 했다.
정씨는 이 같은 질문이 소위 '어그로'(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기 위해 자극적인 행동을 하는 일)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답변을 듣기 위한 게 아니라 시청자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정씨 역시 언론에 자신의 목소리가 담기는 걸 바라며 의도적으로 질문을 던졌다고 털어놨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유튜버가 대신 해주면 속 시원함을 느끼는 시청자가 많아요. 일부는 '큰손' 구독자로부터 대가로 벤츠까지 선물받아요. 이런데도 안 하겠어요?"
라이브 방송을 마친 유튜버들은 곧바로 영상 제작에 들어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썸네일(열어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만든 이미지)을 만드는 것이다. 정병곤씨는 시청자들이 영상을 볼지 안 볼지 결정하는 건 결국 썸네일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의 썸네일에는 '구제역 황금폰? 중앙지검 자진출두???? 과연 나올까?ㅋㅋ'라는 문구와 모자이크된 구제역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썸네일을 만드는 데는 10분이 채 소요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는 "다른 사이버 레커 채널을 보면 피 흘리는 사진을 쓰는 등 최대한 자극적으로 묘사한다"며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이 죽었다'고 써놓고 실제로 들어가 보면 무관한 영상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했다. 사이버 레커의 세계에서 조회 수와 구독자 수는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구독자 10만 명에 월수입은 1000만원"
통상 구독자 1명당 100원을 벌 수 있다고 한다. 1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가 꾸준히 영상을 올린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10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광고 수익은 별도다. 광고비는 구독자 수와 비례하는데, 정씨처럼 10만 구독자 유튜버는 한 번 광고를 하는 데 150만원 정도를 어렵지 않게 번다고 했다. 그는 "요새 유튜버들은 웬만한 연예인이 받는 광고비 못지않게 받는다"며 "편당 300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간혹 3억원을 웃도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했다.
막대한 수익과 영향력을 얻은 사이버 레커들은 조회 수에 맛들려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유명인의 약점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없는 사실도 지어낸다고 한다. 정씨 역시 구제역이 자신을 저격하는 허위 영상을 만들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제역이 2020년 '정인이 사건' 때 내가 후원금을 가로챘다는 허위 영상을 제작해 수많은 악플이 달리고 지상파 뉴스에 나오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얼마 전 횡령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너무 억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사이버 레커를 근절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7월15일 이번 쯔양 협박 의혹과 관련해 사이버 레커에 대한 철저 수사를 주문하는 동시에 구속 수사의 필요성도 지시했다. 그는 "사적 제재는 2차 피해를 초래함과 동시에 피해자의 잊힐 권리를 침해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사이버 레커의 소위 '레커짓'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총장의 입장이 공개된 이날도 쯔양 협박 의혹의 신호탄이 된 녹음 음성을 공개한 유튜버는 관계자들에 대한 추가 폭로를 이어갔다.
BTS, 아이브 등 대형 K팝 스타들이 사이버 레커에 전면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표적인 사이버 레커 채널 '탈덕수용소' 운영자 박아무개씨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지난 5월 박씨를 재판에 넘겼다. 앞서 1월에는 아이브 멤버 장원영이 박씨를 상대로 제기한 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탈덕수용소와 비슷하게 연예인을 비방하는 사이버 레커는 여전히 유튜브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유튜브 측은 90일 안에 세 차례 경고를 받으면 채널을 영구 삭제하는 '삼진아웃' 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채널 생성이 쉬운 유튜브 특성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사이버 레커의 폭로 또는 사적 제재를 막으려면 '법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주로 거론되는 제재 방안은 방송법에 유튜브를 편입하는 것이다. 유튜브는 현재 방송의 공적 책임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법의 적용 대상에서 빠져있다. 다만 유튜브를 방송법으로 규제하면 감시해야 할 콘텐츠가 사실상 무한 수준으로 늘어나는 데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유튜브에 자체 감시기구를 의무 설치하는 방안이나 '전통의 해결책'으로 통하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씨 역시 법적 제재에 대해 찬성했다. 그가 말했다. "구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돈을 벌다 보면 어느 순간 영웅심리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만약 혐오 영상 등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제정된다면, 나쁜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유튜버들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사이버 레커'란?
'사이버 레커'는 유튜브를 주요 플랫폼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가운데 유명인(연예인, 스포츠 선수, 정치인 등)이 연루된 부정적 사건·사고를 핵심 소재로 콘텐츠(라이브 영상, 일반 동영상, 숏폼 등)를 만드는 '이슈 유튜버'를 일컫는 신조어다. '레커'(교통사고 처리를 위해 현장에 출동하는 견인차)에다 '사이버'를 합성해 만들었다. 유명인과 관련된 사건·사고 정황이 있으면 온라인 공간에서 앞다퉈 해당 사건에 달려드는 이슈 유튜버들이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많은 레커가 경쟁적으로 현장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인터뷰] ‘쯔양 협박’ 의혹 구제역 “내 월수익 1억, 몇천만원에 연연할 이유 없다” - 시
- “조금씩 준다는 게”…50대女 성폭행하려 ‘수면제 42정’ 먹인 70대 - 시사저널
- 의대생 부모들 “자녀 ‘천룡인’ 만들고 싶지 않아…의대증원 멈춰달라” - 시사저널
- 여성 시신 5구 차량에 싣고 다닌 잔혹한 연쇄살인범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시사저널
- 여자 동창 때려 ‘식물인간’ 만든 20대 남성…“반성하며 살겠다” - 시사저널
- 피 흘리며 주먹 쥔 트럼프, ‘투사’ 이미지 새겼다…“판도 바뀔 것” - 시사저널
- 온가족 비극으로 내몬 계부의 의붓딸 ‘13년 성폭행’…2심도 ‘징역 23년’ - 시사저널
- 테슬라의 시대는 끝났다? - 시사저널
- ‘혈전 떠돌이’와 ‘골든타임’이 생명 좌우한다 - 시사저널
- ‘이건 다이어트 식품이니까’…오히려 살 찌울 수 있는 식품 3가지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