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의 도덕성 강조한 애덤 스미스[북리뷰]

2024. 7. 19. 09: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애덤 스미스 평전
이언 심프슨 로스 지음│조재희 옮김│글항아리
루소와 달리 이타성의 덕 추구
인간 중시 경제원리 증명 노력
‘국부론’ 바탕도 자기애가 아닌
‘도덕감정론’의 연민이라 분석
연애실패와 평생 신경쇠약 등
연대기 순으로 삶을 세밀 묘사

미래를 위해 과거를 고쳐 쓰지 못하는 자를 우리는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 과거가 재난일 땐 더더욱 그렇다. 오늘날 지혜와 우매를 가르는 눈은 2007년 세계 자본주의 붕괴 위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현자들에게 이 위기는 인간의 사악한 탐욕이 ‘보이지 않는 손’을 언제든 악마의 손으로 바꿀 수 있음을 뜻했고, 신자유주의가 남긴 건 결국 대마불사의 불공정한 세계와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뿐임을 의미했다.

책은 지혜의 매체이므로, 이 사태를 기점으로 거시 경제를 다루는 책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시장 만능과 무한 경쟁을 찬양하는 책은 점차 힘을 잃었다. 시장의 놀라운 힘을 보전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사회 조화와 정의를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책이 점차 늘어났다. 더불어 자유 시장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를 보는 눈도 변했다. 누구나 ‘국부론’의 바탕에 자기애가 아니라 ‘도덕 감정론’의 관용과 연민이 놓여 있음을 말하기 시작했다. 타인을 먼저 살피지 않는 시장 자유는 결국 이기와 탐욕을 부추겨 불공정과 부정의로 이어질 뿐이었다.

‘애덤 스미스 평전’에서 이언 심프슨 로스 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이 엄연한 사실을 보여주려 애쓴다. “시민사회에 부합하는 개인의 자유는 소중하다. 그러나 시장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공정해야 한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필요를 위해 사적 이익 추구에 세심한 한계를 둘 때,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시민의 다양한 정치적, 도덕적, 종교적 헌신을 끌어낼 수 있다.” 이 책은 스미스의 삶을 통해 그의 도덕철학이 경제에 대한 사유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이 사실을 환기한다.

1200쪽을 훌쩍 넘는 이 책은 스미스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가장 완벽한 평전으로 손꼽힌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연대기 순으로 그의 삶을 샅샅이 훑으면서 저자는 철학자, 수사학자, 역사가, 교수, 경제학자, 관료 등 스미스의 다채로운 모습을 세밀히 그려낸다.

어릴 때 납치당한 일, 어머니의 광적인 보살핌을 받고 자란 일, 평생 신경쇠약으로 고생한 일, 몇 차례 연애 실패 끝에 독신으로 산 일, 강박적으로 게으름을 걱정하고 건강을 염려한 일, 스위프트를 연구해 간결하고 정확한 문체를 구사하려 애쓴 일, 시장경제 옹호자가 관세청 관료로 생애를 마친 일 등 그의 인간적 면모를 생생히 알 수 있다. 벽에 기대서서 ‘국부론’을 구술해 쓰는 바람에 머릿기름 자국이 벽에 남았다는 재밌는 일화도 나온다. 책을 읽다 보면 당대 스코틀랜드 한복판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우리 관심을 더욱더 끄는 건 문학, 과학, 철학, 법 등 학문 전 분야에 두루 정통했던 스미스 사상의 발전 과정이다. 방대한 자료와 연구성과를 빠짐없이 섭렵한 후 저자는 스승 프랜시스 허치슨, 친구 데이비드 흄, 프랑수아 케네뿐 아니라 볼테르, 루소, 칸트, 기번 등 당대 사상가들과의 지적 교류를 철저히 파헤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 상호작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 원리를 밝혀내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정립하려 했던 스미스의 생각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놀랍게도, 홉스나 루소와 달리 스미스는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타자에 대한 공감의 우위를 주장했다. 모든 시민이 상상력을 길러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살피고, 공감에 기초해 사회문제의 해결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평생 여섯 번이나 고쳐 썼던 ‘도덕 감정론’은 그 핵심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스미스는 공정한 관찰자, 즉 제3의 눈이 자신을 지켜본다고 상상함으로써 자기애를 억누르고 이타성의 덕을 추구하게 하는 역량의 배양을 강조했다.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과 경쟁,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달리, 그는 시장 근본주의를 옹호하지 않았다. 스미스는 공정한 시장, 즉 공감에 바탕을 둔 도덕적 시장만이 모두에게 공정한 결과를 낳는다고 믿고, 독점이나 사기로 타인을 희생시켜 자기 부를 추구하는 자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가 노예제를 비판하고 금리 상한제, 은행 규제, 교육이나 공공사업 등에서 개인 자유 제한 등을 주장한 이유다.

경제의 중심엔 어디까지나 시장이 아니라 인간이 있어야 한다. 스미스는 말했다. “부자를 숭배하는 성향은 우리 도덕 감정을 타락시키는 크고 가장 보편적 원인이다.” 자기애적 탐욕이 경제 붕괴를 가져온 시대에 곱씹어볼 말이다. 1236쪽, 5만4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