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수록 좋다”… 인류 문명은 ‘팽창의 역사’[북리뷰]
바츨라프 스밀 지음│이한음 옮김│김영사
사람·건축물·차·도시·정보 등
문명은 크기 커지며 발전했지만
‘규모의경제’ 멈추면 확장도 끝
“지구상에서의 팽창은 제한적
미래의 ‘황금비’는 인간 바탕
인체공학적 관점으로 바뀔 것”
더 크게, 더 많이. 현대 사회에 어느 영역에 붙여놔도 어색하지 않을 표현이다. 문명의 발달 속에 도시의 크기부터 자동차, TV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크기가 커지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세계적 석학이자 통계분석의 대가로 불리는 바츨라프 스밀은 한 가지 의문을 제시한다. 과연 커진다는 것은 발전하는 것일까? “만물의 척도”가 된 크기에 대해 그가 내놓은 해답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인류는 발전하는 동시에 모든 면에서 커지고 있다. 오늘날 대중화된 자동차의 종류인 픽업트럭과 SUV의 크기는 1950년대 주류였던 승용차보다 무게가 2∼3배에 달한다. 미국의 평균 주택 면적 또한 당시와 비교해 2.5배 이상 넓어졌고 냉장고와 TV도 같은 추세로 커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품을 만들어내는 근간이 되는 수력발전소의 용량은 1900년보다 600배 이상, 용광로의 부피는 10배 증가했다. 자원과 공업, 산업은 서로 동력이 되며 ‘팽창’하고 있다.
인간의 크기에 대한 동경은 사실 자연스럽다. 55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된 수메르 왕 길가메시의 시련부터 그리스로마신화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와 그 동료들이 마주한 존재들까지 인간에게 공포와 위협을 주는 존재는 모두 그 압도적인 ‘크기’가 강조된다. 단순히 이야기만이 아니다. 커지는 것에 인간이 매료됐다는 증거는 우리가 만들어낸 건축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선사시대 만들어진 영국의 스톤헨지는 약 30톤에 달하는 무게와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졌다. 기자의 쿠푸 대피라미드를 비롯해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는 모두 유달리 크다는 이유로 ‘불가사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등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구조물은 거의 다 거대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는 인간이 가진 신체적 능력의 제한 때문이기도 하다. 작은 것들도 인상적이고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러나 시력의 한계로 크기가 작아져도 우리의 경외감은 커지지 않는다. 우리가 맨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폭의 한계는 약 0.04㎜로 머리카락의 굵기다. 커지는 것 못지않게 점점 작아지는 발명품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주목도는 비례하지 않는다.
다만 영원할 것만 같은 이 팽창은 유한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우주는 계속 팽창할지 모르지만,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장은 결국 끝이 난다.” 여기엔 자연의 특징과 인위적인 성장의 한계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우선은 효율성이다. 도시의 크기는 커졌지만, 대도시는 소도시와 비교하면 에너지 효율과 같은 이점을 얻지 못했다. 세계의 대도시들은 인구의 55%가 점유하면서 에너지의 70% 가까이 소비하고 온실가스의 70% 이상을 생성한다. 이같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확장은 서서히 멈추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유조선 사업의 경우 이미 팽창의 한계를 맞이했다. 유조선의 크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5배 이상 커졌지만 1970년대 이후 증가 추세가 멈췄다. 기술적으로는 더 큰 배를 만들 수 있음에도 크기가 커질수록 활용도 대비 건조 비용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 특성은 또 다른 걸림돌이다. 인류의 평균 신장은 개선된 영양 상태와 위생 환경 등의 요인으로 지속해서 증가했지만, 유전자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책에 따르면 18세기까지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9∼171㎝였다. 세계의 성장과 비교했을 때 실제 우리 몸은 그리 많은 변화를 겪지 않았다. 인간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면 인간이 만든 부산물의 성장도 어느 순간 멈추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크기의 질”이라고 부를 만한 것. 바로 ‘비례’다. 저자는 절대적인 비례인 ‘황금비’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한편 인간의 감각·정신적 능력을 고려해 비례를 맞춘 ‘인간 척도’에 주목한다. 19세기에 시작된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이 바로 이 ‘인간 척도’를 바탕으로 한다. 가구, 용품, 건물에서 나아가 도시 경관까지 ‘인체공학’적인 세계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에너지, 환경, 인구, 경제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합적인 관점을 추구하는 저자는 책을 통해 ‘크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려는 듯하다. 크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고전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예시로 들면서 15㎝의 소인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열량을 계산하는 등 엉뚱한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크기에 관한 연구는 마치 ‘걸리버 여행기’ 속 주인공 걸리버가 매 여정의 끝에 조국인 영국으로 돌아가듯 그 한계에 관한 연구로 수렴한다. 무한 성장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저자의 따끔한 충고가 인상적이다. “모든 성장 추세는 이윽고 느려지다가 한계에 다다를 테고, 일부는 퇴보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428쪽, 2만2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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