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와 환멸의 거장… ‘농담’과 ‘망각’의 글 속에서 불멸하리[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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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는 "중요한 건 작품이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기 작가로도 활동했던 저자는 책을 쓴 유일한 이유에 대해 '우리가 어떤 농담으로 우리의 모든 꿈과 거짓을 유지하는지 부단히 제시해온 이 아이러니와 환멸의 거장을 (재)발견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망각의 극단으로 자신의 모든 책을 찢고자 했고 세상을 뜨기 직전에는 "글을 쓰다니, 참 희한한 생각이네"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까지 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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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랑스 누아빌 지음│김병욱 옮김│뮤진트리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는 “중요한 건 작품이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수많은 작가들이 소설 뒤에 자신의 삶을 숨기고 오직 소설로 남고자 했다.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그는 단 한 차례도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말년에 들어서며 자신이 쓴 책은 물론 소장했던 책까지 닥치는 대로 파쇄하며 세상에 존재한 적 없던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베라 쿤데라는 그런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고 지금도 전 세계 독자는 수십 개국 언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르몽드의 문학 기자 시절부터 쿤데라와 절친하게 지냈던 저자가 쓴 이 책은 쿤데라의 작품과 삶을 넘나들며 잊히고자 했던 쿤데라를 다시 한 번 재현한다. 전기 작가로도 활동했던 저자는 책을 쓴 유일한 이유에 대해 ‘우리가 어떤 농담으로 우리의 모든 꿈과 거짓을 유지하는지 부단히 제시해온 이 아이러니와 환멸의 거장을 (재)발견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쿤데라의 말을 빌려 그에게 유일하게 가치를 가졌던 삶은 소설을 통해 굴절된 삶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쿤데라의 삶을 발견하기 위해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저자가 쿤데라의 모든 작품 곧 모든 삶을 관통하는 소설로 꼽은 것은 ‘농담’이다.
그는 쿤데라식 농담의 기원을 평생토록 그리워했던 고향 체코의 브르노에서 찾는다. 쿤데라는 진지한 음악가 아버지에게서 음악가로 길러졌으나 그에게는 중부 유럽만의 ‘진지하지 않음’이 깃들어 있었다. 흐라말 브라흐를 비롯한 중부 유럽 문인들이 지닌 ‘농담’이다. 서유럽과 동유럽 한복판에서 다양한 언어와 사상이 교차하는 중부 유럽만의 특색이 농담이고 쿤데라 작품의 모든 의미는 그 농담에 싸여 있다.
저자가 쿤데라 작품의 또 다른 특징으로 꼽은 ‘망각’은 그의 삶에서 비롯된다. 이상적 공산주의에 빠져 쓰던 시와 희곡은 그가 이상과 다른 현실을 마주하며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쿤데라는 당시 작품을 쓴 쿤데라가 지금의 쿤데라와 다른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정부의 탄압으로 당과 교단에서 제명당하고 영화 아카데미에서조차 추방된 뒤 마침내 고국을 떠나게 된 쿤데라에게 망각은 필수요소였던 셈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망각해 추억으로 만들고 다시 한 번 망각해 추억조차 그리워하지 않게 된다. 나아가 망각의 극단으로 자신의 모든 책을 찢고자 했고 세상을 뜨기 직전에는 “글을 쓰다니, 참 희한한 생각이네”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까지 망각하게 된다.
독자들은 남겨진 그의 책 속에서 그의 인생을 발견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춰 독해한다. 세상에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사라지고자 했던 쿤데라의 계획은 완벽히 실패했다. 심지어 오독 속에서도 그는 불멸의 작가로 남는다. 그러나 완전한 실패 속에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남긴 농담의 텍스트는 결코 좌절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여러모로 유일하다. 저자 누아빌은 쿤데라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기자이며 이 책을 쓰기 위해 쿤데라를 기억하는 수많은 작가들과 주변인들을 찾아다녔다. 쿤데라의 부모, 너무도 사랑했던 첫 번째 부인에 대한 이야기, 농담만 할 줄 알았던 그가 단 한 번 모든 사람 앞에서 진심 그대로 말했던 순간, 그의 마지막 그림과 서명까지. 이 책이 아니면 만나볼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396쪽, 2만2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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