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놔도 손색 없을 1천 년 전 '빙수의 천국', 타이완서 부활했나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7. 19. 09:06
[윤덕노의 중식삼림(中食森林) ⑭] 타이완인들은 언제부터 빙수를 즐겼을까
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타이완 사람들은 빙수 많이 먹는다.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에서도 먹는 망고빙수를 비롯해 팥빙수, 녹두빙수, 곱게 간 얼음 위에 과일과 젤리 등 갖가지 고명을 얹은 팔보빙수(八寶冰), 열대 과일인 스타프루트 즙을 얼린 스타프루트 빙수(楊桃冰) 등등 그 가짓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아열대 기후의 더운 나라니까 무더위를 식힐 찬 음료와 빙수가 발달한 게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도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은 여름에도 찬 음료는 피하는 경향이 있다. 몸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타이완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계인데, 언제부터 이렇게 빙수를 즐겼을까?
일각에서는 타이완이 긴 세월 일제의 지배를 받았고 일본은 동양에서 근대식 제빙기를 처음 개발해 카키고오리(かきごおり)라는 빙수를 만들어 판 나라니까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한류의 영향으로 역시 빙수가 발달한 한국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중국인은 찬 음료를 싫어한다는 일반 상식과는 달리 중국에서 빙수의 역사는 꽤나 뿌리가 깊다. 물론 석빙고를 지어놓고 겨울에 저장한 얼음을 여름에 꺼내 먹은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먼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얼음을 곱게 갈아 그 위에 요구르트나 팥, 과일 등을 토핑으로 얹어 먹는 빙수는 또 다르다.
약 1,000년 전인 11~12세기 송나라는 지금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그런 빙수의 천국이었다. 당대 시인 묵객들이 읊었던 각종 시문과 『몽양록』, 『무림구사』 등 송나라 문헌에는 별별 종류의 빙수와 빙과류가 다 보인다.
예컨대 11세기 북송 때 시인 매요신이 남긴 시에 빙소(氷酥)라는 음식이 나온다. "녹아 흐르는 빙소를 씹어 맛본다"는 구절로 빙(氷)은 얼음, 소(酥)는 연유 혹은 요구르트 비슷한 유제품이다. 얼린 연유, 요구르트니까 지금의 빙과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12세기 남송 때 시인 양만리 역시 얼린 앵두즙이 자줏빛 액체로 녹아 흐른다며 노래했다. '앵두전(櫻桃煎)'이라는 제목의 시로 여기서 전(煎)은 부침개가 아니라 설탕 등을 졸여서 만든 식품을 뜻한다. 원나라 때 황실 요리서인 『음선정요』에 앵두전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데 앵두 50근을 짜서 즙을 낸 후 설탕 25근과 함께 졸여서 참기름 두른 그릇에 담아 차게 식혀 굳힌다고 설명했다. 지금으로 치자면 앵두 빙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빙락(氷酪)이라는 빙수도 보인다. 역시 양만리의 시에 나온다. 락(酪)은 진한 유즙이나 액체 치즈로 "기름지지만 상큼하고 얼음 같지만 눈처럼 흩날리는데 구슬 쟁반이 부서지듯, 햇빛에 눈 녹듯 사라지는 얼음"이라고 읊었다. 빙락을 만드는 방법은 잘게 부순 얼음이나 대패로 깎은 얼음에 설탕을 넣고 진한 유즙을 더해서 먹는다고 했다.
남송 때 문헌 『몽양록』에 설포매화주(雪泡梅花酒)라는 빙수로 추정되는 이름도 보인다. 설포(雪泡)는 눈 거품이니 지금의 빙수처럼 얼음을 갈아서 눈처럼 쌓아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매화주는 이름 그대로 매화 술이다. 그러니 여름에 술에다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신 것으로 짐작된다. 설포두이수(雪泡豆爾水)도 있다는데 이름으로 보면 이 또한 두유 눈꽃 빙수가 아닐까 싶다.
팥빙수로 보이는 빙수도 있다. 송나라 역사서인 『송사』에는 복날 황제가 조정 대신에게 팥빙수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밀사빙'이라는 식품인데 한자로는 꿀 밀(蜜), 모래 사(沙), 얼음 빙(氷) 자를 쓴다. 여기서 '사'자는 진짜 모래가 아니라 팥소(豆沙)라는 뜻이다. 그러니 꿀로 버무린 팥소를 얼음과 함께 먹는 식품이다. 밀사빙이 지금의 팥빙수와 비슷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이 밖에도 빙수 내지 빙과로 추정되는 얼음 식품들이 수없이 문헌에 보이는데 송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빙수가 발달했을까?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타이완 사람들은 빙수 많이 먹는다.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에서도 먹는 망고빙수를 비롯해 팥빙수, 녹두빙수, 곱게 간 얼음 위에 과일과 젤리 등 갖가지 고명을 얹은 팔보빙수(八寶冰), 열대 과일인 스타프루트 즙을 얼린 스타프루트 빙수(楊桃冰) 등등 그 가짓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아열대 기후의 더운 나라니까 무더위를 식힐 찬 음료와 빙수가 발달한 게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도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은 여름에도 찬 음료는 피하는 경향이 있다. 몸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타이완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계인데, 언제부터 이렇게 빙수를 즐겼을까?
일각에서는 타이완이 긴 세월 일제의 지배를 받았고 일본은 동양에서 근대식 제빙기를 처음 개발해 카키고오리(かきごおり)라는 빙수를 만들어 판 나라니까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한류의 영향으로 역시 빙수가 발달한 한국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중국인은 찬 음료를 싫어한다는 일반 상식과는 달리 중국에서 빙수의 역사는 꽤나 뿌리가 깊다. 물론 석빙고를 지어놓고 겨울에 저장한 얼음을 여름에 꺼내 먹은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먼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얼음을 곱게 갈아 그 위에 요구르트나 팥, 과일 등을 토핑으로 얹어 먹는 빙수는 또 다르다.
약 1,000년 전인 11~12세기 송나라는 지금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그런 빙수의 천국이었다. 당대 시인 묵객들이 읊었던 각종 시문과 『몽양록』, 『무림구사』 등 송나라 문헌에는 별별 종류의 빙수와 빙과류가 다 보인다.
예컨대 11세기 북송 때 시인 매요신이 남긴 시에 빙소(氷酥)라는 음식이 나온다. "녹아 흐르는 빙소를 씹어 맛본다"는 구절로 빙(氷)은 얼음, 소(酥)는 연유 혹은 요구르트 비슷한 유제품이다. 얼린 연유, 요구르트니까 지금의 빙과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12세기 남송 때 시인 양만리 역시 얼린 앵두즙이 자줏빛 액체로 녹아 흐른다며 노래했다. '앵두전(櫻桃煎)'이라는 제목의 시로 여기서 전(煎)은 부침개가 아니라 설탕 등을 졸여서 만든 식품을 뜻한다. 원나라 때 황실 요리서인 『음선정요』에 앵두전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데 앵두 50근을 짜서 즙을 낸 후 설탕 25근과 함께 졸여서 참기름 두른 그릇에 담아 차게 식혀 굳힌다고 설명했다. 지금으로 치자면 앵두 빙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빙락(氷酪)이라는 빙수도 보인다. 역시 양만리의 시에 나온다. 락(酪)은 진한 유즙이나 액체 치즈로 "기름지지만 상큼하고 얼음 같지만 눈처럼 흩날리는데 구슬 쟁반이 부서지듯, 햇빛에 눈 녹듯 사라지는 얼음"이라고 읊었다. 빙락을 만드는 방법은 잘게 부순 얼음이나 대패로 깎은 얼음에 설탕을 넣고 진한 유즙을 더해서 먹는다고 했다.
남송 때 문헌 『몽양록』에 설포매화주(雪泡梅花酒)라는 빙수로 추정되는 이름도 보인다. 설포(雪泡)는 눈 거품이니 지금의 빙수처럼 얼음을 갈아서 눈처럼 쌓아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매화주는 이름 그대로 매화 술이다. 그러니 여름에 술에다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신 것으로 짐작된다. 설포두이수(雪泡豆爾水)도 있다는데 이름으로 보면 이 또한 두유 눈꽃 빙수가 아닐까 싶다.
팥빙수로 보이는 빙수도 있다. 송나라 역사서인 『송사』에는 복날 황제가 조정 대신에게 팥빙수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밀사빙'이라는 식품인데 한자로는 꿀 밀(蜜), 모래 사(沙), 얼음 빙(氷) 자를 쓴다. 여기서 '사'자는 진짜 모래가 아니라 팥소(豆沙)라는 뜻이다. 그러니 꿀로 버무린 팥소를 얼음과 함께 먹는 식품이다. 밀사빙이 지금의 팥빙수와 비슷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이 밖에도 빙수 내지 빙과로 추정되는 얼음 식품들이 수없이 문헌에 보이는데 송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빙수가 발달했을까?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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