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 이긴 ‘강한 트럼프’, 통합 외치며 ‘지도자 트럼프’로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2024. 7.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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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백인·흙수저’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트럼프…승부처 ‘러스트벨트’ 공략
여전한 ‘박빙’ 구도에 ‘3지대 후보’ 바이든 지지 선언하면 막판 뒤집기 변수

(시사저널=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별의 순간(Sternstunde).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1927년작 《인류의 별의 순간》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은 국내에 1998년 《광기와 우연의 역사》로 번역 출간되며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다. 독일어로 '별의 순간'은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운명적인 사건이나 순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현재도 독일어권에서는 저서나 단체 이름은 물론 TV 프로그램에 '별의 순간'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21년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별의 순간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며 더욱 널리 알려졌다.  

2024년 7월13일 토요일 오후 6시11분(현지시간).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분명히 '별의 순간'으로 기록될 시간이다. 트럼프는 후두부를 관통할 수도 있었던 총알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바람에 피했다. 귀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피했던 트럼프는 곧 다시 일어서 "싸우자(fight!). 싸우자"를 외쳤다. 만약 트럼프가 움츠러들었거나 도망치듯 현장을 떠났다면 이날의 스토리는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펄럭이는 성조기를 배경으로 연출하려야 할 수도 없는 역사적 사진에 찍힌 트럼프는 강렬한 이미지를 얻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7월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연설 중 총격으로 오른쪽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며 "싸우자(Fight)"라고 외치고 있다. ⓒAP연합

'별의 순간' 될까…총격이 키운 트럼프 대세론

더욱 놀라운 장면은 트럼프 지지자들이었다. 총성이 연발로 울리고 청중석의 지지자 한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부상을 당한 와중에도 흩어지는 사람이 없었다. 트럼프가 다시 일어서자 "미국(USA!) 미국"을 외치며 더욱 단단히 뭉쳤다. 그 기세는 고스란히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공화당 전당대회장으로 모아지고 있다. 한국식으로 치면 '어대프'(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트럼프) 전당대회라 흥행 요소가 특별히 없었는데 이제는 피격 사건 후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이 살아있는 뉴스 그 자체다. 

트럼프는 피격 사건 직후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문을 전면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7월14일 보수 성향의 워스턴이그재미너 인터뷰에서 "18일 (대선)후보 수락 연설은 역사의 요구에 부합하는 연설이 될 것이고, 내게 우리나라를 하나로 모을 기회가 주어졌다"고 말했다. 또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도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매우 강력한 연설을 준비했지만 그것을 버렸다"고 말했다. 총격 직후 '트럼프가 달라졌어요'라고 할 만한 변화로 읽힌다. 하지만 트럼프 캠프의 통합 메시지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옵션이기도 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 수석고문인 수지 와일스는 지난 1월 공화당 '큰손' 기부자들 모임인 미국기회연대에서 트럼프의 공격적 언사에 신경 쓰지 말라며 "트럼프가 대선후보로 확정되면 내놓을 첫 메시지는 '통합(Unity)'"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 예고대로라면 통합 메시지가 나온 것이 별반 새로운 일도 아니다. 다만 총격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고, 그 직후 통합 메시지의 반향이 더 크다는 점에서 분명 트럼프에게 매우 큰 호재다.  

사실 통합 메시지의 아이콘은 바이든 대통령이었다. 그의 2021년 1월 취임식 주제는 '통합된 미국(America United)'이었고, 취임사에서 링컨 대통령까지 호명하며 "(링컨과 같이) 내 영혼도 미국인들을 통합시키는 데 있다"고 특별히 강조했다. 트럼프 피격 사건 직후인 7월14일(현지시간) 바이든은 "우리는 하나의 국가로 통합해야 한다" "통합은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지만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바이든은 14일에만 두 차례 대국민 연설을 했는데 '미국의 통합'을 강조하며 같은 취지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그러나 위로하는 사람이 말하는 '통합'보다 피해자가 말하는 '통합' 메시지가 더 돋보일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상황이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바이든의 트럼프 비난 캠페인이 암살 시도로 번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 피해자인 트럼프가 '통합'을 내세우며 열혈 강성 지지자들을 진정시키는 모습은 '큰 지도자' 이미지를 형성하고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미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다. 6월14일(현지시간) 미국 퓨리서치가 미국 성인 86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25%는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싫다고 응답했다. 

이는 1988년부터 지금까지 치러진 10번의 대선 동안 나타난 최고 비호감도라고 퓨리서치는 전했다. 2020년 바이든과 트럼프가 대선에서 경쟁할 당시 두 후보 모두 싫다고 응답한 비율은 13%였다. 4년 만에 바이든과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가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양당 지지자들이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똘똘 뭉쳐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과 트럼프를 싫어하는 25% 유권자의 마음을 누가 한 명이라도 더 녹이느냐에 이번 대선의 승패가 달려 있는 형국이다. 

"미국을 통합하라" 중도 공략 나선 트럼프

비호감 유권자의 마음을 녹이는 일이 총격을 피해 불사조처럼 일어난 '강한 트럼프'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트럼프 캠프는 간파한 것이다. '강한 트럼프' 이미지로는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피해자이면서도 통합을 강조하는 '지도자 트럼프' 이미지로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를 치르며 비호감 유권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겠다는 게 트럼프 캠프의 전략으로 짐작된다. 

이런 전략이 얼마나 통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트럼프에게 비호감이었던 사람들에게도 이번 총격 사건은 분명 놀라운 뉴스일 것이다. 당장 여론은 트럼프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하다. 하지만 정치 자체에 관심이 없고 비호감과 불신이 가득했던 사람이 100일 후에 트럼프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장까지 갈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퓨리서치의 7월11일 조사 결과도 트럼프 대세론이 지속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요소가 있다. 6월27일 바이든의 TV토론 대참패와 인지능력 논란에도 이 조사에서 트럼프가 '정신적으로 또렷하다'는 면에서 바이든을 58% 대 24%로 크게 앞선 것 외에는 다른 항목에서는 트럼프가 완전히 바이든을 따돌리지 못하다고 있다. 특히 '비열하다'는 응답은 트럼프가 64%, 바이든이 31%를 기록해 트럼프는 비호감의 구체적 항목에서는 압도적으로 바이든에게 열세다. 또한 두 후보 모두 '당혹스럽다'는 항목에서는 63% 동률을 이루고 있다. 바이든이 워낙 토론을 망쳐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똑똑해 보인다는 것이지 트럼프 또한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이미지가 일반 유권자들에겐 엇비슷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는 또한 제3 후보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누구 표를 잠식하고 있느냐도 보여주고 있다. 대체로 케네디가 트럼프의 표를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퓨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을 지지했던 유권자 중 14%,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 중 8%가 현재 케네디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바이든의 지지가 트럼프보다 6%포인트 많이 케네디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케네디 후보가 완주할 경우에는 바이든 40%, 트럼프 44%, 케네디 15%의 지지를 기록했다. 케네디 후보가 없을 경우에는 바이든 47%, 트럼프 50%를 기록했다. 각각 4%, 3% 차이 접전 양상이다. 7월13일 총격 사건 이후 변화된 여론조사 결과는 추후 확인해 봐야 하지만 지난달 바이든의 토론 참패 이후에도 각각 4%, 3% 차이의 접전 양상이 나타난 점은 바이든의 저력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7월은 공화당 전당대회의 달이지만, 8월은 민주당 전당대회의 달이다. 7월 공화당 컨벤션 효과가 빠질 즈음에 8월 민주당 컨벤션 효과가 나타나고 케네디가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거나 본선 레이스에서 케네디가 사퇴할 경우에 추가로 흡수할 표는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이 현재 더 많은 셈이다. 이걸 알기에 트럼프가 케네디를 전당대회가 열리는 밀워키에서 선제적으로 만나 지지를 요청하고 승기를 굳히려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케네디는 완주 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 '통합'을 위해 민주당 지도부와도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혀 몸집을 불리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제3 후보 케네디의 향후 행보가 미 대선판의 변수로 작용할 여지는 남아있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 사진),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AP연합·DPA연합

부통령 경쟁…백인 남성 vs 흑인 여성

마지막으로 프레임 전환 가능성도 관전 포인트다. 지금은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선거전이 가열될수록 누구를 위한 통합인지를 가리는 장이 펼쳐질 수도 있다. 트럼프가 밴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은 '나이 든 금수저 백인 남성'이 '젊은 흙수저 백인 남성'을 파트너로 택해 백인 남성 기득권의 세대 계승을 택한 그림이다. 아시아계 흑인 여성 해리스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삼고 있는 바이든과는 다른 그림이다. 

바이든은 또한 흑인 유권자의 64%, 아시아계 유권자의 47% 지지를 받고 있다(트럼프는 각각 13%, 29%. 퓨리서치 7월11일 조사 결과). 누가 진정 '통합'에 적합한 후보인가를 놓고 수차례 토론이 벌어지고 트럼프의 과거 이민 차별 정책이 계속 회자되면 트럼프가 현재 기선을 제압하듯 제시한 '통합' 프레임이 오히려 자승자박이 될 수도 있다. 정치판에서 100일은 그냥 100일이 아니다. 그 100일의 초입인 올해 여름, 미국 대선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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