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낮아서 가계빚 늘었다고?…'압박' 곤혹스러운 은행의 선택
[편집자주] 은행에서 5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30년 만기로 받으면 0.1%포인트의 금리 차이로 갚아야 할 이자가 1000만원가량 차이가 난다. 금융소비자에게 민감하지만 당국 정책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요동치는 대출금리를 파헤쳐본다.
주요 은행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속도 조절 기조에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연초엔 달랐다. 당시엔 주택담보대출 대환대출(갈아타기) 효과를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금리를 낮췄다. 플랫폼 편의성과 낮은 금리로 주담대를 흡수한 인터넷전문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는 연 2.86~5.63%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2.94~5.76%)과 견줘 상·하단이 모두 내려갔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주문에 이달 들어 0.05~0.20%포인트(P) 가산금리를 줬는데도 시장금리가 더 크게 하락한 영향이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거듭 올리는 이유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한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은행권의 상반기 주담대 증가 규모는 26조5000억원으로 2021년 상반기 이후 최대 수준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15일부터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은행권 현장점검에 돌입했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올해 초 주담대·전세대출 대환대출 서비스를 개시하고 금융당국의 뜻에 따라 대출금리 인하 경쟁에 집중했던 게 불과 반년전도 안되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 인하 경쟁으로 상생을 실천한다고 정부로부터 칭찬받았던 게 몇 달 만에 뒤집혔다"며 "당국의 금리 인상 압박이 없다 한들 은행권이 가계대출을 관리하려면 금리 인상 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연초에 갈아타기 시장을 주도한 인터넷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지점이 없어 비용을 줄인 만큼 대형은행보다 낮은 금리를 주면서 대환대출 고객을 흡수한 게 가계대출 수요를 자극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인터넷은행들은 주택 관련 대출금리를 높여왔다. 카카오뱅크의 주담대 고정금리는 3.411~5.676%, 케이뱅크의 아파트담보대출 고정금리는 3.50~5.43%로 나타났다. 둘 다 5대 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2.86~5.63%)와 견줘 하단이 더 높다.
금리 경쟁력을 잃은 인터넷은행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카카오뱅크는 올해 여신 성장 목표치를 연초 제시했던 20%에서 10%로 하향 조정했다.
인터넷은행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차주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준 성과와 중저신용자 대출 기준을 동시에 맞춘 노력을 봐달라는 것이다. 아울러 최근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을 부동산 시장이나 관련 정책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인터넷은행권 관계자는 "주요 은행들이 이번달 가산금리를 올리고 있는데도 가계대출이 느는 걸 보면 원인을 금융시장이 아닌 주택시장에서 찾아야 한다"며 "인위적인 금리 변화 때문에 오히려 기존 은행 고객들까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최근의 가계대출 금리 정책이 엇박자를 낸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가계대출 관리는 소상공인 금리 부담 완화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연착륙 등 여러 정책 목표와 조화롭게 진행돼야 해서다.
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5일부터 시중은행과 카카오뱅크를 대상으로 가계대출 현장점검을 진행 중이다. 지난 3일에는 17개 국내은행 부행장을 소집해 엄격한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했다.
가계부채는 주로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성 대출 중심으로 늘어왔다. 최근에는 은행 자체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이 가팔라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석 달간 은행권 주담대가 약 17조원 증가했다. 지난달에만 6조3000억원 늘었는데 10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금감원이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으로 은행을 지목하며 압박하는 이유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은 온라인 대출 갈아타기 플랫폼을 홍보하며 은행의 자발적인 금리 인하 경쟁을 유도했으니 당국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 가계부채 관리가 시급한데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2개월이나 미뤘다. 금융당국이 집값 띄우기를 조정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금융당국은 이같은 비판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연기는 자영업자 금리 부담 완화 등 다른 정책 목표와의 조화를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금융위에 따르면 2금융권에서 DSR 47~50%에 달하는 고DSR 차주 비중이 약 15%다. 이들은 2단계가 도입되면 대출 한도 직격탄을 맞는다. 정부는 어려운 자영업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특히 금융당국은 자영업자의 폐업과 새출발을 지원하고 있다.
'명목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이내 증가율 관리'라는 정책 기조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은행들이 주담대 금리를 일제히 올리는 건 은행이 대출 증가를 관리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카드인 '대출금리 인상'을 사용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일부에선 9월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앞두고 이달과 다음달 대출 막차 수요가 몰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 관계자는 "7~8월 가계대출 증가세는 지난달과 비슷하거나 좀 더 많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DSR 40%를 꽉 채워서 받는 차주가 많지 않기에 2단계 시행을 앞두고 막차 수요가 몰릴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대출금리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은행권의 이익도 변동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의 '정책 리스크'가 이익 예측성을 떨어뜨려 '기업 밸류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KB·신한·하나·우리)의 지난 1분기말 이자이익 합은 10조387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9조7920억원)에 비해 6.1% 늘어난 수치다.
자산이 늘고 NIM(순이자마진)이 상승한 결과다. 이자이익 증가엔 대출금리를 높이라는 당국 압박도 한 몫 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이 급격하게 늘자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우려를 내세우며 은행권의 금리 인상을 유도하고 있다. 이달 들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일제히 전세대출과 주담대의 가산금리를 높였다.
시장금리가 떨어지면서 은행권의 조달금리는 내려가고 있는 데 반해 대출금리가 올라가면 NIM이 개선되며 수익성이 높아진다. 은행권 주담대 고정형 상품의 준거금리가 되는 금융채 5년물 금리는 올해 초 3.820%에서 지난 16일 3.310%로 0.51%포인트(P) 내렸다. 반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같은 기간 3.28~5.33%에서 2.86~5.63%로 상단이 오히려 올랐다.
이에 4대 금융의 지난 1분기 NIM은 지난해 4분기에 견줘 일제히 상승했다. 특히 저원가성 예금이 많은 KB·신한금융은 지난해 1분기부터 4분기 연속 상승세를 그리며 각각 0.07%포인트(P), 0.06%P 올랐다. 금리 압박은 2분기와 3분기 NIM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은행권은 이자이익이 늘어난다고 마냥 좋지도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금리를 역행하는 부분을 두고 이자장사한다는 비판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금융당국 행보에 따라 금융권의 이익 예측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부담된다. 정책에 따라 순이익이나 건전성 등 주요 지표가 변하면 '밸류업' 진정성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정책의 연속성에 매우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결정되자 외인들은 은행의 IR담당자를 통해 '후보자가 기존 밸류업 정책을 이어갈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를 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대형금융지주 IR담당 임원은 "수장이 바뀔 때마다 외인들로부터 '정책이 급선회하는 거 아니냐, 연속성이 있느냐'는 물음이 제기된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일종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밸류업의 관점에서도 시장에 일관된 신호를 주기 위해 금융당국이 정책적 개입을 자제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감독당국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지만 은행을 통제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관치 만능주의는 적절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
이병권 기자 bk223@mt.co.kr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김도엽 기자 us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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