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 없는 47살 국가대표 ‘철인’ 김황태…두려움은 다 지나가더라
23살 전기 작업 중 감전 사고로 양팔 절단
노르딕스키→태권도→철인3종 도전 계속
패럴림픽은 장애인 스포츠 선수에게 ‘꿈의 무대’다. 김황태(47·인천시장애인체육회)가 이 무대에 서는 데까지는 꼬박 10년이 걸렸다. 게다가 국내 파라 트라이애슬론(장애인 철인3종) 선수 최초의 패럴림픽 무대다. 파리로 향하는 김황태는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한겨레와 만나 “그동안 해온 운동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황태는 2000년 8월 전선 가설 작업을 하다가 고압선에 감전돼 양팔을 절단했다. 그의 나이, 고작 23살이었다. 절망이 그를 삼켰다. 한동안 술에 빠져 지냈다. 60㎏대이던 몸무게가 1년 만에 87㎏까지 불었다.
9년 동안 포기하지 않은 꿈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결심했다. 해병대 시절 사단을 대표해 육상 대회에 나갔고, 제대 뒤 딱 한 번 직장 상사를 따라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있었다. “두 팔 없이 할 만한 운동이 달리기뿐”이기도 했다. 2001년 겨울부터 꾸준히 달리기 시작해, 2002년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지금까지 ‘서브3’(42.195㎞ 거리를 3시간 이내 완주)를 17차례나 해냈다.
김황태가 패럴림픽 꿈을 본격적으로 꾸기 시작한 해는 2015년이었다. 전국장애인체전 육상 10㎞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게 계기가 돼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 노르딕스키 대표팀 상비군에 발탁됐다. 2016년 12월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어 패럴림픽 꿈을 접을 뻔했다. 재활을 하던 2017년 말, 2020 도쿄패럴림픽에 태권도 종목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더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김황태의 장애등급(PTS3:중대한 근육 손상 및 절단) 분야가 채택되지 않으며 출전이 또 무산됐다.
김황태는 “패럴림픽이란 게 내 인생엔 없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운동을 계속했다. 함께 운동하던 데플림픽(청각장애인 올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 오상미가 철인3종 입문을 권했다.
“육상을 오래 했으니,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아, 이건 도전하면 되겠다’ 싶어서 발을 들였는데, 수영도 그렇고 사이클도 그렇고 기술적인 면을 많이 필요로 하고 위험도가 커서 처음에 쉽지 않았죠.”
장애인 트라이애슬론은 750m를 수영하고 사이클 20㎞, 마라톤 5㎞를 달린다. 종목 세 개가 결합한 만큼 김황태가 넘어야 할 장벽도 ‘첩첩산중’이다. “안면도에서 더 들어가면 나오는 ‘섬 중의 섬’ 황도 출신이라 물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김황태에겐 세 종목 가운데 수영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트라이애슬론 수영을 할 때 선수들은 대부분 발차기를 최소화한 채 팔과 어깨 움직임을 이용한다. 사이클, 마라톤을 위해 하체 체력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반면 전세계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두 팔이 없는 김황태는 오로지 다리와 허리의 힘으로 몸을 띄워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추진력을 내려면 발을 쉼 없이 차야 해, 수영에서 체력 소모가 가장 크고, 기록도 세 종목 중 가장 나빠요. 다른 선수와 몸싸움 중 수경이 벗겨지기라도 하면 혼자서 다시 쓸 수 없으니 눈에 물이 들어오는 채로 완주해야 하죠.”
사이클은 낙차에 대한 두려움과의 싸움이다. “손이 아닌 무릎으로 기어와 브레이크를 조정하는데, 브레이크를 잡은 뒤 다리를 땅에 내릴 때 의수를 빨리 떼지 못하면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기 십상”이다.
“경기 중에도 워낙 빠르게 달리다 보니 미끄러지는 등 사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어요.”
김황태는 “대회 도중 넘어져 기절할 정도로 크게 다친 적이 있어 때로는 더 빨리 못 달릴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두렵기도 하다 ”면서도 “하지만 그건 그 순간의 느낌일 뿐이다. 목표가 있으니 두려움을 털고 계속 타게 된다”고 말했다.
사실 가장 크게 넘어야 하는 산은 따로 있다. 아내와 딸의 반대다. 김황태는 “한 번 다치고 나면 ‘이제 그만두라’는 압박이 많이 온다. 그럴 때마다 한 이틀 (자전거를 ) 안 타는 척하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 식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제4의 종목
말은 이렇게 해도, 아내 김진희씨는 김황태가 안전하게 대회를 치르는 데 빠질 수 없는 ‘핸들러’(경기 보조인)다. 트라이애슬론에서는 종목 간 전환을 하는 ‘바꿈’ (트랜지션) 시간이 모두 경기 기록에 포함돼 ‘제4의 종목’이라고까지 불린다. 김황태는 “여전히 급박한 상황이 되면 준비하지 않았던 동작이 불쑥 나와 서로 소리를 지르게 되기도 한다”면서도 “꾸준히 맞춘 아내와의 합 덕분에 팔이 있는 선수들보다 바꿈 기록이 오히려 짧다”고 말했다.
김황태의 이번 파리패럴림픽 참가는 국내 선수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확정됐다. 패럴림픽에 출전하려면 세계 대회에 출전해 랭킹 포인트를 쌓아야 하는데, 상위 9위 안에 든 선수의 국가와 특별출전자격 (와일드카드)을 얻은 1개 국가에만 출전권이 부여된다 .
김황태는 지난 5월11일 2024 ITU(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 장애인 시리즈 요코하마(일본) 대회에서 3위를 하며 국내 장애, 비장애 선수를 통틀어 처음으로 트라이애슬론 월드시리즈에 입상했다. 이어 5월18일 2024 ITU 장애인컵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 대회에서 3위를 하며 12위였던 순위를 9위로 끌어올렸고, 6월2일 필리핀 수빅에서 열린 컵대회에서 우승하며 8위로 올라섰다. 그는 6월6일 영국 스완지에서 열린 대회에서 전체 꼴찌인 8위, 29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대회에서 낙차하며 실격해 최종 9위로 파리행 막차를 탔다.
김황태의 첫 패럴림픽 목표는 “최대한 즐겁게 무사히 완주해, ‘한국의 한 중증장애인이 이런 종목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김황태는 “장애인이 건강해야 의료비를 덜 쓰니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 또 사회로 나오면 일단 밝아지고, 밝아지면 삶이 윤택해진다”며 “제 모습을 보고 더 많은 장애인이 밖으로 나와 운동, 활동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인 인스타그램(@para_tkd_tri)에 훈련 모습을 꾸준히 공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마지막으로 “감전사고 뒤 집 근처에 생긴 인천장애인체육회 국민체육센터에서 무료로 수영을 몇 개월이나마 배운 덕에 트라이애슬론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며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 시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극 마크를 품은 김황태의 물과 땅을 아우르는 도전이 파리에서 이어진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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