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설] 정몽규 회장은 사퇴할까?…대한축구협회와 미국축구연맹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대한축구협회와 미국축구연맹의 행태가 많이 닮았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협회의 잘못과 실수가 이다지도 똑 같은지 신기할 정도. 두 협회 모두 독일 사람 위르겐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데려왔다가 실패했다. 제시 마쉬와의 협상도 실패했다. 한국은 파리올림픽, 미국은 도쿄 등 3연속 올림픽 출전에 실패했다. 클린스만을 감독에 앉힌 한국의 현 회장과 미국의 전 회장은 모두 12년 장기집권하면서 독선 운영을 해 축구계를 망가트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미국의 회장은 실패에 책임지고 4선을 포기했다. 그러나 한국의 회장은 실패를 거듭해도 4선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국가대표 감독을 말썽 끝에 새로 뽑았으나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미국은 새 감독을 찾고 있으나 구설에 올랐다. 한국이 이미 놓친 마쉬 현 캐나다 감독은 미국축구연맹을 세게 비판했다. “미국 축구를 크게 존중한다. 그러나 연맹에 근본 변화가 없는 한 그 자리에 관심 가질 일은 없을 것이다." 왜 모국 연맹에 그토록 모진 말을 했을까? 그는 2022년 월드컵 후 미국 감독에 유력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연맹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동안의 행태로 미루어 한국 축협도 마쉬를 그렇게 막 대했는지도 모른다.
■실패한 클린스만 발탁은 장기집권 회장들의 독단
한국·미국 모두 클린스만 때문에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대표 팀을 망쳤다. 그를 감독으로 뽑은 것은 두 나라 모두 협회장의 독단이었다. 은밀한 작업 속에서 이뤄진 선임. 정몽규 회장이 클린스만을 데려온 이유·과정은 새삼스레 거론할 필요가 없다. 오죽하면 매체들이 ‘원흉’이라는 험하디험한 단어까지 쓰며 그를 비판했을까.
미국의 당시 수닐 굴라티 회장도 비슷한 욕을 먹었다. 그는 선수·지도자 경력이 없다. 정 회장과 똑같다. 컬럼비아 대 경제학 교수와 프로축구 구단 사장을 거쳐 2006년 회장에 뽑힌 뒤 12년 동안 재임했다. 가장 오래 한 회장. 4선을 꿈꾸었다. 그러나 클린스만에 이어 역시 그가 독단으로 선임한 브루스 아레나 감독이 월드컵 출전에 실패하면서 출마를 포기했다.
정몽규 회장도 12년 째 회장. 그러나 아시안컵 우승과 파리올림픽 출전을 놓쳤는데도 4선을 노린다. 2014년 온갖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브라질 월드컵 감독에 홍명보를 앉혔으나 한국은 예선 탈락했다, 이번에도 숱한 욕을 먹으면서 홍명보를 다시 감독으로 불렀다. 무슨 경우인가?
공교롭게 홍명보와 아레나는 닮았다. 아레나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 탈락 탓에 사임했다. 그러나 명예회복을 한다며 굴라티의 감독 제의를 받았다. 다시 국가대표 감독을 한다는 유혹에 졌다. 결국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는 아예 출전도 못했다. 개인 욕심에 집착한 탓인가? 홍명보도 브라질 참패를 만회하겠다며 감독을 맡았다. 이기심이다. 아레나의 길을 따라갈지 모른다.
굴라티 회장은 2011년 직접 나서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데려왔다. 2014년 월드컵 직전 그에게 4년 연장 계약과 기술이사 자리도 주었다. 큰 실수였다.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클린스만을 2016년 해고하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렸다. 클린스만의 포기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 회장 역시 자신이 데려온 클린스만이 한국에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데도 아무런 통제도, 자르지도 못했다,
굴라티 회장은 국가대표 감독을 뽑으면서 늘 독단으로, 은밀하게 협상을 끝낸 뒤 이사회는 당연히 따라올 것이란 행태를 보였다. 그는 선수·지도자를 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감독 선발의 전권을 쥐었다. 심지어 부회장조차 결정 과정에 관여하지 못했다. 클린스만을 그렇게 뽑았다. 정몽규 회장과 비슷하지 않은가?
클린스만의 기행은 미국 팀을 서서히 죽여 갔다. 그는 월드컵 최종 명단 발표를 연습장에서 했다. 연습하러 나가는 몇 선수를 빼버렸다. 그것이 탈락 통보. 가장 큰 문제는 변덕이었다. 요가 교실, 엄격한 식단 관리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으나 연속성이 없었다. 다음 날이면 어제 소개한 것을 잊어버렸다. 선수들은 계산된 혼란인지 아침에 일어나 언뜻 떠오르는 생각을 얘기하는 즉흥인지 헷갈렸다.
팀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선수 불만 등을 굴라티 회장은 직접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늘 내부 일을 선수들과의 비밀 만남을 통해 듣는 나쁜 습관을 갖고 있었다. 매사에 투명하지 못했다. 그것도 한국과 똑같다. 선수들도 클린스만을 포기했다. 2016년 32년 만에 과테말라에게 패배하고 클린스만이 직접 뽑은 감독이 지휘한 올림픽 팀이 예선 탈락했다.
■“문제는 축협 회장이다”
스포츠 매체는 “미국 축구의 문제는 클린스만이 아니라 굴라티다. 클린스만을 손가락질 하는 것은 쉽다. 2경기를 연속 졌다. 하는 것마다 잘못을 저지른다. 더 큰 문제는 굴라티 회장”이라 했다. 클린스만을 잘라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굴라티는 버텼다. 그러다 또 다시 비밀리에 아레나와 접촉하면서 클린스만 해임을 결정했다.
그러나 2018년 월드컵 출전은 무산됐다. 30년 만에 처음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은 단순 불운이 아니었다. 10년에 걸친 굴라티의 배타성과 편협한 운영의 결과라고 축구계는 진단했다. 국민들과 매체, 후원사, 프로구단주, 방송사들이 연맹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오랫동안 불투명하고 닫힌, 변화에 저항해온 조직이었기 때문. 개혁은 ‘굴라티 교체’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굴라티 회장 재임 중 한 번 월드컵과 두 번 올림픽 출전에 실패했다. 그의 책임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감독은 잘리는데도 자신은 “모든 책임을 지겠으나 사임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모순의 어법을 사용하며 버텼다. 국민의 분노를 잘못 읽었다. 몇 달 동안 은밀하게 4선 가능성을 타진하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굴라티 회장은 미국 국민들과 축구계가 바라던 결정을 내렸다. 4선 포기 선언. 12년은 어느 연맹 회장에게도 충분한 기간. 누구에게도 단일 조직을 이끄는 데 있어 모자람이 없었다. 그만두어도 미련을 가질 수 없는 긴 시간이었다.
역시 12년을 가졌던 정몽규 회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