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피니싱웰(Finishing-well)', 멋진 마무리란
지난주, 필자가 존경하던 선배 두 분이 돌아가셨다. 그분들과 웃고, 대화를 나누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다시는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수년 전만 해도 친구 부모님들의 장례식 조문이 더 많았지만 이제는 주변 선배들의 부고 소식이 더 많으니 새삼 '피니싱웰(Finishing-well)'에 대해 생각해 본다. 90년 가까운 생애 동안 세계환경의 격변, 삶의 변화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다가 돌아가신 한 선배의 모습을 거듭 떠올려보는 요즘이다.
필자가 있는 대학의 전임 총장이었던 고(故) 존 엔디컷(John E. Endicott)박사의 삶은 수많은 도전과 변화가 담긴 한 편의 영화 같다. 군인에서 대학교수, 낯선 타국의 대학 총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 변화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도전과 용기로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ROTC생활과 학업을 병행하였고 졸업 후 공군 소위로 임관하여 군 복무를 시작하였다. 일본, 하와이, 베트남 등 전쟁터에 투입되는 등 군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방 최고공로훈장을 받았다. 전역 후 1986년 국방부 산하 국가전략 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후,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Tech.)에서 교수로서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 국제전략기술정책센터 소장 겸 샘넌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군에서 경험한 이론과 실무를 토대로 국가 방위전략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였고, '동북아시아 비핵화구역(LNWFZ-NEA)'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런 공로로 두 번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70을 넘긴 나이에는 낯설고 물선 한국 땅에서 대학 총장(2009년 취임)으로 세 번째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당시로는 참신한 글로벌 대학의 모델을 실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00%로 진행되는 영어수업과 다양한 국가의 학생, 교수 선발 등 다문화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국제경영대학 모델을 구축하여 AACSB(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 인증을 받는 등 안정적으로 대학을 운영하였다. 국제대학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과학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단과대학을 설립하였는데 그동안의 공로에 대한 업적으로 본인의 이름으로 명명된 '엔디컷국제대학'을 생애 가장 큰 명예로 여기고 2021년 퇴직하여 고향인 조지아주로 돌아갔다.
평생동안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고(故) 엔디컷 총장의 삶에서 나는 많은 배울 점을 보았다.
첫 번째는 도전정신이다. 30년 가까운 군 생활 이후에도 연구소장, 대학교수, 심지어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서의 대학총장까지 다양한 변화에 망설임 없는 도전으로 임하면서 나이가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개척정신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주변과 협업해 나아가는 열린 마음이다. 군 생활 중에 여러 파견국가에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수용하는 유연성을 키웠으며 이해관계가 얽힌 동북아의 비핵화 문제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현명하게 해결했다. 또 낯선 한국 땅에서 총장으로서 대학을 경영하며 다양한 문화를 가진 학생, 교직원들과 직접 대화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였다. 한번 만난 사람들을 잊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모습은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리더의 본보기와 같은 자세였다.
세 번째는 낙관적인 삶의 태도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쟁터, 두 번의 큰 수술, 타국의 낯선 문화환경 등 삶의 고비 앞에서도 그는 늘 낙관적이었다. 작년 미국 출장 중 그를 만났다. 부쩍 야위어 보여 물어보니,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를 간호하느라 살이 빠졌다. 오히려 아내 덕에 다이어트가 되었고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아내에게 받은 도움을 이제야 갚는다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이 아내를 만난 일.'이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그와의 마지막 만남은 힘듦 속에서도 긍정과 감사를 선택해 왔던 그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다.
가까운 선배, 친구들의 부음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울적한 마음에 빠져들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추스르고 힘을 내본다. 도전정신, 따뜻한 마음과 열린 자세, 낙관적인 삶의 태도로 아흔 평생을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던 엔디컷 총장의 모습에서 필자도 어떻게 피니싱웰(Finishing-well)해서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아름다운 여운을 남길지 고민해본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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