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부부 피부양 자격 인정한 대법 "인생의 동반자이기 때문"

유영규 기자 2024. 7. 19.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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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대법원은 어제(18일) 동성 사실혼 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 사회보장 기능을 하는 건강보험제도의 특수성에 주목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에 해당하는 만큼 이성이냐 동성이냐와 무관하게 '생계를 함께하는 인생의 동반자'라면 사각지대에 몰리는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동성 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면서 '건강보험제도와 피부양자 제도의 의의와 취지, 연혁'을 출발점으로 제시했습니다.

대법원은 건강보험제도를 "국가공동체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으로, 피부양자 제도를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고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보험료를 부담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건강보험을 적용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이후 1963년 의료보험법이 처음 제정됐을 당시부터 변화의 양상을 자세히 풀어썼는데, 피부양자의 인정 범위가 사회 변화에 맞춰 확대돼 왔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대법원은 "건강보험의 사회보장 기능을 고려하면 피부양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직장가입자에 대한 경제적인 의존도와 실질적 생활 관계, 즉 대상자가 직장가입자와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에 따라 정해진다"며 "통상적으로 그러한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범위로 피부양자를 규정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건강보험법에는 사실혼 배우자에게 피부양 자격을 줄지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공단이 내부 업무 지침을 통해 재량으로 이성 사실혼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온 것도 이 같은 건강보험·피부양자 제도의 성질에 기인한 것이라고 대법원은 판단했습니다.

공단의 이런 재량은 '이성 사실혼 부부'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 있다면 똑같이 행사돼야 헌법의 평등 원칙에 부합한다는 게 대법원의 논리입니다.

대법원은 동성 부부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의 인정 여부에서만큼은 이성 사실혼 부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공단이 직장가입자의 사실혼 배우자에게 규정을 확대 적용해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직장가입자의 인생의 동반자로서 생계를 함께하면서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이라며 "이성 동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건강보험이라는 특수한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한 피부양자 인정에서의 형평성 유지에 관한 것으로 건강보험제도와 피부양자 제도의 취지, 목적 등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대법원판결에 따라 동성 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면서 실질적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주목됩니다.

대법원의 기준은 간결합니다.

이성 사실혼 부부와 같은 수준이라면 똑같이 인정해 주라는 취지입니다.

대법원은 우선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을 것"을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동거·부양·협조·정조는 민법과 판례에 따라 부부에게 요구되는 의무로 이성 간 사실혼 관계를 따질 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즉 동일한 주거지에서 부부로서 공동생활을 하고 상대방의 의식주 생활을 서로 보장하며, 분업에 기초해 협력하고 성적으로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소득 및 재산요건 외에도 "가족이나 직장 등 주변에 두 사람의 결합을 선언하고 보증인 2명이 두 사람의 결합을 증명하는 인우보증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즉 결혼식을 올리거나 주변에 결혼 관계임을 선포하는 행위가 필요하고, 주변인들이 증인으로서 이를 증명해줘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 역시 이성 사실혼 부부와 같은 기준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동거'로는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실제로 이번 소송을 낸 소성욱 씨와 그의 동반자 김용민 씨는 2017년부터 함께 살았고 2019년 5월에는 결혼식을 올리고 양가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 이를 알렸습니다.

소 씨가 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김 씨가 그를 경제적으로 부양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을 비롯한 13명이 심리해 판결합니다.

이 사건의 다수 의견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김선수·노정희·김상환·이흥구·오경미·서경환·엄상필·신숙희 대법관이 동의했습니다.

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 대법관은 절차상 하자는 있지만 '이유 없는 차별'은 아니라는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남겼습니다.

견해는 엇갈렸지만 대법관들은 결국 입법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목소리를 같이 했습니다.

별개 의견을 낸 4명의 대법관은 "방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방식이다. 배우자에 동성 동반자를 포함시키고자 한다면 입법이나 위헌법률심판제도를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옳다"며 "다수의견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매개로 사실상 법을 형성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법률에 문제가 있더라도 이를 고치는 것은 국회의 역할이고 효력을 잃게 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역할이지 대법원이 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 대법관은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중요한 의제가 됐고 국회에도 여러 관련 법안이 발의됐던 바 있으며 현재도 이에 대한 치열한 공론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러한 논의를 거쳐 합당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다수의견에 찬성한 김상환·오경미 대법관도 "다수의견이나 별개 의견 모두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입법 조치가 시급하다는 데 의견이 다르지 않다"며 "우리 사회의 진전된 논의를 촉구한다"고 보충 의견을 남겼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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