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신속 납기로 佛 아성 넘었다…‘원전 유턴’ 유럽 수주 '파란불’

2024. 7. 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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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체코의 신규 원전 예정부지인 두코바니 원전 전경. 사진=대우건설



“모든 기준에서 한국이 제시한 조건이 우수했다.”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가 7월 17일(현지 시간) 체코 남부 두코바니 지역에 1000메가와트(MW) 규모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을 선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유럽 중심부 체코에서 ‘원전 강국’ 프랑스를 제치고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을 따냈다. 20조원이 들어간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두코바니 원전 2기의 사업비는 약 24조원으로 예상된다.

테멜린 원전 2기 건설 사업을 추가로 수주하면 총 수주액이 최대 4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체코는 2022년 기준 전력 생산의 48%를 차지하는 석탄 발전을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하고, 두코바니와 테멜린 지역 원전 단지에 각각 2기씩 총 4기(각 1.2GW 이하)의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해왔다.

체코 정부는 이번에 새로 짓는 원전을 2036년부터 차례로 가동해 2022년 기준 37%인 원자력발전 비중을 더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그래픽=정다운 기자



 

 유럽 안방에서 24조 잭팟…K원전, 부활 신호탄

한국이 이번에 체코에서 두코바니 5·6호기를 건설하는 것이 확정됐고 향후 테멜린에 추가로 3·4호기를 건설할 경우 체코 정부는 이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 역시 한수원으로 선정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수원은 이번 입찰에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과 ‘팀코리아’ 컨소시엄을 이뤄 참가했다. 본계약은 2025년 3월 체결될 전망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체코 원전의 총 사업비 30조원 중 순공사비는 약 19조438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두산에너빌리티는 주기기와 주설비 공사 등으로 8조5480억원을 가져갈 것으로 분석된다. 계통설계를 담당하는 한전기술은 3조6110억원, 시운전·정비 등을 담당하는 한전KPS는 1조7860억원을 공사비로 받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팀코리아가 프랑스를 제칠 수 있었던 비결로 ‘저비용·고품질’ 전략과 ‘온타임 위딘버짓’(on time & within budget·정해진 예산 내 적기 시공) 능력을 강조한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원전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면에서 프랑스를 압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세계원자력협회(WNA) 조사에 따르면 각국의 원전 건설 단가는 한국이 kW(킬로와트)당 3571달러로 프랑스(7931달러)의 절반 이하다. 미국(5833달러)과 비교하면 60% 수준에 불과했다.

체코 원전 프로젝트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 전력공사(EDF), 러시아 로사톰, 중국 광핵집단공사(CGN) 등 세계 주요 원전기업들이 눈독을 들여왔다. 당초 중국과 러시아의 수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왔다. 기존 가동 중이던 원전을 러시아 로사톰이 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안보 문제로 입찰에서 배제됐고 웨스팅하우스도 탈락하면서 한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중동 최초의 원전인 ‘UAE 바라카 원전’이라는 성공적인 트랙 레코드도 한몫했다. 한국은 열악한 사막 환경에서도 예산에 맞춰 수주한 원전 4기의 납기를 정확히 지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10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75주년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에 탈원전서 ‘유턴’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유럽 국가로의 추가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글로벌 탈원전 기조에 앞장섰던 유럽은 재생에너지만으론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는 시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등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으로 최근 원전 회귀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현재 유럽 국가 중에선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 헝가리,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원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폴란드, 루마니아, 스웨덴, 영국 등에서 사업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5년 전 한국이 원전을 수출한 UAE도 원전 추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 과제로 추진 중인 2030년까지 한국형 원전 10기를 수출한다는 계획의 조기 달성 기대감도 커졌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사진=AP·연합뉴스



그래픽=정다운 기자



전 세계 주요국은 원전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원전 허가 절차를 단축하는 등 원전 확대 방침을 담은 ‘원전 배치 가속화 법안’에 서명했다.

데이터센터 확장과 제조업 부흥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청정에너지원인 풍력과 태양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하에 대규모 전력을 상시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원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원전은 에너지 안보, 친환경성, 경제성을 충족하는 청정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 대비 6배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대안으로 원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폴란드는 2040년 에너지믹스 내 원자력·재생에너지 비중을 73%로 확대할 계획이다. 체르나보다 원전 1·2기를 운영 중인 루마니아는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대형원전 3개 사업과 2050년까지 소형모듈원자로(SMR) 발전 용량 5GW를 목표로 500~700MW 용량의 중소형 SMR 프로젝트를 16개가량 계획 중이다.

세계 최초로 탈원전을 했던 이탈리아는 35년 만에 원전 재도입을 공식화했다. 질베르토 피케토 프라틴 이탈리아 환경에너지부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50년까지 전체 전력 소비량의 11% 이상을 원전이 담당하도록 할 것”이라며 “앞으로 10년 안에 SMR 가동을 목표로 투자를 촉진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2022년 6기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는데 2050년까지 8기를 추가해 총 14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원전 종주국인 영국은 2050년까지 원전을 최대 8기까지 추가할 계획이다. 기존의 차세대 SMR 도입 계획에 더해 대형원전을 추가하는 구상을 담은 민간 원전 로드맵을 최근 발표했다. 영국은 원전 비중을 현재 15%에서 2050년 25%까지 늘릴 계획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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