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PBR 고작 0.5배인데 합병 비율은 주가 기반?... 주주 반발 가능성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 합병비율이 결국 1대 1.19로 정해졌다. SK그룹이 장고 끝에 내놓은 절충안이다. SK E&S 주식을 SK이노베이션 주식보다 좀 더 ‘비싸게’ 평가했다.
합병비율을 두고 재계에서는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한쪽에서는 SK그룹이 ‘황금 비율’을 찾았다고 평가한다. 양사 주주들 사이에서 반발이 나오지 않도록 합병가액을 적정하게 산정했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이번 합병비율이 애초에 SK이노베이션에 불리하게 정해졌다고 본다. SK이노베이션이 자산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주가가 저평가된 회사인데,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정한 게 비합리적이라는 얘기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배임 혐의를 적용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19일 재계 및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사 합병안을 의결했다. 오는 8월 2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승인되면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신고를 거쳐 11월 1일자로 자산 106조원의 거대 합병 법인이 탄생하게 된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은 1대 1.1917417다. SK이노베이션이 존손법인인 만큼, SK E&S 보통주 100주를 갖고 있는 기존 주주는 SK이노베이션 주식 119주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SK(주)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 지분을 각각 36.2%, 90%씩 보유 중인데, 합병 법인에 대한 지분율은 55.9%로 조정될 전망이다.
이번 합병비율 산정에 대해 업계에선 상반된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SK그룹이 양사 기업가치를 적당한 수준으로 평가해 주주들을 만족시킬 만한 비율을 산출해 냈다고 평가한다. 최근까지 업계에서 합병비율을 1대 2, 혹은 1대 3까지 전망하는 시각이 있었던 만큼, 그에 비하면 1대1.19는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을 상당히 배려한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반면 합병비율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에게 불리하도록 정해졌다고 보는 쪽에서는 ‘애초에 왜 SK E&S 주당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해야 했느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SK그룹이 SK이노베이션을 ‘배려했다’는 시각 자체에 ‘SK E&S를 더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얘기다. 1대 2나 1대 3은 그저 근거없는 추측이었을 뿐, 그보다 낮은 비율로 정해졌다 해서 SK E&S가 한발 양보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가 너무 낮게 평가됐다고 보는 쪽이 근거로 내미는 건 시장 가격이다. 최근 한 달간 거래량 가중산술평균 종가, 일주일 거래량 가중산술평균종가, 7월 16일 종가를 더해 3으로 나눠 산술평균(11만2396원)을 냈다. 회사 측은 “다수의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주식시장에서 거래돼 형성된 시가를 기초로 산정된 기준시가가 기업의 실질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SK이노베이션 기업가치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만큼, 자산 등 다른 평가 기준은 적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보통주 1주당 순자산가치는 주가의 2배가 넘는 24만5405원에 육박하지만,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SK E&S의 경우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시장 가격으로 볼 만한 지표가 없어서 자산가치와 수익가치의 가중산술평균을 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를 근거로 정했다. 해당 조항에는 “주권상장법인과 주권비상장법인 간 합병의 경우에는, 주권비상장법인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한 가액을 합병가액으로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에서는 상장사의 합병가액 산정 방식도 규정하고 있는데, SK이노베이션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해당 조항에는 “주권상장법인과 주권비상장법인 간 합병의 경우, 주권상장법인은 제1호의 가격을 합병가액으로 삼는다. 다만, 제1호의 가격이 자산가치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자산가치로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제1호’의 내용은 SK이노베이션이 이번에 적용한 시장 가격 기준 산정 방식이다.
즉 상장사의 경우 SK이노베이션처럼 시가를 토대로 합병가액을 정하는 게 맞지만, 이 가액이 자산가치에 미달한다면 자산가치를 토대로 합병가액을 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산가치가 주당 24만5405원이기 때문에, 이 시행령에 따라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
SK이노의 경우 주당순자산가치(PBR)가 0.5배에 불과한 기업이다. 자산가치와 주가 간 괴리가 심하다는 얘기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도 자산가치를 무시하고 시장 가격을 토대로 합병비율을 정한 건 결국 SK E&S 주주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SK E&S 지분 90%는 지주사 SK(주)가 들고 있다. 또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2021~2022년 SK E&S에 상환전환우선주로 3조원을 투자한 바 있다. 투자 당시 기업가치는 13조6000억원이었다. 이번 합병안에 따른 SK E&S 기업가치(6조2000억원)의 2배가 넘는다. IB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은 사모펀드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 남의 돈으로 여기저기 투자하며 사세를 키워 왔다”며 “지금의 위기와 합병비율에 대한 논란은 그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합병비율이 자본시장법을 위배한 건 아니지만, 형사 소송이 제기될 위험은 있다고 본다. 한 자본시장법 전문가는 “시행령에 ‘시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하는 경우 (합병가액을) 자산가치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데, ‘정해야 한다’가 아닌 ‘정할 수 있다’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위반을 문제삼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배임을 주장할 여지는 있다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SK이노베이션 기업가치를 낮게 평가함으로써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주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세이프 하버’인지 살펴봐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세이프 하버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이프 하버란 특정 상황이나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책임이나 형벌을 면제받을 수 있는 법률 조항을 뜻한다. 만약 해당 시행령이 세이프 하버라고 가정한다면, SK이노베이션이 그 조항에 따라 합병비율을 정했다면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할 책임 등 다른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엔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해당 조항은 시가와 자산가치의 차이가 클 경우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 SK이노베이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이를 따르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 경우엔 주주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SK이노베이션 측에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이 자산가치를 토대로 주당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자발적으로 포기했기 때문에, 면책이 안 된다는 얘기다.
다만 SK이노베이션 이사들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나올 수 있다. 불리한 합병비율은 회사 자체의 이익이 아닌 주주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것인 만큼, 이사진이 법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면 배임 혐의로 고발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합병 발표 첫날에는 SK이노베이션 주주들도 합병비율에 만족한 것인지 주가가 상승하는 흐름이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SK이노베이션이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렸다는 것을 주주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고, 이로 인해 소송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반발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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