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에 친서까지… “체코 원전 수주, 바라카 성공 경험으로 돌파”

이진경 2024. 7.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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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장관, 막전막후 공개
“4월 후 비공개로 3번 다녀와”
체코 원전 수주 뒷얘기
20분 정상회담서 5분간 ‘원전 세일즈’
尹 “바라카 수주 이후 15년 만의 쾌거”
與 “고사위기 원전 재도약 발판” 평가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 17일(현지시간) 24조원대로 추산되는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는 한국의 기술력과 경쟁력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가 최대 강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정적인 순간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탈락한 4월이었다.
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8일 기자브리핑을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체코 원전 입찰 과정을 전했다. 안 장관은 “원자력산업에 필수적인 기술력과 국제적인 신뢰, 그리고 산업 경쟁력은 팀코리아의 최대 강점이었다”며 “지난 50여년간의 원전사업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노하우,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에서의 성공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안 장관은 입찰 과정에서 ‘결정적 순간’으로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탈락한 4월을 꼽았다. 당초 체코 입찰에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전력공사(EDF), 웨스팅하우스 3곳이 도전했으나 웨스팅하우스는 자격 미달로 떨어졌다.

안 장관은 “1월 체코가 1기가 아닌 4기 입찰로 변경하면서 우리가 초기에 탈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며 “그러다 4월 2파전으로 판도가 갑자기 바뀌었다”고 했다. 이어 “그때부터 대통령실에 이른바 ‘워룸’을 가동해 전면전에 돌입했고, 전 부처가 긴박하게 움직였다”며 “4월 이후 비공개로 세 번이나 체코를 다녀오기도 했다. 치열한 막후 협상과 소통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끝까지 (수주를) 확신할 수 없었지만, ‘체코가 우리를 믿기 시작하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은 있었다”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황 사장은 “체코 사업부 고위직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일정상 오전 6시30분밖에 안 된다고 했다. 우리 팀은 오전 5시30분부터 가서 기다렸다”며 “나중에 다른 경로를 통해 그 고위직이 ‘한국 사람들 대단하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제 조금 마음을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체코 정부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내각회의를 열고 한국수력원자력을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공식 선정했다고 한국수력원자력이 18일 밝혔다. 사진은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앞줄 왼쪽 세 번째)이 체코 최종입찰서류를 제출 후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일제히 환영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논평에서 “이번 수주를 통해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이 가속화해 신규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협력 중소기업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앞으로 유럽 등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많은 국가에서의 원전 수주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尹, 체코대통령과 회담서 직접 설득… 2차례 특사· ‘맞춤 패키지’ 친서 전달

체코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전까지도 우리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만큼 경쟁자였던 원전 강국 프랑스가 막강한 상대였고 양측이 막판까지 치열한 총력전을 편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가 개최된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18일 정부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외교와 비밀 특사 파견 등을 통해 체코 원전 세일즈 외교에 앞장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당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신중하고도 적극적인 접근으로 한국의 우수한 원전 기술과 사업대상자로서의 장점을 피력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약 20분간의 정상회담 중 5분 정도를 남겨둔 시점에서야 원전 이야기를 꺼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이 약 50년간 축적해온 원전 기술과 노하우에 관해 언급하며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을 통한 금융기관의 협력도 준비돼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라카 원전 사업의 성과를 강조하며 압도적 경쟁력을 피력하기도 했다.

파벨 대통령은 당시 회담에서 “I can’t comment now(지금은 대답할 수 없다)”라며 결과를 곧 정해 알려주겠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코 입장에서는 같은 유럽연합(EU) 소속인 프랑스와의 관계, 자국의 이익 등을 고려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두 차례 특사를 체코에 보내 관련자와 관계기관 등을 설득하는 과정도 거쳤다. 특사로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역할을 했다. 안 장관은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에게 윤 대통령의 진심과 체코 산업을 발전시킬 지원 방안 패키지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과 함께 굳건한 한·미 동맹도 체코가 역외 국가를 대상자로 선정하는 데 부담을 덜어줘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정부의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전북 정읍시 JB그룹 아우름캠퍼스에서 열린 '신 서해안 시대를 여는 경제 전진기지, 전북'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이날 전북에서 진행한 민생토론회에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의 쾌거이고 금액도 그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크다”며 “우리 원전 산업이 전반적으로 고사 직전에 몰렸었는데 탈원전 정책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다시 원전 산업을 회복시켜 우리 산업 전체와 우리 지역 전체가 큰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당도 정부의 탈원전 성과를 부각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정부의 망국적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고사 위기에 놓였던 국내 원전 산업이 이번 수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피알라 체코 총리는 전날 원전 신규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기자회견에서 “모든 기준에서 한국이 제시한 조건이 우수했다”고 밝혔다. 피알라 총리는 이번 원전 건설이 체코 현대사에서 가장 비싼 계약이라며 “수용 가능한 가격으로 미래 세대에 에너지 안보를 보장할 충분한 전력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체코 정부는 새로 짓는 원전을 2036년부터 차례로 가동해 2022년 기준 37인 원자력 발전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편 지난 1월 수주 경쟁에서 조기 탈락한 미국 업체 웨스팅하우스는 이번 결정에 대해 한수원이 자사 원자로 기술을 사용할 권한이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진경·박지원·이지안·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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