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정지·상폐 지름길 이것… 사채 원리금 못 갚은 상장사 올해도 벌써 7곳

정민하 기자 2024. 7.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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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곳만 거래 가능… 나머지는 상폐·거래 정지
2021년 당국 ‘꼼수’ 막자 매력도 떨어진 메자닌
고금리에다 바이오 기피, 규제 겹치니 투자자 쏠림 현상
부실기업 투자자들 조기 상환 요구에 미납 이어져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주식형 사채(메자닌)의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상장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로 메자닌 투자 메리트가 줄어들게 되면서 투자자들이 잇달아 조기 상환을 요구하면서다. 고금리에다 바이오 기피 현상이 겹치면서 일부 기업 메자닌만 잘 팔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메자닌은 주가가 떨어지면 그대로 채권으로 보유해 이자를 받고,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또는 신주인수권 행사)해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다.

일러스트=손민균

◇ 지난해부터 사채 원리금 미지급 공시 늘어나… 당국 규제에 메자닌 시장 위축 탓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날까지 사채의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한 상장사는 유가증권(코스피) 시장 1곳, 코스닥 시장 6곳으로 총 7곳이다. 이들 중 현재 거래가 가능한 종목은 1곳뿐이다. 나머지 5곳은 거래가 정지됐고 1곳은 상장 폐지됐다. 사채 원리금 미지급 공시 자체론 거래소 제재가 없지만, 빚을 갚지 못한다는 건 자산 건전성이 부실하다는 의미인 만큼 상장 폐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5년간 수치를 보면, 사채권자에 빚을 갚지 못한 상장사는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 2020년 1년 동안 8곳, 2021년 8곳, 2022년 6곳이었는데 2023년 11곳으로 급증했다. 올해 역시 이제 절반이 막 지났는데도 지난해 같은 기간(9곳)보단 적지만 2022~2022년과 비교하면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하반기에도 적지 않은 기업이 사채 원리금 미지급 발생 공시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금융당국이 CB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상향 제도 도입 등 관련 규제를 재차 강화하면서 메자닌 시장이 축소된 여파라고 분석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메자닌 발행액은 2조8154억원이다. 당국이 메자닌 관련 규제를 도입하기 직전인 2021년 같은 기간보다 2600억원 감소했다. 총량 자체는 소폭 감소한 수준이지만,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CB는 저금리로 코스닥 상장사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대표적인 통로다. 전환가액은 이 CB를 주식으로 바꿀 때 적용하는 주당 가격을 의미한다. 그간 상장사는 주가가 하락하면 이 행사가를 하향 조정했다가도, 주가가 다시 상승하면 이를 올리지 않았다. 즉 낮게 고정된 전환가액을 주가가 상승했을 때 행사할 수 있어 차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장점을 내세워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비우량 상장사는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당국은 이런 관행이 소액주주의 지분가치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고 보고 있다. 이에 2021년 말 전환가액 상향 조정을 의무화하고, 조정 범위를 최초 전환가액 한도 이내(70~100%)로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어 3분기부터 증자, 주식배당 등으로 전환권의 가치가 희석되는 경우 희석효과를 반영한 가액 이상으로만 전환가액을 하향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모 CB 발행 시 주가가 오를 때까지 일부러 사채원금을 납입하지 않는 편법을 방지하기 위해 사모 CB의 전환가액 산정 기준일을 명확히 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지만, 제도 도입 이후 투자자 입장에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발행 감소가 나타났다”면서 “고금리에다가 바이오주 기피 현상, 규제 강화가 맞물리니 사채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상장사가 잇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

◇ 대부분 부실기업, 상장 폐지 위험성 높아 투자에 유의해야

이들 기업은 대부분 적자에 시달리거나 회생 절차를 밟는 등 부실기업이다. 결국 빚을 갚지 못해 공시를 내는 것이기에 상장폐지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 올해 들어 사채 원리금 미지급 공시를 낸 곳 중 유일하게 거래가 가능한 태양광 인버터 기업 캐리(옛 윌링스)는 지난 16일 제1회차 CB 인수계약서에 따라 기한 이익 상실에 따른 조기상환 청구(풋옵션) 사유가 발생한 후 채무이행 자금 부족으로 미지급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미지급 금액은 이자 포함 111억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53.23% 수준이었다.

즉 채권자는 채무자인 캐리의 신용 위험이 커졌다고 판단, 대출 만기 이전에라도 남은 채무를 일시에 회수하려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캐리는 2022년 8월 1회차 CB를 발행한 이후 자주 전환가액을 조정했다. 당시 전환가가 1만1300원이었고 주가 하락으로 7910원까지 리픽싱됐지만, 현 주가는 그보다 더 떨어져 4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연안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는 디딤이앤에프도 지난 4월 24일 자기자본의 13.72%에 해당하는 1억589만원 규모의 사채 원리금을 갚지 못했다. 제10회차 CB 조기상환청구권 행사 및 사채 상환 자금 부족 탓이었다. 디딤이앤에프는 2월과 지난해 7월에도 자금 부족으로 사채 원리금을 갚지 못한 바 있다.

올해 사채 원리금을 지급하지 않은 기업 중에 상장폐지된 곳도 있다. 반도체 소모성 부품 전문 개발 기업 비케이탑스는 2년 연속 감사보고서 의견 거절을 받았고, 5월 10일 상장 폐지됐다. 비케이탑스는 4월 30일 상장 폐지 전 정리매매 재개 첫날 80% 넘게 급락했고, 마지막 날엔 주가가 904원에서 10원대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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