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리 자식의 일”···해병대 장병·3040 엄마들·장년층이 본 ‘채 상병 1주기’

배시은 기자 2024. 7.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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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19일 실종된 민간인을 찾다 급류에 휩쓸린 후 주검으로 돌아온 한 해병대원의 소식은 많은 시민의 마음에 상흔을 남겼다. 영정에 새겨진 평범한 나의 친구, 전우 또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그 상처는 더 깊어졌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진 책임 공방과 정쟁은 또 한 번 시민들 마음속의 ‘채 상병’을 무겁게 떠올리게 했다.

경향신문은 ‘채 상병 순직 1주기’를 맞아 20대 해병대 장병과 아이를 키우는 젊은 어머니, 장년층에게 채 상병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물었다. “내 일이 될 수도 있었기에”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 실망해서” 등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의 분노와 안타까움은 같았다.

채 상병은 내가 될 수 있었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1주기를 이틀 앞둔 17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 시민 추모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해 5월 해병대를 전역한 박모씨(22)는 ‘실종 해병대원 사망한 채로 발견’이라는 기사를 봤던 날을 기억한다고 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고, 곧 내가 군대에 몇 달만 늦게 갔더라면 내 일이 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현재 해병대에 복무하는 A씨(21)는 채 상병 사건 발생 전 경북 예천군으로 추가 출동을 기다리던 부대 소속 병사였다. A씨는 그날을 회상하며 “채 상병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고를 당했을 거라고 동기들과 말했다”고 전했다.

해병대 장병들은 채 상병 사건을 보고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채 상병의 사망에서 대민 지원 현장에서 겪은 상관의 부당한 지시, 위험한 현장에서 작업해야 했던 공포를 떠올렸다.

지난 2월 해병대를 전역한 김모씨(21)와 박씨는 2022년 태풍 ‘힌남노’ 당시 경북 포항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침수 현장에 투입됐다. 김씨는 “헤드라이트 하나 주지 않고 물이 차오른 주차장에 들어가 삽으로 진흙을 파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라며 “그때 처음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의견을 낼 수 없었다. 김씨는 “특히 대민 지원을 나갈 때는 더 단합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선임들이 위압적으로 얘기하면 계급이 낮은 병사들은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위험을 감지해도 일단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주민들이나 카메라 앞에서 해병대 티셔츠를 꼭 입으라고 강조하는 등 보여주기식으로 대민지원을 하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대민지원 현장에는 지휘관들 대신 초급 간부들만 나온다”며 “지휘관들이 정확히 현장 상황을 정확히 알고 지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병들 분노는 간부들을 향했다. A씨는 “채 상병 사건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만 봐도 지휘관들은 부하 장병들을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 이런 사건이 터져도 군대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해병대를 전역한 B씨(27)는 “해병대 간부들은 진급에 영향을 받을까 봐 실수를 최대한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임 사단장 등도 이런 이유로 과실을 은폐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며 “폐쇄적인 군내 문화와 진급 체계 등을 바꾸지 않는 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생각나…이런 군에 우리 아이 보낼 수 없어”
해병대 예비역 단체 회원들이 17일 서울 중구 청계천광장에 마련된 ‘故채상병 1주기 추모 시민분향소’를 방문해 추모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어린아이를 둔 젊은 어머니들은 아들을 떠나보낸 부모 처지에 자신의 감정을 겹쳐봤다. 만 1세 남자아이의 어머니인 조은희씨(33)는 채 상병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아 채 상병 특검 촉구 집회, 12사단 훈련병 추모분향소 등을 직접 찾았다. ‘채 상병’ 이름을 볼 때마다 마음에 걸려 관련 수사 기사부터 특별검사 입법 청문회 영상까지 관련된 뉴스를 모두 챙겼다. 조씨는 “1년이 지나도 밝혀진 것도, 누구 하나 책임진 이도 없는데 부모님 속이 어떨지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내 자식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채 상병 사건은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6세 여자아이와 25개월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홍혜진씨(40)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들 가진 부모로서 군대에 너무 보내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라고 했다. 12세 남녀 쌍둥이를 키우는 C씨(42)는 지난달 언론에 공개돼 채 상병 어머니가 쓴 편지를 보고 울컥했다고 했다. C씨는 “편지를 읽고서 어떤 방법을 써서든 아들을 군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내 아들 일만 아니길 바라면서 이렇게 군대를 보내야만 하는 걸까”라고 말했다.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이에 응답하지 않는 국가의 모습에 실망감을 느꼈다는 의견도 나왔다. C씨는 “채 상병 사건을 보며 세월호·이태원 참사가 떠올랐다”며 “사고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 국가가 젊은 청년들의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조씨는 “1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았나 싶다”라며 “아직도 채 상병 관련 수사가 지지부진한 걸 보면 이제는 답답함을 넘어서 무섭고 슬프다”라고 말했다. 홍씨는 “이미 군 내 문제 해결의 촉매제가 될 만한 사건들은 많았다. 이번이라고 바뀔 수 있겠냐”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 사회 정의 어디로…어른으로서 무력감 느껴

장년 남성들은 채 상병 사건을 보며 “우리 사회 정의가 무너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김강한씨(60)는 “만약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의 아들이 그런 사고를 당했으면 철저히 진실을 규명했지 않을까”라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사회 정의가 다 실종된 것 같아 참담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신용백씨(63)는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에서 채 상병을 포함해 억울한 사람이 정말 많을 것 같다”라며 “그런 억울한 사람들을 만드는 이 사회가 잘못된 것 같아 요즘은 뉴스를 보는 것도 괴롭다”라고 말했다.

전범수씨(73)는 안타까움을 넘어 무력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 세대가 이런 군대 내 반복되는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게 무언가를 바꿔주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해결에 보태줄 힘이 없는 것 같아서 무력감이 든다”라며 “철모나 수통 하나도 10년 넘게 바꿔주지 않는 군대인데 과연 바뀔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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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7171355001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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