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물살처럼 바뀐 그들의 말···채 상병 사건 핵심관계자들의 바뀐 말들
해병대 채모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작전으로 희생된 지 1년이 흘렀지만 진상규명은 요원하다.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조사와 경찰 이첩과정 등에서 나타난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압력이 사건의 핵심 규명대상이었지만 이를 밝히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이는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된 주요 핵심 관계자들이 침묵하거나 입장을 여러 차례 뒤집은 탓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경향신문이 채 상병 사망 1주기를 하루 앞둔 18일 수사외압 의혹 당사자들의 입장을 정리한 결과, 상당수가 지난해 사건 직후와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의혹인 수사외압 의혹은 이른바 ‘VIP 격노설’이 출발점인데, 이 부분의 ‘키맨’으로 지목되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입장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30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으로부터 초동조사 결과를 보고받고서 사건의 경찰 이첩을 승인했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은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하고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이날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격노한 뒤로 사건 처리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것이 격노설의 요지다.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처음 대통령실은 부인하고 나섰다.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7월3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채 상병 사건이 보고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조 전 실장은 대통령에게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조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보고드린 바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보고받은 적이 없으니 격노한 사실도 없다는 취지의 말이다.
격노설을 입증하는 정황이 드러나자 관련자들은 입장을 바꿨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올해 5월31일 경향신문에 “처음 사고 났을 때 (군 관계자가 윤 대통령에게) 한번 야단맞았고, 그다음에 박정훈 대령이 수사한다는 것을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이 보고해서 지적을 또 받은 것”이라며 “박 대령이 야단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야단을 친 점은 인정한 것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대통령 격노라든지, 혐의자를 제외하라고 외압을 했다든지 이런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5월 공수처에는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통령 격노 자체가 없다고 했다가, 본인이 접한 적이 없다고 미묘하게 말을 바꾼 것이다. 이 전 장관 입장이 바뀐 시점은 공교롭게도 공수처가 격노설을 입증할 증거를 여럿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뒤였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초반엔 박 대령을 옹호하는 쪽이었다. 김 사령관으로부터 VIP 격노설을 전해들었다고 진술한 해병대 관계자도 여럿 나왔다. 김 사령관은 지난해 8월 국방부 검찰단(군검찰)에선 “VIP가 언제 회의했는지 알 수도 없고, 그런 사실(격노설)을 들은 적도 없다”며 입장을 정반대로 바꿨다.
박 대령 항명 사건 재판을 통해 통화내역이 새로 드러날 때마다 관계자들 입장이 달라지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대통령실로부터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문자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다가 지난달 채 상병 특검법 국회 입법청문회에서는 “전체적으로 보면 (윤 대통령과) 통화를 많이 했다”며 “(지난해 국회) 질의 답변 분위기가 (임성근 전) 사단장 외압이 핵심 주제였다보니 (그렇게 답변한 것)”라고 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2일 군검찰이 경찰로 넘어간 사건 기록을 회수해 오기 전 이 전 장관과 윤 대통령이 세 차례 통화한 내역이 지난 5월 공개됐다.
이 전 장관이 해병대 수사단에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고 지시했는지를 두고도 관계자들의 말이 달라졌다. 정종범 전 해병대 부사령관은 지난해 7월31일 이 전 장관 주재 회의에 참석해 ‘OO 수사 언동 안됨’ 등 10개 지침을 메모했다. 그는 군검찰 조사에선 이 메모가 이 전 장관 지시를 적은 거라고 했다가 이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발언을 적은 거라고 번복했다. 지난달 국회 입법청문회에서 이 전 장관은 이 메모가 자신이 지시한 사항이 맞다고 인정했다.
유 법무관리관은 지난해 8월 군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박 대령에게 혐의자 가운데 임 전 사단장을 빼라고 한 적이 없고, 국방부 조사본부에 이 같은 의견을 직접 낸 적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공개된 조사본부 보고서에는 법무관리관실이 임 전 사단장 등 4명에 대해 “과실과 사망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사실상 혐의자에서 제외하고 경찰에 이첩하라는 의견을 낸 사실이 적혀있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명태균 “윤 대통령 지방 가면 (나는) 지 마누라(김건희)에게 간다”
-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성남 땅 ‘차명투자’ 27억원 과징금 대법서 확정
- [단독] 허정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출마 선언한다
- 최민희 “비명계 움직이면 당원들과 함께 죽일 것”
- [단독] 명태균씨 지인 가족 창원산단 부지 ‘사전 매입’
- “김치도 못먹겠네”… 4인 가족 김장비용 지난해보다 10%↑
- 4000명 들어간 광산 봉쇄하고, 식량 끊었다…남아공 불법 채굴 소탕책 논란
- 순식간에 LA 고속도로가 눈앞에···499만원짜리 애플 ‘비전 프로’ 써보니
- 체중·혈압 갑자기 오르내린다면··· 호르몬 조절하는 ‘이곳’ 문제일 수도
- “한강 프러포즈는 여기서”…입소문 타고 3년 만에 방문객 10배 뛴 이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