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건설 능력 없어…‘기후 적응 실패’로 죽어간 거대 설치류[멸종열전]
1986년 10월28일 오후, 26개 대학의 학생 2000명이 건국대학교에 모여 애학투련 발족식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진압작전에 당황한 학생들은 학교를 점거하고 준비 없는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의 구호는 ‘반외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조국통일’. 정부는 반독재 민주화를 제외한 나머지 두 개의 구호를 근거로 학생들을 빨갱이 또는 좌경용공분자로 몰아갔다.
농성 3일째인 10월30일 정부는 금강산댐 건설 계획을 멈추라는 대북성명을 발표했다. 국민들에게는 금강산댐이 완공되면 북한강을 통해 휴전선 이남으로 흘러가는 물 18억t이 차단될 것이며, 만약에 북한이 금강산댐을 붕괴시킨다면 한꺼번에 쏟아내린 200억t의 물이 63빌딩 중간 높이까지 차오를 수 있다고 그래픽 효과를 동원하여 설명했다.
농성 4일차인 10월31일은 점거 학생을 진압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금강산댐 공포에 빠진 국민들은 데모꾼 학생들을 걱정하거나 편들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대대적인 작전을 펴서 1525명을 연행하고 이 중 1288명을 구속했다. 아마 단군 이래 최대 구속자를 만든 단일 사건일 것이다.
1986년은 군사독재정권에는 위기감이 높은 시기였고 이를 극복하는 데 북한의 금강산댐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정말이다. 국민들은 무서웠다. 댐이 홍수를 막고 전기를 만드는 역할만 하는 줄 알았지 공격 무기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댐은 곧 공포가 되었다.
댐 건축가 비버
댐은 사람만 짓는 게 아니다. 사실 동물 세계 최고의 건축가는 우리 같은 포유류가 아니라 설치류다. 몸길이 60~70㎝, 꼬리까지 합해봐야 1m가 채 되지 않는 비버(beaver)가 그 주인공이다.
비버, 수달, 해달은 모두 뒷다리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어 헤엄을 잘 치고 털의 밀도가 높아서 추위에 강하다. 이런 특징만 놓고 보면 셋 다 비슷비슷할 것 같지만 모두 같이 놓고 보면 셋을 구분하지 못할 사람은 거의 없다. 우선 크기가 다르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는 수달 120㎝, 해달 150㎝인 데 반해 비버는 100㎝ 정도로 상대적으로 작다.
습성도 완전히 다르다. 수달과 해달은 족제빗과 동물로 육식성이다. 수달은 앞발로 고기를 잡고 뜯어먹는 포악한 동물이다. 해달은 배 위에 조개를 올려놓고 돌로 깨부숴 먹는다. 바다에 살면 해달, 민물에 살면 수달이다. 수달은 족제비와 함께 우리나라 육상의 최상위 포식자다. 이에 반해 비버는 설치류로 쥐 또는 카비바라와 닮았다. 꼬리는 배의 노처럼 편편하게 생겼고 비늘로 덮여 있다. 그리고 주로 육상의 식물을 먹는 초식동물이다. 초식동물이라고 하면 나무와 풀을 으깨 먹기 좋은 어금니가 주로 발달되어 있을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이빨은 앞니다. 이빨은 스무 개인데 앞니가 매우 강해 지름 30㎝ 나무를 10~15분 만에 갉아 쓰러뜨린다.
비버가 나무를 쓰러뜨리는 이유는 댐을 만들기 위해서다. 비버는 작은 동물이지만 이빨로 큰 나무의 밑동을 갉아 쓰러뜨리고 그 나무를 통째로 물로 끌고 온 다음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서 돌과 진흙을 이용해 자신만의 댐을 만든다.
비버가 지나치게 큰 노력을 쏟아가며 댐을 짓는 까닭은 뭘까? 안전한 둥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안전한 둥지를 지어야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버새(weeverbird)는 뱀으로부터 새끼를 지키기 위해 둥지에 두 개의 입구를 만든다. 하나는 고도의 노력과 기술로 만든 위장용이다. 알을 먹으러 온 뱀이 가짜 입구만 들락거리다가 소득 없이 떠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비버는 늪지 한가운데 둥지를 짓는다. 땅 위에 나무를 얼기설기 엮고 진흙을 발라 지붕을 짓는데 그 지붕은 땅 곁의 물도 일부 덮는다. 출입구가 물속으로 나 있어서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고 헤엄을 쳐야만 둥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덩치 커다란 동물이 와서 지붕을 부숴버리면 출입구를 물속으로 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예 포식자가 둥지 쪽으로 올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깊은 수위를 유지해야 한다. 위버새가 가짜 입구를 만들 듯 비버는 댐을 짓는 치수사업을 하는 것이다.
메머드와 함께 살던 ‘자이언트 비버’
체중 160㎏·길이 2.5m 곰 연상시켜
작은 비버와는 달리 수생 식물 섭취
빙하기 이후 습지 줄면서 결국 멸종
육상 식물을 먹던 작은 비버는 생존
현생 비버처럼 댐 만들 수 있었다면?
지금도 살아 더 큰 댐을 지었을 수도
치수사업이 어디 혼자 할 수 있는 일인가? 비버의 댐 건설은 대를 이어서 하는 가족사업이다. 댐 건설에 필요한 나무가 떨어지지 않는 한 건설은 계속되고 댐은 점점 커진다. 비버는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숲이 며칠 사이에 늪으로 변하기도 한다. 습지가 형성되면 많은 동물들이 몰려들어 풍성한 생태계를 구성하기도 하지만 이전의 생태계는 파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버가 살고 있다고 해서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까닭은 늑대들이 비버 개체수를 적당히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원래 자연이란 그런 것이다.
자연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 반드시 등장하는 생물이 있으니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이들은 꼭 자기에게 좋지 않은 것을 탐낸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남아메리카 최남단 티에라델푸에고에 캐나다 비버들이 대량 강제이주되었다. 비버의 모피를 얻으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웬걸! 비버 모피가 인기가 없었다. 그러니 비버를 잡을 사람이 없다. 게다가 남아메리카에는 비버의 천적이 없다. 왜냐하면 비버가 아예 없었으니까.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추워서 숲의 성장 속도가 느린 곳인데 비버가 나무를 베어버리니 숲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자기 고향에 살던 비버들도 사람들과 마찰을 빚었다. 비버가 만든 댐은 사람에게도 유리하다. 부유물들을 잡아주는 습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버는 적당히를 모르는 동물이다. 쉬지 않고 댐을 만든다. 댐을 만들려니 주변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변에 살게 되면서 늑대들이 사라졌다. 비버 개체가 조절되지 않는다. 결국 비버는 다른 생물들의 터전을 망가트린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삶에 큰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비버 댐 때문에 하천이 범람하기도 하고,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얻는 데 방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당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항상 폭력적으로 말이다. 비버의 댐을 손으로 일일이 해체하면서 비버 새끼들이 도망갈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기도 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 전역에 비버가 살았지만 현재 서유럽 비버는 거의 멸종했다. 비버가 비록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아메리카와 동유럽, 몽골 등지에 겨우 살고 있는 정도다. 원래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무작정 열심인 생물들이 오히려 어려움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비버는 댐 짓는 능력 때문에 혹시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지는 않을까?
댐 못 짓는 자이언트 비버
자연사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요즘이야 작은 체구의 비버만 있지만 매머드같이 커다란 포유류가 살던 시절에는 거대한 비버 역시 존재했다. 신생대 플라이스토세(홍적세)에 살던 자이언트 비버(Castoroides)가 그 주인공. 자이언트 비버는 체중 160㎏, 몸길이 2.5m에 달했다. 곰을 생각하면 된다. 현대 비버와 많이 닮았지만 크고 강인했다.
왜 크고 강인한 자이언트 비버는 사라지고 작은 비버만 남았을까? 자이언트 비버는 동굴화와 암각화에도 남아 있지 않으니 순전히 조금 남아 있는 화석으로만 연구해야 한다. 출발점은 항상 현생 동물. 현생 비버가 초식동물이니 자이언트 비버도 초식동물이라고 가정하고 그의 영양상태를 따져봐야 한다. 현생 비버는 육상 식물을 먹는다. 그렇다면 자이언트 비버도 마찬가지일까?
다행히 직접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식물은 광합성 경로에 따라서 C3와 C4 식물로 구분할 수 있다. 온대기후의 나무, 관목, 서늘한 계절 풀들은 대부분 C3 식물이다. 이에 반해 덥고 건조한 환경에서 볼 수 있는 많은 풀과 일부 관목은 C4 식물이다. 과학자들은 동물 뼈 콜라겐의 탄소 동위원소를 분석해 식단이 C3 또는 C4 식물로 구성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 질소 동위원소 구성으로는 먹이사슬의 위치를 알 수 있다. N-15값이 높을수록 먹이사슬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식물을 나타낸다.
2019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 ‘안정 동위원소로부터 유추한 자이언트 비버 고생태학’의 저자들은 뼈 콜라겐의 탄소와 질소 동위원소를 분석해서 자이언트 비버의 식단과 서식지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자이언트 비버는 육상 식물이 아닌 수생 식물을 주로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주로 육상 식물을 포함한 다양한 식단을 가진 현대 비버와 크게 구별된다.
자이언트 비버는 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다량의 수생 식물을 섭취하면서 습지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약 1만년 전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북아메리카는 심각한 기후변화를 경험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후퇴하고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전환되었다. 이런 변화는 자이언트 비버가 서식하던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이언트 비버에게 이상적인 서식지를 제공했던 광활한 습지가 말라버리거나 다른 생태계로 변하기 시작했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자이언트 비버가 먹을 수 있는 수생 식물은 줄어들었다. 큰 기후변화가 있을 때 덩치가 큰 동물이 더 큰 타격을 받는 법이다. 비버도 똑같은 기후변화를 겪었지만 충격은 같지 않았다. 자이언트 비버와 달리 육상 식물을 주로 먹는 비버에게는 습지가 줄어들수록 먹이는 더 풍부해졌다.
자이언트 비버 전문가인 고생물학자 제인 도(Jane Doe)는 자이언트 비버가 멸종한 가장 큰 이유는 댐 건설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댐 건설 능력이 없는 자이언트 비버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력이 떨어졌고, 습지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멸종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비버가 쉬지 않고 댐을 건설하는 것은 혹시 댐을 못 짓던 자이언트 비버의 멸종을 지켜본 트라우마가 남았기 때문일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댐으로 군사 위협을 해서도 안 되고, 대국민 사기를 쳐서도 안 된다. 아무리 댐으로 막으려고 해도 역사의 강은 흘러갔다. 금강산댐 협박 이듬해인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월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 6·29 선언과 개헌으로 결국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됨으로써 기나긴 군사독재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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