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케이블카'는 다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전국 인사이드]
경남 산청군이 ‘또’ 지리산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한다. 6월19일 경남권역 지리산케이블카 입지선정위원회에서 산청군 노선을 단일 노선으로 선정했다. 경남권역 지리산케이블카 사업은 2011년부터 산청군과 함양군이 유치 경쟁을 벌여왔다. 산청군 노선은 산청 중산리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4.38㎞ 구간이다. 환경부는 그간 사업 불허 이유 중 하나로 ‘지역 간 사업 중복’을 들어왔다. 이번에는 경남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 모양새다. 경남도는 산청군 노선안을 환경부에 제출하고 인허가를 요청할 예정이다. 6월20일 ‘노선 단일화 결정’을 골자로 한 경남도청발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필자를 비롯해 어느 지역 언론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신호는 있었다. 2023년 2월 말이었다. 정부가 40년 만에 강원도 양양군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했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에 빗장이 열린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기자간담회에서 지리산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다시 정부에 건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후 감감무소식이었는데 1년 만에 “산청군과 함양군이 단일 노선안 추진에 합의했다”라는 뉴스가 툭 나왔다.
‘이곳만은 자연 그대로 보전하자’라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 국립공원이다. 한국 국토 면적 중 단 4%에 불과하다. 특히 지리산국립공원은 1967년 12월29일 국내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이곳에 반달가슴곰이 서식하며 보전 가치가 높은 식물군락과 멸종위기종이 존재한다. 따라서 케이블카 설치 논의는 ‘자연보전지역으로 설정한 이곳을 개발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통 지역 관광사업을 강행하는 지자체장은 ‘지역민이 개발을 원하는가?’라는 프레임을 꺼내든다.
국립공원 개발, 찬반 다수결만으로 결정해서는 안 돼
소멸 위기인 군 지역에서는 ‘우리는 언제까지 낙후된 채로 있어야 하느냐’는 소외감이 기류로 흐른다. 군수는 이런 분위기를 누구보다 기민하게 포착한다. 실체도 흐릿한 ‘지역 민심’은 개발을 밀어붙이는 동력이 된다. 실제 이승화 산청군수는 지난해 10월 한 간담회에서 “군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지리산케이블카를 하지 않겠지만 다들 원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유난스럽게 목소리를 높이는 쪽은 단합력을 갖춘 시민사회단체다. 그러면 구도는 자연스레 ‘지역민이 개발을 원하는가?’에서 ‘지역민 대 시민사회단체’ 대결 구도로 넘어간다. 개발을 강행하는 지자체의 일반적인 시나리오가 이렇다.
2022년 어느 날 신문사 편집국에 까까머리 사내가 찾아왔다. 그는 본인이 직접 수확했다는 감 몇 개를 건넸다. 이후 그가 꺼내든 물건은 뜻밖에도 스프링 노트였다. 손수 만들었다는 그 노트에는 지리산을 개발하면 안 되는 이유와 세간에 떠도는 개발 논리에 대한 논박 자료가 빼곡히 정리돼 있었다. 그는 자신을 농민이자 환경단체 일원이라고 소개했다.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운행하고 호텔을 짓는 ‘알프스하동 프로젝트’를 저지하는 활동에 열성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토론에 자신 있어 보였지만, 그보다 난처한 것은 외부 세력이라는 낙인찍기라고 했다. 지역에서 감 농사를 짓는 그는 어디 가서 누구를 설득하든 늘 본인이 ‘외부 세력’이 아니라고 항변했고, 때로는 항변하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지리산 개발은 자연보전, 사업의 합목적성 등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두루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주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겠지만, 지역민의 찬반 다수결만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중대 사안은 지역 언론의 약한 영향력과 수도권 언론의 무관심 탓에 공론의 장으로 쉽사리 나오지 못한다. 지자체로서는 지역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소수자들을 외부 세력으로 낙인찍고 사업을 강행해버리면 그만이다.
산청군은 전체 면적의 78.6%가 산지다. 군수로서 임기 내에 산지를 개발하고 싶은 마음이 큰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근 사천, 통영, 밀양 케이블카가 모두 적자 늪에 빠진 상황에서 실익이 있을까? 너도 나도 갖는 이런 문제의식에 이승화 산청군수는 “지리산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쩌면 그간 수차례 케이블카 설치 사업에 실패해온 탓에,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는 그 자체로 ‘성공’한 것이라는 오기만 남은 게 아닐까.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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