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아이] 神이 된 사나이 트럼프, 총알 타고 정권 탈환할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시도라는 '초대형 사건'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구도를 격랑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얼굴에 피를 흘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트럼프의 모습은 미국 국민들에겐 강력한 지도자로 비춰졌을 것이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길고 굴곡진 길은 더 심한 '험로'가 됐다.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트럼프가 과연 대선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전 세계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
◇'AR-15' 반자동 소총의 8발 총성
현지시간으로 7월 13일 오후 6시 15분경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도중 총에 맞았다. 총알은 트럼프가 연설한 연단에서 약 120m 정도 떨어진 건물 위에서 발사됐다. 저격범은 20세의 지역 주민 토머스 매슈 크룩스로 확인됐다.
사용된 무기는 AR(Armalite Rifle)-15 반자동 소총이었다. 짧은 시간에 8발이 발사되어 그 중 한 발이 트럼프의 오른쪽 귓바퀴 위쪽을 뚫었다. 다른 한 발은 집회 참가자를 죽였다.
AR-15는 전미총기협회(NRA)가 '미국의 소총'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미국에서 보편화된 총기 중 하나다. 미국 내에 약 2000만 정 이상이 보급돼 있다. 이 소총은 군사용인 M-16 소총의 '민간 버전'이다. 가벼운 무게(3.63㎏)에 반동이 적고 정확도가 높다. 구경은 5.56mm로 비교적 작지만 권총 총알보다는 훨씬 치명적이다. 최대 분당 45발을 발사할 수 있다. 유효 사거리는 600m 정도다. 가격은 평균 약 800달러(약 110만원)로 비교적 저렴하다.
때문에 이 소총은 미국 총기난사 사건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12∼2022년 사이 미국에서 발생한 주요 총기 난사 17건 가운데 10건에 AR-15 계열 소총이 쓰였다고 전했다.
이를 보면 크룩스의 트럼프 살해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그는 암살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즉시 총에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역시 비밀경호국(SS) 저격수들은 크룩스를 즉각 사살했다. 숙련된 저격수에게 1200m는 '근거리'에 불과하다. 미군 저격수는 최대 800m 거리에서 원샷 원킬을 수행해야 한다.
트럼프는 암살 시도에서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당시 불법 이민과 관련한 통계를 보기 위해 얼굴을 돌린 덕택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트럼프를 치료한 의사는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보지 못했다"면서 '기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신(神)이 지켜내고 선택한 사람이 됐다.
◇귀에 거즈 붙이고 감격의 '대관식'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암살미수 사건 이틀만인 지난 15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등장, '감격의 복귀'를 했다.
빨간색 넥타이 차림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수 리 그린우드가 부르는 '갓 블레스 더 유에스에이'(God Bless the USA·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걸어 나왔다. 총격으로 다친 오른쪽 귀에 흰색 거즈 붕대를 한 그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행사장을 가로지르며 관중석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였다.
청중들은 "유에스에이(USA), 유에스에이", "싸우자(fight), 싸우자, 싸우자" 등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싸우자"는 피격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건재함을 과시하며 부르짖은 말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이날 별다른 발언 없이 청중들의 환호에 미소만 지었다. 짓궂고 능글맞은 웃음이나 찌푸린 표정, 어깨를 흔드는 춤 등 유세 때 보이던 특유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지자들에게 강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는 다시 백악관으로 가는 티켓을 얻었다.
미국 주요 매체들은 총격으로 다친 지 48시간 만에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가 이전과 달리 차분하고 감정에 북받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CNN은 '트럼프의 메시아적 이미지'가 확실히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18일 대선 후보직 수락 연설을 통해 차기 정부 국정 비전 등을 밝혔다. 수락 연설에서 그는 피격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나의 편"이라며 자신의 출마를 정치의 영역을 넘어선 일로 규정하려 시도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찬조연설자로 나선 사람들은 앞으로 공화당이 나아갈 바에 대한 제언보다는 트럼프에 대한 칭송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전당대회장은 대선 승리 기대감으로 내내 가득찼다. 트럼프의,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를 위한 전당대회였다. 트럼프는 여세를 몰아 대선 레이스에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진퇴양난의 민주당
암살미수 사건이 전화위복이 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승기를 잡았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민주당은 비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까지 트럼프를 '유죄 평결을 받은 중범죄자'라고 공격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자 도덕적으로 부적합한 후보라는 점을 부각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경쟁자를 거칠게 몰아붙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더 이상 네거티브 공세를 이어가기가 어렵게 됐다. 민주당과 바이든 캠프는 선거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일단 바이든 캠프는 내실에 만전을 기하면서 이탈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통합을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러한 '로키' 모드를 유지하느냐이다.
대선 후보 교체론 불씨도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그동안 바이든 편에 서서 대선 완주 입장을 지지해왔던 민주당 지도부까지 후보 사퇴론에 가세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하는 편이 국가와 민주당을 위해 더 공헌하는 것"이라며 연임 도전을 끝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공화당 전당대회 후 여론조사 등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후보 교체론은 한층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바이든은 버티고 있다. 게다가 바이든을 대체할 만한 마땅한 인물도 없다. 여러가지 이유로 민주당은 진퇴양난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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