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순직 1년…'권력형 게이트'로 번진 3가지 장면
초동조사 박정훈 대령 '항명죄' 피소…수사 외압 의혹 분기점
이종섭 전 국방장관, 호주대사 임명 25일 만에 사임 논란
한동훈發 '채상병 특검 대안'…여권 내부 균열 조짐도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왜 호주대사로 임명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국민의힘 관계자)
"초기엔 권력형 게이트가 아니었는데, 대통령실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이 커졌다. 무리한 수색 지시로 인해 한 장병이 억울하게 죽은 사건이지만 그냥 묻힐 뻔 했다. 역설적으로 자충수를 둔 윤 대통령에게 감사라도 해야 하나"(해병대 예비역 관계자)
지난해 7월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 도중 해병대 고(故) 채수근 상병(당시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후 1년이 지났지만, 진상 규명은커녕 사건은 '권력형 게이트'급으로 번진 상태다. 국방부와 경찰을 넘어 대통령실까지 얽힌 '채상병 순직'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관계자들은 주요 국면마다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채상병 순직 사건은 당초 '권력형 게이트'가 아니었다. 사건은 지난해 7월 경북 문경‧예천 지역에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서 실종자 수색을 위해 군 부대가 동원되면서 시작됐다. 대민 지원을 위해 채상병이 속한 해병 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 역시 주둔지인 포항에서 경북 예천으로 이동했다.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채상병을 포함한 5명의 장병이 급류에 휩쓸렸고, 나머지 4명을 제외한 채상병만 순직했다. 이후 다음의 세 장면으로 인해 '사건'은 '사태'로 비화한다.
'VIP 격노' 논란…초동조사 맡은 박정훈 대령, '항명죄'로 재판행
지난해 7월 19일 채상병 순직 직후, '군사법원법'에 따라 초동조사가 시작됐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성범죄, 군인 사망사고, 입대 전 범죄 등 3대 범죄에 대해선 처음부터 민간 수사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다만 개별 사건이 3대 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군 수사기관이 초동조사를 실시하는데, 채상병 순직 관련 초동조사 담당자가 바로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다.
순직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군 간부들과 생존 장병, 민간인 목격자 등 진술과 SNS 기록 등을 바탕으로 초동조사를 완료한 박 대령은 상부의 무리한 수색 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해 총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적시한 것이다. 지난해 7월 30일 박 대령은 이 전 장관을 포함한 상부 보고 절차 후 승인을 받았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8월 2일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하기로 사실상 허락을 받은 셈이다. 바로 다음날인 31일 이 전 장관이 오전 11시 54분쯤 02-800-7070(용산 대통령실)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 수사결과 브리핑 취소 등 전면 태도를 바꾸면서 이른바 '수사 외압' 의혹이 시작된다.
이 전 장관이 전화를 받은 당일인 31일 오전에는 윤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렸다. 같은날 오후 박 대령은 직속 상관인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이른바 'VIP 격노설'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냐'는 발언을 했다는 게 골자다. 이 전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에도 불구하고, 원칙대로 8월 2일 경북경찰청으로 채상병 사건을 이첩한 박 대령은 '항명죄'로 기소되면서 지금도 군사법원 재판을 받고 있다.
총선 한 달 앞두고 호주로?…이종섭 도피 의혹 논란
채상병 순직 사건이 한창 이목을 끌었던 지난해 여름 이후 박 대령은 간신히 구속 위기를 넘기며 재판을 받고 있었지만, 여론의 관심은 예전만큼 높지 않았다. 다소 잠잠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재차 불을 지핀 결정적인 사건이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발생했다. 지난 3월 4일 윤 대통령이 채상병 순직 사건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것이다.
이 전 장관은 임명된 직후 신속하게 움직였다. 임명 사흘 후인 3월 7일에 공수처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10일 호주로 출국했다. 그러나 도피성 임명 논란이 커지면서 출국 11일 만에 귀국 후 29일에 대사직을 내려놓게 된다. 임기를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한 이 전 장관은 당시 이첩 보류 지시 이유에 대해 "의문점을 더 확인하고, 법무관리관실 의견도 듣고 싶었다"고 주장했지만, 지난달 21일 국회 법사위 입법 청문회에선 수차례 '말을 바꾼'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이 전 장관은 지난해 사건 당시 윤 대통령과의 통화는 없었다고 했지만, 8월 2일 당일에만 3차례 통화한 사실이 통신 기록 조회를 통해 드러났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해당 통화는 채상병 사건과 무관한 '다른 사안'을 논의한 것이라는 궁색한 답변을 내놨다. 지난해 여름 국방위 여당 간사였던 신원식 현 국방부 장관은 사건 개입을 우려해 8월 1일부터 11일까지 이 전 장관과 통화를 하지 않았다고 국회에서 질의했고, 이 전 장관 역시 이에 맞장구를 쳤다. 이 역시 조회 결과는 달랐다. 해당 기간 동안 두 사람은 13차례나 통화한 사실이 공개된 상태다.
한동훈發 '채상병 특검'에 與 균열 조짐…'8표' 이탈 가능성 주목
총선 이후 공수처는 '늦었지만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김 사령관 등 사건의 핵심 당사자들을 소환 조사했고,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증거들이 조금씩 흘러 나왔다. '채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 여론이 높아지자,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공수처와 경찰의 수사가 부실하다면 내가 먼저 특검을 하자고 주장할 것"이라고 방어막을 쳤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에 이어 최근엔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특검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채상병 순직 사건이 예상과 달리 일파만파 커지자 여권 내부에서도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오는 23일 당 대표 선출을 앞둔 가운데 유력 주자이자 검찰 시절부터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한동훈 후보가 '제3의 채상병 특검안'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특별검사를 대법원장 등 제3자가 추천하는 방식으로 수정한다면 자신이 법안 통과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한 후보를 제외한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등 나머지 후보들은 "특검 수용은 곧 대통령 탄핵이나 마찬가지"라며 한 후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한 후보는 자신이 제안한 방식으로 인해 "판이 바뀌었다"며 민주당의 특검 공세에 맞서 다른 후보들이 전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범야권이 192석인 점을 감안하면 여권에서 8석 이상 이탈표가 발생할 경우 윤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력화된다. 한동훈발(發) 제3특검 제안으로 '권력형 게이트'를 둘러싼 내부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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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정주 기자 sagamor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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