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민중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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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시대별로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속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국왕 루이 15세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다미앵의 처형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는데, 1757년 3월2일, 다미앵은 광장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잔인하게 고문당한 뒤, 네 마리 말이 사지를 잡아끌어 찢어내는 형벌을 당했다.
그러나 18세기까지 존재했던 공개처형 제도는 불과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비공개 형벌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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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3
이이화 지음 l 교유서가(2020)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시대별로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속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국왕 루이 15세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다미앵의 처형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는데, 1757년 3월2일, 다미앵은 광장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잔인하게 고문당한 뒤, 네 마리 말이 사지를 잡아끌어 찢어내는 형벌을 당했다. 그의 시신은 불태워져 한 줌 재마저 바람에 날려버렸다. 그러나 18세기까지 존재했던 공개처형 제도는 불과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비공개 형벌로 전환되었다. 근대 이전의 잔인한 공개처형은 권력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고 피통치자들을 복종하는 신체로 만들려는 ‘볼거리(스펙터클)’였다.
푸코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공개처형이 점차 사라지게 된 까닭은 유럽의 인권의식이 신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형태가 변화한 결과였다. 근대 이후 권력은 미디어를 통해 ‘공익’ 혹은 ‘국가의 안녕질서’라는 이름의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국민 스스로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초기에는 낯설고 추상적인 문제지만, 시간이 흘러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면서 권력과 법률은 개인의 심상과 신체를 지배하는 질서로 내면화되었다. 조선시대 초중기의 가장 대중적 출판물이었던 ‘소학’과 ‘삼강행실도’는 성리학을 지배이데올로기로 내면화시켰고, 사람들은 1895년 12월30일, 단행된 단발령에 저항했다.
19세기 서구 유럽은 산업혁명과 민주주의가 제도적·이념적으로 완성되어 갔지만, 한반도의 19세기는 1800년 정조의 급서 이후 세도정치와 민란의 시대였다. 홍경래의 난(1811), 잇따르는 모반사건(1836·1844), 진주농민봉기·임술농민봉기(1862) 등 잦은 민란은 지난 500년간 조선을 지탱해온 성리학적 질서와 봉건체제의 모순이 더는 지탱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지만, 조선은 쉽사리 변화하지 못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밀려든 외국자본과 상품의 물결은 근대 자본주의 상품경제의 싹이 미처 움트기 전이었던 조선을 이중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1894년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호남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동학농민봉기는 참가인원과 규모, 격렬함에서, 또한 그것이 담고 있는 역사성으로 보더라도 우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민중봉기였다. 비록 10개월 만에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동학농민운동은 갑오개혁과 청일전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장기적으로는 항일운동과 혁명운동의 정신적 원천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을 대표하는 양대 지도자였던 전봉준과 김개남은 운명처럼 12월2일 한날에 잡혔지만, 죽음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김개남은 붙잡힌 직후 곧바로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참수한 뒤, 배를 갈라 간을 꺼내자 원수진 양반의 자식들이 몰려와 그의 살을 씹었다. 그러나 전봉준은 서울로 압송되어 정식 재판을 받았다. 동학혁명의 여파로 시행된 갑오개혁의 결과, 1895년 4월19일 재판소구성법이 공포되었기 때문이다. 전봉준은 그 4일 뒤 법무아문 권설재판소에서 열린 재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근대적 사법제도가 시행된 후 내려진 첫 번째 사형선고였다. 전봉준은 혁명동지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과 함께 사형언도를 받은 바로 다음날인 1895년 4월24일 새벽 2시에 남몰래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처럼 즉각 사형이 시행된 까닭은 다음날부터 시행될 재판소구성법에 따르면 단심제 대신 2심제를 시행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4월25일을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것을 기념해 ‘법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오늘날 이 국가기념일이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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