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부터 김대중까지 한국 사상의 거인들을 불러내다 [책&생각]
정도전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 기획, 이익주 편저 l 창비 l 2만1000원
‘창비’가 창사 60돌을 맞는 2026년 완간을 목표로 하여 ‘창비 한국사상선’(전 30권)을 기획하고 1차분 10종을 펴냈다. 한류의 확산으로 한국 문화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K-사상’의 세계화 가능성이 점쳐지는 시점에 ‘한국사상’을 대표하는 사상의 거장들을 불러내고 되새기겠다는 기획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에는 백낙청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과 임형택(성균관대 명예교수), 최원식(인하대 명예교수), 백영서(연세대 명예교수), 박맹수(원광대 명예교수), 이봉규(인하대 교수), 황정아(한림대 교수), 백민정(가톨릭대 교수), 강경석(‘창작과비평’ 편집위원), 강영규(창비 편집부장) 위원이 참여한다.
‘창비 한국사상선’은 기획의 독특함과 새로움으로 기존의 한국 사상 선집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생태 위기를 포함한 전 지구적 위기의 도래로 문명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에 그 대전환에 보편적 사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한국의 걸출한 사상가를 부각하는 데 힘을 주었다. 또 그동안 좁은 의미의 학자에 국한됐던 사상가의 울타리를 크게 넓혀 군주·여성·문인·정치인·종교인을 포함하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격동의 시대를 헤쳐나간 근현대 사상가들을 소개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기획 취지에 따라 ‘정도전부터 김대중까지’ 한반도를 흔들어 깨운 사상의 거인 59명의 주요 저술을 망라했다. 권마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편저자로 들어와 수록 인물의 저작을 선별하고 서문에 그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해설함으로써 각 사상가의 핵심 사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선집 출간 방식도 눈에 띈다. 선집 전체를 ‘전기편’과 ‘후기편’으로 나누어, 전기편(15권)에서는 19세기 이전의 사상가를 포괄하고, 후기편(15권)에서는 주로 20세기 사상가들을 배치했다. 또 매해 발행할 때마다 전기편과 후기편에 각각 5종씩 할애해 20세기 사상가들이 뒤로 밀리지 않도록 했다. 이런 출간 방식에 따라 이번에 나온 1차분 10권에는 전기편으로 ‘정도전’(1권), ‘세종·정조’(2권), ‘김시습·서경덕’(3권), ‘함허 기화·청허 휴정·경허 성우’(4권), ‘이황’(5권), 그리고 후기편으로 ‘최제우·최시형·강일순’(16권), ‘김옥균·유길준·주시경’(17권), ‘박은식·신규식’(18권), ‘안창호’(19권), ‘박중빈·송규’(20권)가 포함됐다.
‘한국사상선’이 조선 건국 이후의 사상을 대상으로 함에 따라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정도전이 됐다. ‘정도전: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는 사상선의 첫 자리에 놓이는 데 부족함이 없는 사상 내용을 갖추고 있다. 정도전은 맹자의 혁명사상과 성리학의 민본사상을 틀어쥐고 조선을 개국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정치사상가였다. 기존의 토지제도를 혁파해 모든 토지를 국유화한 뒤 평등하게 나누는 급진적 토지개혁을 주창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조선경국전’은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며 백성을 위해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민본과 위민의 정신에 투철한 정치사상가 정도전의 면모를 확인시켜준다. ‘조선경국전’ 첫머리에서 정도전은 이렇게 말한다.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협박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꾀로 속일 수 없다. 그 마음을 얻으면 (백성이 임금에게) 복종하고 그 마음을 얻지 못하면 임금을 버리는데, 버리는 것과 따르는 것 사이에는 털끝만큼의 차이밖에 없다.” 정도전은 왕이 임명한 총재(일인 재상)가 중심이 돼 국정을 운영하는 새로운 정치 설계도를 그렸다. 정도전의 설계는 이방원의 정변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왕권을 제도적으로 제약한다는 정도전의 새로운 사상은 조선 시대 내내 국정운영의 좌표가 됐다고 편저자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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