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손목이, 발목이 잘렸다…잘려나간 과거를 부르는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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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내내 궁금하게 한 소설이다.
손가락이 부러 구부려져 어떤 의미를 전한다는 것-세종로 일대의 보수 언론사들을 가리킬 여지 등-이, 이어 잘린 게 아니라 스스로 잘라냈을 가능성이, 이어 남자의 손목이란 사실, 급기야 직접 손목을 자른 남자는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케이는 한창일 때 선배들과 아예 사건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주력한 전력이 있고, 소설 역시 '왜'에서 노골적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복수하느냐로 귀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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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콰마린
백가흠 지음 l 은행나무 l 1만7000원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
백가흠 지음 l 난다 l 1만6000원
결말을 내내 궁금하게 한 소설이다. 설정, 전개가 차츰 예상 가능해지면서도 결미만은 허락지 않았다. 그렇게 완독해버린 작품은, 소설가 백가흠(50)이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 ‘아콰마린’이다.
서울 청계천에서 잘린 손이 발견된다. 강력반은 관심 없는 미제 사건만 떠맡는 이른바 미담반(미스터리사건 전담반)에 사건은 이첩된다. 손톱엔 아콰마린 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남은 몸통을 좇던 미담반에게 하나둘 진상이 드러난다. 손가락이 부러 구부려져 어떤 의미를 전한다는 것-세종로 일대의 보수 언론사들을 가리킬 여지 등-이, 이어 잘린 게 아니라 스스로 잘라냈을 가능성이, 이어 남자의 손목이란 사실, 급기야 직접 손목을 자른 남자는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이윽고 대구 수성못에서 잘린 발 두 개가 발견된다.
소설은 백 작가의 작품 목록에선 볼 수 없던 형사 추리물이다. 범죄 행각을 둘러싼 ‘어떻게’로 독자를 붙들되 종국에 ‘왜’를 각인하려는 소설의 취지가 선연하다. 이는 미담반 반장 케이가 깨달았다는바, “범죄나 사건의 ‘왜’에 대한 질문을 생략하고 ‘어떻게’에 대해서만 일방적인 편견으로 수사”한 경우 범인을 잡아도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는다는 작중 본색을 소설의 형색으로 대입한 것이다.
여기엔 함정이 숨어 있다. 케이는 한창일 때 선배들과 아예 사건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주력한 전력이 있고, 소설 역시 ‘왜’에서 노골적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복수하느냐로 귀착하기 때문이다. ‘왜’는 우리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다.
중반 접어들며 조작 간첩·살인자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진영으로 소설은 빠르게 양분된다. 80~90년대와 지금이 교차하며, 일부 재심 무죄 판결로도 사건은 숫제 ‘미스터리’로 피해자들에게 떠넘겨 있음을 인물들은 웅변한다. “빨갱이들 때려잡을 때가 좋았”다며 청장 진급을 노리는 경찰, “목표나 목적은 찾는 게 아니야. 만드는 거지”라 말하는 공안검사 출신 전 국회의원, 그리고 만수하여 평온히 임종을 맞으려는 아흔여섯 전 대통령의 현재는 “복수라는 종교”의 계명을 타당하게 한다. 에염으로 삶을 겨우 버텨온 ‘복수 대오’는 마침내 자신들만의 ‘사건 종결’을 도모한다.
소설은 몇 가지 의문점을 남긴다. 피해 과거사가 드러나지 않은 주요 인물들이 존재한다. 최초 손목을 자른 정 목사의 사연도 명확지 않다. 악랄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보계 출신 정 형사의 회개나 그에 대한 복수도 전개되지 않는다. 의도가 뭐든, 이것이야말로 미제이자 미완의 과거사 가득한 현실을 은유한달까. 피해자들은 그렇게 ‘당신들’ 주변에서 계속 서성대고 있다, 묻고 있다. “저 기억나셨어요?”
탐정 추리물은 없지만, 백가흠에게 ‘국가 폭력’은 주요 주제(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 등)였다. 오송회 사건(1982)과 당시 피해자 이광웅 시인의 시집 ‘목숨을 걸고’가 계기가 되었다고, 그래서 “문학은 그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한 복수에서 출발한다”고 제 문학적 도정을 회고하고, 서평도 엮은 산문집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도 이번에 나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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