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 열쇠는? 스마트농업 늘려 기상리스크 대비…경영 안전망 보완도
이상기후 탓 병해충 피해 확산
농산물 생산성·품질 저하 우려
날씨환경 제어 농법 세계적 관심
농가 데이터수집·분석 비중 낮고
정보교환 소극적 해법창출 한계
농업재해보상·농작물보험 중요
현실에 맞게 대대적인 개편 절실
기후 변동 적응·탄소 중립 중심
재배기술 개발 등 지속노력 필요
농부의 삶은 하늘을 바라보고 땅에 의지하며 자연의 흐름을 따른다. 농업은 자연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기후변화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로 농업이 피해를 봤다는 소식은 빈번하게 들려오며 농산물 수급 불안은 일상화됐다. 지난해에는 여름철 집중호우에 이어 병충해가 확산하면서 사과 생산량이 급감해 전국이 떠들썩했다. 올해에도 7∼10일 내린 집중호우로 1만㏊가 넘는 면적에서 농작물이 침수돼 농가의 근심이 가득한 상황이다. 장기적으로 살펴봐도 폭염일수나 1시간당 강수량이 30㎜ 이상인 날이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농가에 큰 도전으로 다가오며 농업분야에 새로운 대책을 요구하게 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기후변화로 야기되는 후생 감소를 무역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농산물 재배지 변경이 세계적으로 발생해 농산물 총량이 크게 변하지 않고 무역이 자유롭게 이뤄진다면 후생 감소를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상기후 심화 등으로 공급망이 경색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농업강국 중 하나인 미국에서조차 위기의식을 느끼고 5년마다 제정되는 ‘농업법(Farm Bill)’ 이름에 ‘국가안보’를 명시했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농산물 공급 변동성을 유발하는 국제적 요인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있다.
동시에 각국은 변동성을 심화하는 또 다른 요인인 기상 환경을 제어하기 위해 스마트농업을 장려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스마트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올해 7월 시행했다. 이 법에서는 스마트농업을 생산성·품질 향상과 경영·노동비 절감을 위해 정보통신기술(ICT) 등의 첨단 기술을 접목한 농업으로 정의한다. 우리나라는 농민 고령화가 심각하고 후계 영농인이 부족해 스마트농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스마트농업의 기본 요건은 데이터다. 고도의 데이터가 기반이 돼야만 농가 의사결정 지원 솔루션(수요자 맞춤형 소프트웨어)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아울러 개방경제 사회에서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도 데이터의 구축·활용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농가는 농업분야 데이터를 생산하는 주체 가운데 하나지만 데이터를 실제로 활용하는 농가의 비중은 높지 않은 편이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진행한 ‘2022년 스마트농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지채소농가에서 ICT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비중이 각각 23.5%, 9.9%에 불과해 모든 농가 가운데 가장 낮았다.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농가가 가장 많은 축산농가도 비율이 61.8%, 38.4%에 그쳤다.
데이터 수집·분석도 쉽지 않지만 데이터 교환으로 더 큰 정보를 창출하는 시장 형성은 더 어려워 보인다. 데이터 거래소를 활용할 의향이 있느냐는 설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농가의 비중이 30.2%로 나타났다. 농가별 데이터가 축적돼야만 이를 활용해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데이터 공유에 심리적 장벽이 있다. 향후 농가의 심리적 장벽을 해소하면서 솔루션 개발 기업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스마트농업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연을 완전히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농업재해보상이나 농작물재해보험이 중요한 안전망이 된다. 농업재해보상은 재해에 따라 농약대·대파대·입식비·시설비 등의 일부를 보조·융자하는 방식이다. 보상 금액이 적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농업재해보상이 농가 경영의 위험 관리를 위한 실질적인 수단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보상액을 농가 단위 재난지수로 산정해 농가 입장에서 이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농업재해보상과 달리 가입자만 가입금액의 60∼90%를 보장받는다. 2001년 처음 시행한 이후 꾸준히 보장 품목 등이 확대됐지만 품목별 가입률 편차가 크고 평균 가입률이 50% 수준에 머무른다는 점이 계속해서 지적된다. 농업재해는 보통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피해 규모가 커 보험사가 단기간에 많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위험도 있다. 다른 보험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문제도 있다.
이에 농작물재해보험은 보험사의 참여 유인이 적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험사의 참여 유인만 적은 것이 아니다. 농가 참여 유인도 줄어든다. 농작물재해보험은 최근 5년간 평균 수확량을 평년 수확량으로 산정하는데 이 기간에 이상기후가 발생해 수확량이 줄었다면 보장받는 범위도 줄어든다. 더불어 농가 입장에서는 보험사의 손해 평가나 할증 방식에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자신의 위험 수준에 객관적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마주하게 된다. 보상 과정에서 각 이해관계자는 본인 입장에서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나름의 주장을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실증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일종의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깨기 위해선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이터가 요구된다.
이는 시대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객관적 증거로 정책을 설계하는 ‘증거 기반 정책’은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또한 데이터의 수집·분석이 용이해지며 수요자 맞춤형 정책 설계가 가능해진 점도 증거 기반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한다. 농업재해보상이나 농작물재해보험도 농가별 투입·생산·소득 등의 객관적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최근 다방면에서 농가 경영의 데이터를 구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스마트농업 분야의 데이터 수집·활용과 연계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기후변화 위기 관리를 위해 경영데이터와 함께 스마트농업 데이터의 수집·분석도 확대해야 한다.
이상기후 등 단기적인 기후 변동에 대응하면서 평균 기온의 상승과 같은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기후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감당할 수 없는 변화를 미래 세대의 몫이라고 판단하며 장기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한다. 그러나 소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 부르는 특이점을 넘어서면 지구 스스로 열을 올리는 시스템이 완성돼 인간이 손쓸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다. 이 때문에 농업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탄소중립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탄소중립을 이행하면서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품목 전환, 품종·재배기술 개발 등의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조현경 농협경제연구소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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