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생고기는 ‘쫀득’ 막창은 ‘야들’…오묘한 맛 ‘말’해 뭐해~

김보경 기자 2024. 7.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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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밥상] (57) 제주 ‘말고기 회와 검은지름’
저지방 고단백…지역 대표 보양식
회처럼 썰어먹으면 깔끔한 맛 일품
내장은 수육·탕으로 고소함 즐겨
누린내 없고 부드러운 구이도 담백
제주 보양식인 돌판 위에 구운 말고기(시계 방향으로), 두툼하게 썬 ‘말고기 회’, 말 막창인 ‘검은지름’. ‘말은 간과 검은지름을 먹으려고 잡는다’는 제주 속담이 있을 정도로 으뜸가는 별미다. 제주=이종수 기자

‘말궤기론 떼 살아도 쉐궤기론 떼 못 산다.’

말고기는 끼니가 되고, 쇠고기는 끼니가 못된다는 제주 속담이다. 그만큼 말고기는 영양이 풍부해 더위에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울 제주 대표 보양식으로 손꼽힌다. 제주에선 신선한 말고기를 생으로 썰어 회로 즐기거나 내장을 삶은 검은지름으로 먹는다.

제주에서 말고기를 먹기 시작한 건 고려 충렬왕 때 몽골식 목장이 설치되면서다. 조선시대엔 제주 진상품으로 말고기 포를 떠서 말린 ‘건마육’을 임금에게 올렸고, 실제로 연산군은 보양식으로 흰말고기 육회를 즐겼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말고기의 70% 이상이 제주산이며 건초와 사료를 먹고 자란 비육마(고기용 말)다. 일각에선 불법 도축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제주도는 말고기산업 전담팀을 꾸려 경주 퇴역마 사용을 자제하고 전문적으로 비육한 제주마를 소비하기 위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말고기는 저지방·고단백 식품이다. 특히 말고기엔 불포화지방산인 팔미톨레산 성분이 소(2.6%)와 돼지(2.8%)보다 3배 이상 많다. 이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당 관리에 도움을 준다. 또한 글리코겐과 칼슘·철 성분이 풍부해 골다공증 등을 예방하는 데도 좋다. 말기름은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돼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 조선시대 의학서적 ‘동의보감’에 따르면 말고기는 신경통과 관절염·빈혈뿐 아니라 척추질환 치료에도 효험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말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익히지 않고 회로 먹는 것이다. 워낙 신선해 별다른 양념이나 조리 없이도 식감과 향이 뛰어나다. 말고기 맛을 좀 안다는 제주 사람은 검은지름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검은지름은 말의 막창을 말하는데 ‘지름’은 ‘기름’을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 말기름이 가득한 검은지름은 껍질의 쫄깃함과 기름의 고소함을 배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별미다. 제주 토박이인 이기철씨(68)는 검은지름은 말을 잡는 날에나 구경할 수 있는 귀한 부위라고 한다.

“검은지름을 맛보는 건 쉽지 않습니다. 말 1마리당 1m 정도밖에 안 나오거든요. 내장 안엔 말기름이 꽉 차 있는데 옛날에 화상을 입으면 그 위에 기름을 발라 치료하기도 했어요.”

말의 고장답게 제주엔 말고기 전문점이 많다. 제주에 방문한 관광객들은 주로 말고기 육회·구이·찜·탕·샤부샤부가 차례로 나오는 코스 메뉴를 즐긴다. 12일 제주시청 근처에서 20년 넘게 신선한 말고기를 선보이는 식당 ‘한라산 조랑말’을 찾았다. 사장인 김순심씨(59)는 “매주 목요일 남편이 운영하는 목장에서 말을 들여온다”며 “고기 단면이 진홍빛인 36∼84개월의 비육마를 1년에 평균 70마리 정도 잡는다”고 말했다. 말이 들어오는 날엔 이른 저녁부터 동네 주민들이 찾아와 식당 자리를 금세 채운다. 말고기는 제주 안에서도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란다.

“제주도민들 가운데서도 젊은 세대는 말고기를 한번도 안 먹어본 사람이 있을 거예요. 어른들이 저녁에 말고기 회에 소주 한잔하거나 검은지름을 수육이나 탕으로 베지근하게 끓여 먹죠. 초밥, 양념 육회, 샤부샤부처럼 말고기를 좀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개발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젊은 친구들도 종종 찾아옵니다.”

이날 제주도민처럼 말고기를 맛봤다. 가장 먼저 나온 건 말 회다. 진한 자주색을 띠는 생고기가 도톰하게 썰려 있다. 참치회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생김새가 비슷하다. 말 회는 기름장에 찍어 먹거나 고추냉이를 얹어 먹는다. 기름장을 콕 찍어 입안에 넣으면 혀에 닿자마자 극강의 쫀득함이 느껴진다. 입에 넣고 살살 씹으니 생고기의 감칠맛이 감돌며 기름기가 없어 뒷맛이 깔끔하다.

이어서 검은지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대처럼 기다란 내장이 뽀얗게 삶아 나온다. 내장 안에 말기름이 가득 차 있다. 말기름은 40℃ 이상에서 녹는 소기름과 달리 14℃의 낮은 융점을 가져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쿰쿰한 내장 냄새는 전혀 없이 야들야들한 식감과 기름의 풍미만 남는다. 양파와 고추로 만든 장아찌를 곁들이면 느끼함 없이 먹을 수 있다. 말고기 구이도 인상적이다. 쇠고기와 달리 마블링이 없어 고기를 굽기 전에 말기름을 돌판에 두른다. 그 위에 튀기듯 말고기를 구워내면 된다. 식감은 잘 구운 쇠고기 안심보다도 부드럽고 누린내가 없어 담백하다.

여름 휴가철 제주에 갈 계획이 있다면 이색 보양식 말고기로 여행을 마무리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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