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으러 갔다가 눈 호강까지

김민 기자 2024. 7.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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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에도 진심인 갤러리스트
갤러리현대의 ‘두가헌’ 저염 한식… ‘에밀리오’는 이탈리아식 밀고나가
국제갤러리의 ‘카페@더 레스토랑’… 한식-일식-양식 메뉴 다양성 갖춰

1910년대 만든 한옥을 개조한 레스토랑(위쪽 사진) 두가헌과 전복구이. 갤러리현대 제공
오래된 한옥 건물 지하를 와인 저장고로 개조하고, 일본인 셰프를 모셔 와 한국에 정착하게 만드는가 하면,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셰프가 운영하던 레스토랑도 인수한다. 보고 느끼는 예술 작품뿐 아니라 맛과 감각으로 무장한 ‘미식’에도 신경 쓰는 갤러리스트들 이야기다. 이들은 갤러리 내외부에서 레스토랑과 카페를 직접 운영한다.
칠레 출신 작가 이반 나바로의 작품이 걸린 에밀리오(위쪽 사진)와 버섯 크림 파케리. 갤러리현대 제공
● 1·2대의 다른 취향, 두가헌과 에밀리오

갤러리현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 옆 두가헌과 강남구 청담동 에밀리오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두가헌은 1910년대 만들어진 한옥을 개조해 2004년 문을 연 곳으로 지하 공간에는 300여 종의 와인 3000여 병이 보관돼 있다. 도형태 부회장은 “처음 아버지와 이 한옥을 발견했을 때 지하는 와인 셀러로 완벽하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청전 이상범의 수묵화와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이 걸려 있는 두가헌은 파스타, 스테이크 등 코스 메뉴를 판매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것이 특징이다. 오래전부터 갤러리현대를 찾은 전통적 컬렉터, 원로 작가 취향에 맞춰 대부분 요리를 저염으로 부드럽게 조리한다. 대표 메뉴는 한우 스테이크와 전복구이다.

이에 반해 도 부회장이 올해 초 인수한 에밀리오는 이탈리아식으로 더 과감히 밀고 나간다. 시칠리아 셰프가 운영하던 메뉴를 살려 버섯 크림에 비벼 먹는 파케리 파스타, 카포나타, 아란치니, 포카치아,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시칠리아 스타일 애피타이저, 양갈비구이가 대표 메뉴다. 레스토랑 내에는 이반 나바로의 발광다이오드(LED) 작품, 라이언 갠더의 풍선 설치 작품 등 국내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양혜규 작품이 벽에 설치된 더 레스토랑(위쪽 사진)과 애플 포타주.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 “한식 양식 일식 중에 골라”, 국제갤러리 카페

국제갤러리는 삼청동 K1 건물 1, 2층에 각각 ‘카페@더 레스토랑’과 ‘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애플 포타주’를 비롯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더 레스토랑에는 양혜규의 벽지 작업이 설치돼 있다. 카페 벽면에는 김영나, 냅킨에는 홍승혜의 디자인 문양이 그려져 있는 등 갤러리 전속 작가들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다. 메뉴는 일본 도쿄 럭셔리 호텔과 현지 대형 외식 그룹 총괄 셰프를 지낸 아베 고이치가 1999년부터 총괄 담당하고 있다.

독특한 것은 카페 메뉴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다’는 듯 연어 스테이크, 해장 짬뽕, 매운 해산물 떡볶이와 사누키 우동 등 한식 일식 양식이 공존한다. 초기에는 파스타, 샌드위치, 샐러드 위주의 종이 1장짜리였던 메뉴판이 지금은 얇은 책 한 권이 됐다.

여기에는 2세 경영자인 김찰스창한 사장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갤러리 레스토랑은 전시 관람의 경험이 미식으로도 이어지는 곳”이라며 “이런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대중적인 메뉴도 함께 준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해장 짬뽕은 아베 셰프가 가끔 갤러리 직원들과 나눠 먹던 음식이 김 사장의 추천으로 정식 메뉴가 됐다.

이 관계자는 “김 사장이 지금은 갤러리 운영 전반에 참여하지만 처음에는 레스토랑, 카페를 경영했다”며 “지금도 새로운 메뉴 개발은 물론이고 테이스팅까지 관여한다”고 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과 연계해 갤러리들이 야간에 문을 연 ‘삼청 나잇’ 행사 때도 VIP뿐 아니라 일반인에게 개방한 데는 김 사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 미술인들, 미식에도 진심

국제갤러리의 더 레스토랑이 처음 문을 연 1999년에는 ‘갤러리에서 무슨 식당이냐’며 비판을 받았다. 당시 이현숙 회장은 갤러리 비즈니스에 식사와 미팅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임에도 과감하게 레스토랑 오픈을 결정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시 관람 문화가 확산되면서 미술관에서도 식음료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주목받는다.

전시를 관람하는 큐레이터, 작가 등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전시와 함께 인근 맛집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우뚜기(@oottoogi)가 인기다. 6만7000명이 팔로하는 이 계정을 운영하는 A 씨는 “비엔날레와 대형 전시처럼 실제로 많이 움직이며 보는 전시도 있고, 작은 전시라도 보는 데 마음과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며 “그러면 허기가 지기에 자연스레 먹을 만한 곳을 찾게 된다”고 했다.

호암미술관은 불교 미술 기획전이 열리는 3월부터 6월까지 태극당과 협업해 팝업 카페를 열었다. 팝업 카페를 기획한 이정진 삼성문화재단 대외협력실장은 “고미술 전시에 맞춰 나름의 역사와 창의적인 정체성을 갖춘 곳을 중심으로 물색했고 ‘극락 라떼’ ‘연꽃 에이드’ 등 한정 메뉴 반응이 좋았다”며 “전시 관람객의 30%가 카페를 함께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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