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지구가 평평하다?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었던 때가 있다. 과학의 발달로 지금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기초적인 상식에 해당한다. 하지만 99%의 인류는 둥근 지구를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것도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이 있다. 위성사진이나 과학적 관측의 증거가 있더라도 그것은 조작과 날조라는 음모론으로 일축한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 같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은 사뭇 진지하다. 우리가 상식의 범주에서 이해하거나 믿고 확신하는 것들이 있지만 대부분 사건은 상식의 허점 내지는 애매한 부분을 파고들어 비상식을 주장하면서 일어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판단하고 처리할 때 가지는 확신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곧잘 일어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납득되지 않는 갈등도 많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혹은 이념적으로 한쪽 진영에서는 당연히 그러해야 할 것 같은 일도 반대 측에선 전혀 엉뚱하게 접근하는 경우도 많다.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 사람은 그것을 당연시하지만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을 만난다면 엄청 놀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며 의아해 할 것이다. 여기서 무엇이 맞다, 아니다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인류가 살아가는 스펙트럼은 몹시 넓다. 상식, 비상식 가릴 것 없이 말이다. 도덕경에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는 구절이 있다. 있음과 없음이 같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없는 상태가 동시에 생길 수밖에 없다. 즐거운 일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면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듯이. 즐거움이 있기에 고통도 있고 고통이 있다면 그것의 소멸로 오는 행복 또한 따라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이것을 이것이라 한다면 99% 동의하더라도 1%의 사람이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저 사람은 착하다고 선언한다면 어느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증거까지 가져와서 부정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진행할 때 항상 반대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사고작용이다. 청춘의 실수엔 자잘한 것이 많지만 중장년이 큰 실수를 하는 것은 오랜 경험에서 오는 확신에서 기인한 것이 대다수다. 그렇다고 모든 확신이 항상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금강경에는 '최상의 깨달음은 그 무엇도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정하거나 단정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 된다. 대체로 삶에 원칙이 있고 무엇을 하건 정해놓은 법이 있다. 정해놓은 방법으로 정해놓은 과정으로 정해놓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상황을 맞으면 화를 내기도 하며 불평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그것이 어른의 몫이라고 당연시한다.
송광사에서 행자 생활을 할 때다. 절에선 천도재나 제사가 자주 있기에 행자들이 과일도 제기에 쌓아올려야 한다. 과일의 종류도 많아서 당시 원주 스님께 "과일을 어떤 순서로 어떤 방위로 올려야 합니까" 여쭈니 원주 스님은 전혀 예상 밖의 말씀을 하셨다. "그냥 보기 좋게 올리면 됩니다"라고 답하셨다. 당시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오랜 유교 전통이 아직 일부엔 살아 있다. 특히 제례문화는 대체로 정해놓은 법도가 있다. 하지만 불교에선 그 무엇도 집착하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그런 속에 유연하고 적절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무림의 최고 고수들은 무술의 형과 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야말로 자유자재다. 강호에서 살아가다 보면 가끔 그런 고수들을 만난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숟가락으로 귀를 팔 수도 있고 젓가락으로 전봇대를 세우기도 한다. 또 그들은 둥근 지구에서 평평한 땅 위를 굴러다닌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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