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커플도 사실혼 배우자처럼 건보 혜택 준다

방극렬 기자 2024. 7. 1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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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회보장 법적 권리
동성 커플에게 첫 인정

동성(同性) 커플의 상대방을 사실상 부부처럼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민법상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동성 커플이 국내 사회보장제도의 법적 권리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이성(異性) 간 사실혼 관계에서 보장돼 온 국민연금과 산재 보상 청구권 등 여러 권리가 동성 관계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8일 소성욱(33)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 배우자인 김용민(34)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가 취소된 것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2019년 결혼식을 올린 소씨 커플이 이듬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소씨를 등록하려고 신청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김씨는 건보공단에 동성 부부라는 사실을 밝히며 피부양자 자격 취득이 가능한지 문의했고, 건보공단은 “가능하다”며 소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해줬다.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대상은 ‘배우자’로만 돼 있다. ‘사실혼 관계의 상대방’이나 ‘동성 동반자’ 등을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규정은 없는 상태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내부 지침에 따라 사실혼 관계의 경우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왔다.

그래픽=이진영

그러나 소씨 커플이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건보공단은 착오라며 소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했다. 이에 불복해 2021년 소씨가 소송을 낸 것이다. 1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2심은 “동성 관계라고 피부양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며 판결을 뒤집었고 대법원은 이날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재판의 핵심 쟁점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따질 때 동성 커플을 사실혼 부부와 다르게 봐야 하는지였다. 조 대법원장 등 대법관 9명은 다수 의견으로 “국민건강보험법령에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 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동성 동반자는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부양∙정조 의무를 바탕으로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건보공단이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어 “동성 동반자를 인정한다고 해서 피부양자 숫자가 불합리하게 증가한다거나, 전통적 의미의 혼인과 가족제도를 해친다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건보공단은 이날 선고 후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판결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동성 부부 등 성소수자의 권리가 폭넓게 인정되는 분위기다. 대법 전합은 2022년 남성 군인 간 성관계는 합의 유무에 상관없이 군형법으로 처벌해온 판례를 바꾸면서 “동성 성행위가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같은 해 이혼 후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性)전환자에게 법적으로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대법 전합 판결도 나왔다.

법조계에선 향후 동성 커플이 갖는 법적 권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민연금법과 공무원연금법, 산재보험법, 고용보험법 등은 ‘사실혼 배우자’를 수급자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날 판결 취지대로면 동성 동반자들의 자격과 지위도 달라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대법 전합은 이날 이혼한 배우자에게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를 받지 못한 경우, 자녀가 성인이 된 때로부터 10년 이내에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종전엔 양육비에 관한 이혼 부부 간 협의나 법원 결정이 없으면, 소멸시효(10년)가 진행되지 않아 언제든 청구할 수 있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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