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염치를 알라, 국격이 따르리
유럽 여행 중 식당에선 어깨에 멘 카메라나 가방을 늘 앞쪽으로 모은 채 음식을 먹었다. 곁에 빈 의자가 있어도 내려놓지 않았다. 누군가 벗겨가거나 집어가니 조심하라는 충고에 따른 일. 그리스 파트라스 항으로부터 이탈리아 바리 항에 도착하여 입국 심사를 받던 중 만난 경찰관은 소매치기 조심하고 자동차 문 잘 잠글 것을 강조했다. 경찰관이 외국인에게 자국민을 조심하라고 당부하다니! 그 나라 국민의 염치없음을 우리에게 홍보한 셈이었다.
어렵던 시절,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가기를 꺼렸고, 손님 맞는 입장은 더했다.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어느 집에 손님이 왔다. 다음 날 그가 변소에 가는데, 돌아가는 것으로 착각한 주인이 기쁜 어조로 ‘벌써 가려고? 며칠 더 있다 가지’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넸다. 차마 변소에 간다고 말하지 못한 그는 ‘집에 일이 있어서요’ 핑계 대며 그 길로 떠났다는 ‘웃픈’ 일화가 있다. 피차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던 건, 염치 때문이었다.
감언이설로 남의 재물을 편취하는 사기꾼들과 권력으로 사법 당국을 옥죄려는 범죄 정치인들. 염치가 아예 없었거나 몰각(沒却)한, 동격의 군상(群像)들이다. 염치를 갖춘 우리에게도 ‘청소해야 할’ 그런 인간들은 적지 않다. 외국인들이 꼽는 한국 여행의 최대 매력 포인트가 있다. 밤에 자유로이 다닐 수 있고, 어딜 가든 소매치기 당할 일 없다는 점. 아직 우리에게 염치가 남아 있다는 증거다. 내가 여행한 나라들은 세칭 선진국들이었으나, ‘소지품 조심하고 밤에 나다니지 말라!’는 당부를 그 나라 사람들로부터 늘 들어왔다.
맹자는 본성의 4덕(인·의·예·지) 중 의(義)의 단서를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했고, 그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도 했다. 맹자의 기준대로라면, ‘사기꾼이나 범죄 정치인’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 자들이 인간일 수 없듯 염치없는 국민의 나라들은 진정한 선진국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체면을 중시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만 제대로 가르쳐도 조만간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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