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한동훈, 무모한 도박인가 담대한 도전인가
尹과 韓이 서로 적이 된 초현실적 상황
거듭된 오판 친윤, 韓 저지할 수 있을까
나경원 패스트트랙 발언은 언젠가는 부메랑
韓은 尹과 관계 회복·당 혁신이 최선이지만
둘 다 성공하는 건 ‘미션 임파서블’ 될 듯
국민의힘 전당대회 드라마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드라마에서 갈등 라인은 러브 라인 못지않은 흥행 요소지만 도가 지나치면 막장 드라마가 된다. 지금 국민의힘이 딱 그렇다. 배신·분노·증오·협박·폭력·의심·폭로가 난무한다. 어제 동지가 오늘 적이 되고, 어제 적이 오늘 동지가 된 상황이라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를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많긴 하지만 충돌의 두 축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다. 1월에 윤석열 대통령의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설이 나왔을 때만 해도 총선 승리를 위한 연출된 차별화로 보는 시각도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각은 전혀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적(?)이 된 상황은 초현실적이다.
총선 패배 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패배 책임을 겉으로는 자신 탓이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상대 탓이라 생각한 듯하다. 세간의 평은 윤 대통령 70%, 한 위원장 30% 정도로 윤 대통령 책임이 조금이라도 더 크다고 봤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윤 대통령과 친윤은 100% 한동훈 책임, 한 위원장과 친한은 100% 윤석열 책임으로 본 듯하다. 이런 극단적 인식 차이로 인한 오판이 결국 ‘내전(內戰)’을 불렀다.
지난 2년간 윤 대통령과 친윤은 전략적 오판의 연속이었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 승리를 가져온 ‘선거 연합’ 해체(이준석 대표 축출)를 시작으로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패배, 총선 참패에 이르기까지 전략적 판단 기능이 작동 불능 상태였다. 총선 참패 후 민심과 권력 지형의 변화를 정확히 읽었다면 전당대회도 이렇게 대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는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앞으로 국정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겠습니다. 한동훈 위원장도 어려운 일 맡아 수고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큰일 할 기회 다시 올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친윤도 2선 후퇴했다면 한동훈이 전당대회에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출마의 명분을 뺏기는커녕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설이 나오고, 조정훈 총선 백서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한동훈 비대위원장 책임을 묻겠다고 하고,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동훈 전 위원장을 연일 거세게 비난하자 출마 명분이 없던 한동훈에게 출마 동력이 생겼다. 한동훈이 말하는 ‘이·조 심판론’이 이철규와 조정훈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쯤이다. 출마를 막는 것이 한동훈 당대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면 출마 빌미를 주지 말았어야 한다.
아마도 윤 대통령과 친윤은 한동훈이 나오지 못하거나 혹 나오더라도 자신들이 들고 있는 카드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오판했을 것이다. 총선 후 권력 지형의 변화를 전혀 읽지 못한 탓이다.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이 대통령에게 더 있다고 보는 당원과 지지층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가자는 태도에 분노했다. 한동훈의 높은 지지율은 그에 대한 기대감보다 윤 대통령과 친윤에 대한 반감이 더 많이 반영됐다.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중요한 모든 사건과 인물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라고 했듯이 친윤은 ‘김기현 전당대회 시즌 2′가 또 한번 가능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친윤의 시대는 끝났다. 물론 그들은 한동훈에게 당대표를 내주더라도 대통령 후보가 되는 건 막을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할 테지만.
세계적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강한 기업이 몰락하는 5단계를 제시했다. ①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②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③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④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⑤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 친윤은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윤 대통령과 친윤은 오만·오기·오판으로 위기와 몰락을 자초했다. 그렇다고 한동훈이 탄탄대로의 기회를 잡은 것은 아니다. 한동훈의 선택도 위험한 도박이다. ①총선 패배에 책임 있는 비대위원장이 ②대통령 임기가 반환점도 돌지 않은 시점에 ③대통령과 차별화를 노골적으로 선언하면서 당권 장악에 나선 적은 일찍이 없었다. 담대한 도전일까, 무모한 도박일까.
대통령이 되려는 권력 의지를 숨기지 않는 한동훈 전 위원장은 세 개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①당권 장악 ②대권 후보 쟁취 ③대선 승리. ①의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만 ②와 ③의 가능성은 낙관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뿐 아니라 당내 반대파와의 관계 설정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거침없이 쏟아낸 말도 주워 담을 수 없다. “배신하지 않을 대상은 대한민국과 국민이다” “공적인 문제를 사적 관계와 논의할 수 없다” “김건희 여사 문자는 당무 개입이고, 만약 답했다면 국정 농단이 될 수 있다” “나경원 의원께서 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 달라고 부탁한 적 있지 않나?” 이런 말들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는 게 세상 이치다. “한동훈 후보의 입이 우리 당 최대 리스크”라는 나경원 의원의 비판에 공감하는 당원이 꽤 있다.
위험한 도박에 나선 한동훈 위원장이 당대표가 된다면 향후 네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①최선 : 윤석열 대통령과 관계 회복도 하고 당 혁신도 성공하는 것 ②차선 : 대통령과 관계 회복은 안 되지만 당 혁신은 성공하는 것 ③차악 : 대통령과 관계 회복은 하지만 당 혁신은 실패하는 것 ④최악 : 대통령과 관계 회복도 안 되고 당 혁신도 실패하는 것. 현시점에서 가능성은 ④②③① 순이다. 한동훈이 대통령이 되려면 가능성이 가장 낮은 ①번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미션 임파서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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