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미룰 수 없는 ‘AI 변호사’ 가이드라인 제정[동아시론/최경진]
갈등으로 리걸테크 혁신 기회 놓쳐선 안 돼
국민도 법조계도 ‘윈윈’할 기준 정립 시급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왔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며 발전해 왔던 지난날의 산업혁명에 비견되거나 혹은 그 이상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들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AI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 각자 저마다의 처한 상황과 AI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따라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AI를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AI 연구를 선도하며 AI 대부로도 불리는 제프리 힌턴이나 요슈아 벤지오조차도 AI의 위협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AI 자체의 위험성도 문제이지만, AI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문제이다. AI가 생명이나 재산과 같은 사람이 지키고자 하는 중요한 가치와 관련되어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법률 분야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 로펌은 법률 관련 질문을 입력하면 챗봇이 질문 내용을 분석하고, 질문 키워드를 추출해 관련 법률 검토 등을 한 뒤 답변을 내놓는 법률 분야 AI 챗봇 서비스를 개시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AI가 법률 서비스에 접목됨으로써 법률자문 같은 전문적 영역에서도 사람이 아닌 ‘AI 변호사’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 서비스가 시행되자 대한변호사협회 법질서위반감독센터는 해당 로펌에 해명을 포함한 소명서 제출을 요구했고, 대한변협은 해당 로펌 및 관련 변호사에게 경위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하여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 변호사법 제34조를 위반했고, 그 답변과 함께 표출되는 네이버 광고도 변호사 광고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리걸테크 서비스를 둘러싸고 대한변협과 갈등을 빚었던 ‘로톡 사건’과도 유사하다. 로톡을 둘러싼 10년 가까운 갈등은 대한변협과 변호사, 로톡, 더 나아가 법률 수요자인 국민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했다. 새로운 혁신으로 떠오른 AI가 같은 길을 가게 해서는 안 된다. AI를 활용한 리걸테크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도 안 되고, 혁신의 혜택이 국민과 변호사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변화를 수용하고 발전시켜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법률전문가로서 변호사가 지켜주어야 할 중요한 가치가 AI 시대에도 훼손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도록 혁신에 적절한 안전망을 만들어주는 것도 AI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혁신이라고 하더라도 안전장치가 없이 폭주하게 된다면 결국 그로부터 혜택을 얻고자 했던 인간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게 되어 혁신은 지속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AI가 접목된 법률서비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조치를 취하려는 대한변협이 단순히 법률전문직역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AI 혁신은 필연적으로 기득권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AI 혁신이 항상 선한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기득권과 AI 혁신 사이에 갈등만을 증폭시키기보다는 무엇이 진정한 미래 가치이고 혁신과 기득권층 모두에 도움이 되는지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AI가 가져오는 위험성 중에는 어떠한 기준과 절차로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 없다는 불투명성과 그 결과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 AI가 만들어내는 환각과 같은 허위나 잘못된 정보의 생성 등이 있다. 그런데 법률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정확성이다. 국민이 일정한 자격을 갖춘 변호사에게 법률서비스를 받는 이유는 변호사가 정확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국민의 법적 이익을 수호해주기 때문이다. ‘AI 변호사’가 부정확하거나 허위로 생성된 법률자문을 제공함으로써 국민들이 소송에서 패소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AI 혁신은 지속할 수 없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AI 혁신을 통해 고도화된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전망으로서의 기준과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다. AI 혁신으로 변호사가 대체된다고 우려만 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맞게 변호사의 역할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AI 변호사’의 출현은 거스를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이다. 혁신적인 AI 법률서비스에 대한 문제 제기는 AI의 부정적 영향을 예방·해소하기 위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변호사의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법률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어야 한다. 국민에게는 AI 혁신으로 고도화된 법률서비스의 혜택을 주고, 변호사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면서 AI와 공진화(共進化)할 수 있도록 ‘AI 변호사’ 가이드라인을 고민해볼 때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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