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세브란스 ‘주 4일 실험’에서 찾은 일과 삶의 균형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는 장시간 노동의 늪에 빠져 있었다. 혹자는 이전에 비해 노동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2023년 기준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이 1871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42시간) 회원국에 비해 아직도 더 많은 일을 한다. ‘과로 사회’를 끝내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자는 열망이 높은 이유일지 모른다. 일과 삶의 균형은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과 개인·여가시간의 조화를 의미한다. OECD 회원국의 일을 제외한 시간은 하루 평균 15.1시간인데 우리는 14.8시간에 불과하다. 개인의 삶 속에 나를 위한 시간은 62% 할애에 그쳤다. 결국 해법은 일하는 시간의 양을 줄여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병원은 대표적인 일과 삶이 불균형한 곳이다.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환자를 치료하고 돌봐야 하기에 1년 365일, 24시간 운영된다. 그렇다 보니 육체적, 정신적 피로와 심각한 건강 문제가 확인된다. 직업에 대한 좌절감은 물론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위태로운 상황도 자주 목격된다. 고된 노동의 현실은 통계 수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1일 10시간 이상 근무 17.6%, 이직 유경험자 52.8%, 평균 근속기간은 7.5년. 일과 삶이 불가능한 현실을 보여준다. 병원 특성상 여름휴가를 몇 개월 전부터 계획하고 갈 수 있는 간호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교대제 근무표가 3주 전쯤 나오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구조다.
이 때문에 세브란스병원의 주4일제 실험은 새로운 도전이다. 지난 1년 병동 간호사들의 주4일제 실험의 효과는 깜짝 놀랄 정도다. 무엇보다 병원과 개인 모두의 이익이 확인된다. 상급종합병원 3교대 병동에서 퇴사율 0% 병동이 나왔다. 기존 3년 미만 간호사 평균 퇴사율이 34.2%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다. 아파서 출근 못하는 결근이나 병가 감소도 확인된다. 수면장애나 우울감, 근골격계 유증상 비율도 절반가량 줄었다. 그만큼 직장생활 만족도는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환자나 보호자들과 친밀감도 변화했다. 주4일제 실험 병동의 친절 건수는 이전과 비교해 1.5배 이상 증가했다.
단 하루지만 개인의 삶에도 큰 변화들이 확인된다. 주4일제 간호사의 행복도는 5.3점에서 6.2점으로, 일과 삶 균형도는 3.7점에서 5.5점으로 향상되었다. 바로 옆 타 병동의 주5일 근무 간호사들과는 전혀 다른 변화다. 휴일 여가시간은 3시간25분에서 6시간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주로 지인이나 가족을 만나거나 육아돌봄 등이 눈에 띈다. 산책과 걷기, 운동, 교육, 여행 등의 모습들도 두드러진다. “예전에는 힘들어 휴일에 무조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는데, 운동도 하고 친구 만나는 여유가 생겼어요”라는 말에는 우리가 어떤 일터를 만들어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우리는 2005년 주5일제 시행 이후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과거 주5일제 도입 당시 “삶의 터전과 경제가 망한다” “월요병 심해진다” “이혼율이 증가한다”와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주4일제로의 전환은 인력 충원이나 생산성 문제 등이 쟁점이 된다. 그러나 주4일제 효과도 생각해봐야 한다. 퇴사자 감소로 신규 직원의 교육훈련 비용이 절감되고 실업급여 지출도 감소하니 사회경제적 효과는 확실하다. “내 담당 환자가 아니어도 여유가 있다보니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하려 한다”는 주4일제 참여자의 말에서 기업과 고객에게도 이익임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새로운 노동시간 정책을 모색 중이다. 스페인은 시간빈곤 퇴치 정책을, 벨기에는 주4일제 근무 요청권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일과 삶의 균형은 일터 변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세브란스병원의 주4일제 실험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앞에 길이 보이는데, 빙빙 돌아가지 말자!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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