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윤석열과 한동훈, 누가 더 큰 배신자인가

이용욱 기자 2024. 7. 1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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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면 윤석열 정치의 출발이 배신이었다. 검찰총장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와 맞서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공정과 상식’ 이미지를 얻고, 그 덕에 대통령까지 됐다. 자신을 발탁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배신이었지만 당시엔 권력에 굴하지 않은 정의와 용기로 포장됐고, 그의 부족한 정치적 자질과 정책적 역량, 성마른 성격은 가려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자신에게 권력을 안겨준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내다버렸다. 자신과 아내 보호에만 급급하는 지극히 사적인 행보는 결기로 포장됐던 검찰총장 윤석열의 행동들이 정치적 계산에 따른 배신임을 보여준다.

배신자일수록 배신을 두려워한다. 배신 경험자로서 배신에 대한 촉이 남다르고, 배신이 초래한 참혹한 결과를 지켜봤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한때의 측근’ 한동훈 후보에 대해 유별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배신 경험자로서 본능이 발동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다른 사람의 배신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배신 행위부터 돌아봐야 한다. 유능한 정부를 만든다면서 아마추어 국정운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국민을 속인 것이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한 거부권 남발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심지어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가 특정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참사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것에는 이런 속내가 있었던 것 아닌가. 국민 159명이 사망한 참사를 국정 최고책임자가 음모로 생각했다니, 억울한 죽음을 애도했던 국민에 대한 지독한 배신이다. 대통령실은 왜곡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한 후보의 배신에 대해 비속어를 써가며 수차례 분노를 터뜨렸다는 말을 여권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 영화 <넘버3>에서 ‘불사파’ 보스를 연기한 배우 송강호씨의 모습이 윤 대통령과 겹쳐졌다.

“내 말, 내, 내, 내 말 잘 들어, 내, 내가 채 상병 수사외압, 수사외압이 아니라 항명사건, 그럼 그때부터 무조건 항명이야. 김건희 명품백 수수했지만, 이걸 정치공작, 이러면 이것도 정치공작이야. 내가 특검법은 헌법유린 그러면 무조건 헌법유린이야. 내 말에 토토토토 토토토토 토다는 XX는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배신! 배반형!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앞으로 직사시켜 버리겠어. 직사!”

하지만 수없이 국민을 배신한 윤 대통령이 남의 배신을 나무랄 자격은 없다. 정치적 야망을 가진 한 후보로선 윤 대통령 옆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배신자 논쟁을 해야겠다면, ‘배신자냐 아니냐’가 아니라, ‘누가 더 큰 배신을 했느냐’를 따져야 한다. 한동훈은 검사형님 윤석열을 배신했고, 대통령 윤석열은 국민을 배신했다. 한 사람을 배신한 한동훈보다 국민을 배신한 윤석열의 배신이 더 크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이 있다.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 총선, 국민의힘 전당대회까지 김 여사가 국정에 개입한 흔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만약 윤 대통령의 배신과 정치입문이 김 여사의 기획에 따른 것이라면, 대통령의 돌출행동과 오락가락 국정에 김 여사의 광범위한 개입이 있었다면, 박근혜의 최순실과 윤석열의 김건희 역할이 비슷한 것이라면, 국민들에게 그보다 더 큰 배신은 없을 것이다.

물론 윤 대통령도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독선적 성정과 부족한 실력 때문에, 여러 이해세력의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내야 할 대통령 업무가 버거울 수 있다. 누구나 외골수 기질이 있다. 코너에 몰리면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지만, 다수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 윤 대통령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배신자의 촉으로 배신자를 응징하는 것은 대통령이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윤석열과 김건희, 한동훈의 진흙탕 싸움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배신의 크기를 놓고 다툴 만큼 한가한 처지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140만명을 훌쩍 넘은 것은 윤 대통령의 수많은 배신 행위에 대한 국민 분노를 보여준다. 윤핵관들은 한 후보를 향한 연판장 소동을 벌였지만, 국민들은 능력도 도덕성도 반성도 없는 대통령을 향해 그간의 배신행위에 대해 사과하라며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 배신의 드라마는 늘 파국으로 끝났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석열 정권에 드리워진 어둡고 불길한 그림자를 보여줬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이용욱 정치에디터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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