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MBC의 뽀송뽀송한 뉴스 하나

기자 2024. 7. 18.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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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란 말처럼 그 뜻이 폄하된 단어도 드물다. 국어사전은 ‘일정한 방침 아래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신문, 잡지, 책 따위를 만드는 일’로 풀이한다. 편집은 출판사 한 부서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는 각자 의도한 대로 생각을 가꾸며 그에 소용되는 말을 취사선택한다. 이것은 편집이 아닌가. 사람마다 고개를 조절하여 풍경의 한 조각을 보고 취하는 것, 이 또한 편집이 아닌가. 잊지 말라, 당신 주위에 우글거리는 모든 뉴스는 누군가의 의도하에 편집된 것임을. 앵커가 바뀐 뒤, 밤 9시는 나에겐 뉴스가 사라진 암흑지대다. 그러니 이렇게 편집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세계문학전집이나 읽자.

어이없는 사건, 울화를 돋우는 변명이 연일 도배를 한다. 뉴스 생산자들은 한번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는다는 기초산수도 모른단 말인가. 그런 와중에 지지난 주말 MBC <뉴스데스크>의 한 토막. 그 멘트는 이랬다. “폭염 속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복은 땀과 기름, 먼지가 한가득인데요. 하지만 매번 빨아 입기도 힘들고, 가족들의 옷이 상할까 봐 (…) 노동자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트럭 하나가 산업단지 일대를 누빕니다. 하루에도 수백 벌씩 작업복을 세탁하다 보면 옷의 더러움보다, 그 속에 배인 고된 노동의 흔적이 눈에 밟힙니다.” 화면은 작업복을 수선하고 호주머니에서 소지품을 꺼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물건들은 다양하다. 휴지, 사탕 그리고 처방약. 그것은 감기약 혹은 당뇨약일까.

궁리출판에서 오래전 펴낸 <찰리와 함께한 여행>은 노벨상 수상작가 존 스타인벡이 애견 찰리와 함께 미국의 뒷골목을 누빈 여행기이다. 어느 날 미처 정리가 안 된 호텔방에 들어가게 되고 전날의 투숙객이 남긴 흔적에서 직업과 성격을 짚어보는 내용이 나온다. 휴지통에 버린 약봉지를 보고 지병을 추리하면서, 영업사원일지도 모를 그이의 애환을 짐작해보는 것.

MBC 뉴스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옷 상태를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구나 대략 나오죠. (…) 피곤하신지 사탕이 나올 때도 있고. 참기 위해서 먹잖아요. 그런 거 볼 때는 작업이 힘들면 이렇게까지 할까, 좀 마음이 아파요.” “새 옷 같은 작업복을 받아든 노동자들은 어떤 기분일까요?” “깨끗이 빨아 왔습니다.” “뽀송뽀송해.”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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