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해초를 구해줘

기자 2024. 7. 1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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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막을 내린 국제환경영화제에서 <해초를 구해줘>를 가장 먼저 봤다. <나의 문어 선생님>처럼 환상적인 바닷속을 볼 수 있고 재밌고 기발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소개글에 끌렸기 때문이다. 내용은 캐나다의 젊은 여성 변호사 프랜시스가 다시마를 어렵게 구해 바닷속에 심고 키우느라 ‘생고생’을 하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여행한 캐나다 서부 해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여력이 날 때마다 카리브해 등에서 환경운동을 하고 다시 밴쿠버섬으로 돌아와 해변을 산책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바다가 변한다. 불가사리 수가 점점 줄더니 어느 날 단박에 모두 사라지고 해달도 떼죽음을 당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해양숲 전체가 파괴될 테다. 프랜시스가 찾은 해법은 해초 양식이었다. 알다시피 해초는 바닷속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해양 산성화를 감소시키고, 다른 해양 생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며, 양식 과정에서 별다른 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초 양식에는 최소한 세 단계가 필요하다. 첫째 수많은 해초 중 밴쿠버 바다에 적합한 해초를 정해야 하고, 둘째 그것의 씨를 구해야 하며, 셋째 그것을 다시 바다에 심어야 한다. 문제는 프랜시스가 해초를 전혀 모르는 ‘해알못’이라는 점이다. 그는 요즘 청년답게 구글에서 ‘돈 안 들이고 해초 양식을 시작하는 법’부터 검색한다. 다음엔 책을 산다. 하지만 미역과 다시마도 구분하지 못하는 프랜시스에게 이런 건 도움이 안 된다. 결국 그는 해초 전문가, 양식업자, 연구원, 식품 가공업자 등을 차례로 찾아가 묻고 배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다는 유럽다시마가 선택되었다. 하지만 다음 단계, 즉 한류성 갈조류인 다시마의 포자를 채취, 배양하는 일은 난도가 높다. 그는 “밀크 초콜릿 색깔”의 다시마를 찾아 한겨울 바닷속을 여러 번 들어가지만, 그가 따 온 포자가 잔뜩 붙은 해초는 다시마가 아니었다. 결국 다른 루트를 통해 어렵게 포자를 구하고, 그것을 양식 스풀(spool)에 배양하여 가까스로 겨울 바다에 심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몇달 후 그 아기 다시마는 물고기 알이 잔뜩 붙은 풍성한 다시마숲으로 자라났다.

내가 두 번째로 본 영화는 이탈리아의 게릴라 가드닝을 다룬 <무법의 정원사>였다. 게릴라 가드닝은 방치되거나 버려진 빈 땅 등을 시민들이 무단으로 점유하여 꽃, 나무, 채소 등을 심는 활동이다. 1973년 뉴욕의 정원사 리즈 크리스티와 동료들이 철근 절단기와 곡괭이를 들고 지역의 봉쇄된 빈터에 들어가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 출발이었다.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공격 자세를 취한 게릴라가 수류탄이나 화염병 대신 진흙과 야생 종자를 섞은 씨앗 폭탄을 던지는 이미지가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라는 이 게릴라 가드닝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영화 속의 지아니 만프레디니는 예쁘게 꾸민 빈 깡통에 꽃씨를 심어 한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도심 전봇대에 그것을 매다는 밀라노 ‘하늘을 나는 식물들’의 일원이다. 그는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 전국의 게릴라 가드닝 현장을 방문한다. 로마에는 여성 퀴어들이 중심이 된 ‘전복적 정원사들’이 있고 남부의 빈곤한 도시 타란토에는 지역 주민의 임파워먼트에 초점을 맞추는 ‘굉장한 광장’ 그룹이 있다. 이 밖에도 나폴리의 ‘브로콜리 반란군’, 볼로냐의 ‘선물의 화단’ 같은 예쁜 이름의 운동집단도 있다. 자율주의 운동답게 주체나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아무 대가 없이 도시 곳곳의 황폐화된 땅을 보살핀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다시마 양식을 위해 이렇게까지 고생해야 할까, 라고 프랜시스는 생각한다. 게릴라 가드닝으로 조성된 정원은 당국이나 소유주에 의해 무시로 해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앗 심기는 혁명적 행위이자 오늘날 가장 반항적인 행위”(<무법의 정원사>)라고 생각하는 이런 “고집 센 낙관주의자”(<해초를 구해줘>)들은 세계 곳곳에서 오늘도 씨앗을 뿌리고 식물을 가꾸고 사람을 연결한다. 손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 각자 한 손씩 보태보자.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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