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32) 남산 팔각정

기자 2024. 7. 1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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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린 상처 간직한 터…지금은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
남산 팔각정 1971년(왼쪽)과 2024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팔각정은 평면이 정팔각형으로 된 정자다. 한국 곳곳에 전망이 뛰어나거나 경치가 좋은 장소에 팔각정이 세워져 있으나, 아마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팔각정은 서울 남산 정상에 있는 ‘남산 팔각정(南山 八角亭)’일 거다. 이곳에서는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특히 밤에는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진에 보이는 남산 팔각정은 1968년 건립되어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은 아니다.

물론 이렇게 가치 있는 자리가 그 이전에도 비어 있진 않았다. 남산이 풍수지리상 한양도성의 안산(案山) 역할을 하던 조선시대엔 이 자리에 목멱신사(木覓神祠)란 신당이 있었다. 목멱신사는 목멱산, 즉 남산의 산신에게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으며, 국가가 주관하는 제사를 지내서 국사당(國師堂)이라고도 했다. 1925년까지 존재하던 국사당은 일제에 의해 인왕산 선바위 아래로 옮겨졌다.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자신들의 신을 모신 공간보다 더 높은 곳에 조선의 신을 모신 신당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1959년엔 이 자리에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의 호를 딴 우남정(雩南亭)이란 정자가 만들어졌으나, 4·19혁명 이후 철거되었다.

1971년과 2024년, 50여년 사이에 팔각정의 모습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1971년에는 남성들은 정장을, 여성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팔각정을 구경하고 있으며, 모두 한국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2024년 사진에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들이 자유분방한 차림으로 앉아 있다. 이들의 시선은 한 곳에 쏠려 있는데, 팔각정 앞 광장에서 열리는 전통문화 재현행사 가운데 하나인 ‘전통 무예 시범 공연’을 구경하는 중이다.

첨언 하나, 1971년 사진 중앙에 주황색 상의를 입고 카메라를 멘 사람이 서 있다. 관광지에서 돈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사이다. 당시에는 전국 관광지마다 영업하는 사진사가 있었으나, 카메라의 대중화로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남산 팔각정에는 아직도 사진사가 건재하니,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이분에게 멋진 기념사진을 부탁해 볼 만하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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