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냄새·노랫소리,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
유희 대표를 기억하며
1988년 철거용역반의 무도함이
맨 처음 그를 거리로 이끌어
장애인·노점상 농성하는 곳에서
밥을 지어 먹이며 함께 싸워
성주 소성리로, 한진중공업으로
새로운 투쟁의 지평 연 ‘밥 연대’
“높고 낮은 그대들 잘 잤어요?”
그의 기도문은 한결같았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 목소리가 저렇게 우렁차다니.”
1980년대 말 88 서울 올림픽을 앞둔 정부가 노점을 일제 단속할 때 현장을 찾은 전국노점상연합회 소속 조덕휘씨 눈에 젊은 여성이 보였다. 단속반이 거세게 밀고 들어오는데도 맞서 소리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단속반이 오면 위축되기 마련인데 유희는 앞에서 절규하듯 소리를 치더라고.” 조씨는 36년 전 귀에 박힌 유희씨의 똑 부러진 목소리가 생생하다고 했다.
유씨는 30년간 그 목소리를 거리 위 약자들과 나눴다. 대표로 있던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는 전국 방방곡곡 집회와 농성장을 찾아다니며 밥을 나눴다. 유씨는 밥을 퍼줄 때마다 “밥은 하늘이고 사랑이고 힘”이라고 외쳤다. 싸움에서 이길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응원이자 언제든 뒤를 지키겠다는 위로였다.
유씨는 지난 6월18일 하늘로 떠났다. 향년 65세.
날 때부터 투쟁가는 아니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아세아극장 앞에서 공구노점을 시작했을 당시 유씨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데 치여 살았다. 1988년 철거 위기에 놓인 돈암동 달동네를 지나다 손도끼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철거용역반원이 노인과 어린이를 때리는 동안 경찰은 방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장면이 유씨를 거리로 이끌었다.
전국노점상연합 부의장을 맡았던 유씨는 1995년 인생의 두 번째 변곡점을 맞았다. 서초구 양재역 인근에서 카세트테이프 노점을 하던 장애인 최정환씨가 구청의 노점 단속에 반발하며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유씨는 사경을 헤매는 최씨 옆에서 유언을 들었다. “내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 그때부터 유씨는 장애인·노점상들이 농성하는 병원 앞에서 밥을 지었다.
같은 해 11월 인천 아암도 바닷가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다. 아암도에서 노점을 하던, 인천시의 노점 철거에 맞서 투쟁하던 이덕인씨의 시신이었다. 폭행·포박 흔적이 발견됐다. 유씨와 인근 대학생들이 ‘부검으로 사인을 밝히라’며 시신 곁을 지켰다. 경찰은 시신을 가져간 뒤 이씨가 익사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6개월 동안 이어진 장례투쟁에서 유씨는 밥을 짓고, 유가족을 챙겼다.
유씨가 밥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말렸다. 밥품이 많이 들었다. 얼마나 유지할지 체력도, 경제력도 의문인 상황이었다.
노점상 운동을 하며 알게 된 많은 동지가 먼저 밥차를 돕겠다고 나섰다. 조리나 배식을 돕는 이들, 식판과 수저를 선물하는 이들, 쌀·표고버섯 같은 음식 재료를 보내는 이들의 정성이 십시일반 모였다.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밥 연대’라는 개념은 유씨가 승용차에 가득 실은 100인분, 500인분, 1000인분의 밥이 투쟁 현장을 덥히면서 점점 구체화됐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서서 발언하거나, 진압에 나선 공권력과 몸으로 맞서는 것이 투쟁이라고 여겨지던 때, 유씨의 밥 연대는 새로운 투쟁의 지평을 열었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은 유씨가 강조했던 ‘십시일반’ 사상을 두고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투쟁 방식이었다. 자신의 문제로 싸워온 이들이 타인의 상황을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를 밥 연대가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밥묵차 이후엔 다른 밥차들이 밥 연대를 이어갔다. 유씨를 ‘유일한 선배’라고 부르는 우리밥연대 김주휘씨는 하관식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다짐했다. “ ‘밥하는 우리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된다. 동지들 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건강해야 한다’고 하시던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높고 낮은 그대들 잘 잤어요?” 유씨가 페이스북에 올리던 기도문은 매번 이렇게 시작했다. 임금을 못 받은 이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해고된 이들이 망루와 굴뚝으로 오르는 모습을 유씨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밧줄에 매여 고공농성장으로 올라가는 밥을 두고 유씨는 “생명이고 힘이다”라고 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를 외쳐온 소성리 주민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노동자들, 오랜 싸움 탓에 않는 병으로 힘겨워하는 모든 이들이 기도문에 담겼다.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도 기도문에 올랐다. 김 위원은 그 기도가 “인적 없는 밤길에서 만난 불빛 같았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유씨를 기억하는 이들 100여명이 모인 ‘추모의 밤’에서 김 위원은 “당신을 알기도 전에 당신이 해주는 밥부터 먹었다”며 늦은 인사를 전했다. 김 위원은 유씨가 입었던 주황색 앞치마를 응원의 깃발, 한손에 쥐던 국자가 승리의 팡파르 같았다고 기억했다. “아무 대가 없이 퍼주던 그 밥을 먹고 나면 힘이 나고 충만해지던, 참 신기한 밥이었어요. 잘 먹었습니다.”
세 아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지어 전국을 도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자랐다. 커서는 ‘어머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매달 밥묵차에 후원금을 댄 든든한 후원자였다. 큰아들 김청희씨는 “이번에 어머니를 찾아와 주신 분들 한 분씩 만나뵈니 어머니가 ‘나 이렇게 살아왔다’고 말해주시는 것 같다. 어머니가 어떤 뜻으로 어떤 일들을 해오신 건지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초여름 해가 뜨겁던 지난달 21일 유씨는 모란공원 이덕인 열사 바로 뒷자리에 묻혔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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