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쓴 韓 여성문학사…시작은 20년 빨랐다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2024. 7. 18. 20:0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제는 옛 풍규를 전폐하고 개명 진보하여 우리나라도 타국과 같이 여학교를 설립하고 각각 여아들을 보내어 각항 재주를 배워 일후에 여중 군자들이 되게 할 차로 방장 여학교를 창설하오니 유지하신 우리 동포 형제 여러 여중 영웅호걸님네들은 각각 분발지심을 내어 귀한 여아들을 우리 학교에 들여보내리라 하시거든 곧 착명 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이소사' '김소사' 라고만 하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여성이 '황성신문'에 투고해 제목 없이 실렸는데, 이 글의 성격과 취지를 고려해 후대에 '여학교설시통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전 7권)-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민음사 /세트 10만4000원

- 학자들 오늘날 관점의 아카이빙
- 원류로 ‘여학교설시통문’ 꼽아
- 개화기 조선~민주화 이후까지
- 시·소설·편지 등 다양하게 수록

“이제는 옛 풍규를 전폐하고 개명 진보하여 우리나라도 타국과 같이 여학교를 설립하고 각각 여아들을 보내어 각항 재주를 배워 일후에 여중 군자들이 되게 할 차로 방장 여학교를 창설하오니 유지하신 우리 동포 형제 여러 여중 영웅호걸님네들은 각각 분발지심을 내어 귀한 여아들을 우리 학교에 들여보내리라 하시거든 곧 착명 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한국여성문학선집’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서 책을 함께 만든 이들이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1898년 9월 8일 ‘황성신문’에 실린 글 ‘여학교설시통문’ 일부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일할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자고 주장한다. ‘이소사’ ‘김소사’ 라고만 하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여성이 ‘황성신문’에 투고해 제목 없이 실렸는데, 이 글의 성격과 취지를 고려해 후대에 ‘여학교설시통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 1권에는 신문에 실린 원문과 현대어로 옮긴 글을 함께 수록했다.


기존 한국문학사는 나혜석의 소설 ‘경희’가 ‘여자계’에 발표된 1918년을 여성문학의 원류로 보았다. 그러나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보다 20년 앞선 1898년 ‘여학교설시통문’을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본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전 7권, 총 3256쪽에 이른다. 그동안 문학사를 떠받친 문학 역사 학문을 둘러싼 오랜 기준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의심하고 새로이 들여다보며 완성한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시작이다. 이 선집을 엮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여성주의와 여성문학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사 서술을 목표로 2012년 결성했다. 국문학 연구자 김양선 김은하 이선옥, 영문학 연구자 이명호 이희원으로 구성되었고, 시 연구자 이경수가 객원 에디터로 참여했다.

7권의 제목은 ‘1898년-1920년대 중반; 여성문학의 탄생’ ‘1920년대 후반-1945년; 계급·민족·여성의 교차’ ‘1945년-1950년대; 전쟁과 생존’ ‘1960년대; 세대교체와 저자성 투쟁’ ‘1970년대; 개발 레짐과 여성주의적 각성’ ‘1980년대; 운동으로서의 글쓰기’ ‘1990년대; 성차화된 개인과 여성적 글쓰기’. 근대 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까지 시대를 역사적 전환점으로 구분했다.

시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전환을 이룬 여성문학 작가·작품을 선별해 담았다. 시·소설·산문·희곡뿐 아니라 잡지 창간사, 선언문, 편지, 일기, 노동 수기 등 제도화된 문학 형식 밖에 있다는 이유로 문학사에서 다뤄지지 못했던 다양하고 자유로운 ‘여성 글쓰기’를 총망라했다.

‘시대 개관’은 각 권을 열어 준다. 다루는 작품과 시대 전반을 설명하며 사회·정치·문화적 맥락에서 작품과 작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글이다. ‘작가 소개’ 글은 작가 생애와 작품, 문학사적 성취와 의미를 설명한다. 해당 작가를 연구해 온 연구자를 통해 방대한 자료와 엄정한 사실 검증을 토대로 작성했다.

모든 작품은 초간본 원문을 우선해 수록했다. 이 선집이 지닌 ‘최초’의 의미와 자료·교육적 가치를 고려해 세운 기준이다. 장편소설은 작품 소개와 주요 장면을 발췌해 실었다.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1990년대 소설과 시를 포함해, 쉽게 구할 수 없었던 1950~1970년대 작품까지 여성문학사의 주요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수록은 문학사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도 반갑다. 문학 전공자가 아니라도 문학 작품은 누구나 감상할 수 있으니까. 각 권 목차에서 반가운 작가의 이름을 만난다면 거기부터 읽는 것도 독자의 자유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